스튜디오 뿌리. [사진=연합뉴스]
스튜디오 뿌리.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권찬욱 기자] 게임에 있어 각종 시네마틱·프로모션 영상과 애니메이션은 해당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에게 재미를 붙여주고, 자칫 재미가 없을 수도 있는 세계관을 설명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게이머들은 이러한 영상을 보면서 “내가 이 캐릭터를 가지고 이러한 여정을 진행해왔구나”하고 추억에 잠기거나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데에서 게임사와 게임 유저 간의 훌룡한 소통장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애니메이션이 게임업계 전반에 예상치도 못했던 악몽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로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가 남성혐오를 상징하는 상징물을 자신들이 작업했던 온갖 영상에 숨겨 온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그 범위가 수년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넓은 데다 대기업을 포함한 수많은 게임사들이 엮여들어가면서 유저와 업계 모두 한 목소리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사건이 발생한 지난 25일 밤~26일 새벽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상황이 전개되어 가고 있는지 정리해본다.

스튜디오 뿌리의 직원이었던 '댓서'가 X(구 트위터)의 계정에 작성한 글들. 이 중 맨 위에 적힌 글이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됐다. [사진=디시인사이드 메이플스토리 갤러리]
스튜디오 뿌리의 직원이었던 '댓서'가 X(구 트위터)의 계정에 작성한 글들. 이 중 맨 위에 적힌 글이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됐다. [사진=디시인사이드 메이플스토리 갤러리]

‘뿌리’ 직원의 외마디, 게임업계를 뒤집어놓다.

사건은 지난 25일 밤 스튜디오 뿌리의 애니메이터인 ‘댓서’가 X(구 트위터)에서의 과거 행적과 글들이 조명되며 시작된다. 이는 댓서가 남성혐오가 적힌 글들을 자주 리트윗해왔으며, 본인의 트윗에서도 남성혐오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된 트윗은 2022년 3월 11일에 게재된 “남자 눈에 거슬리는 말 좀 했다고 SNS 계정 막혀서 몸사린적은 있어도 페미를 그만둔 적은 없다. 은근슬쩍 스리슬쩍 페미 계속해줄게”라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유저들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스튜디오 뿌리가 작업했던 여러 게임사들의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곧 각종 사례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영상에서 발견된 것들은 한때 남성혐오의 총본산이었던 커뮤니티 ‘메갈리아’를 상징하는 손모양으로, 남성을 모욕하는 상징물 중 하나이다. 기존에도 스튜디오 뿌리가 작업한 영상물에서 이러한 손모양이 발견되어 ‘이거 그 손모양 아니냐’는 의문들이 떠올랐었으나, 유저들 사이에서도 ‘설마’하면서 넘어가던 분위기였다. 그러나 댓서의 트윗으로 사실상 고의적으로 삽입한 것이 확인되면서 모든 게임 커뮤니티에서 사례 발굴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영상물에 등장한 그 손모양은 단순히 캐릭터들이 그 손모양을 부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 외에도, 배경과 각종 요소에도 프레임 단위로 계속 교모하게 집어넣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경악으로 치닫게 된다. 또 사례들이 점점 더 오래전의 과거 영상에서도 발견되고, 개중에는 심지어 명암을 바꿔야 확인된다거나 그림자의 형태로 발견되는 사례들도 있어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번졌다.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디렉터는 지난 26일 메이플스토리 공식 유튜브를 통해 긴급방송을 진행하고, 이번 사태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메이플스토리 공식 유튜브]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디렉터는 지난 26일 메이플스토리 공식 유튜브를 통해 긴급방송을 진행하고, 이번 사태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메이플스토리 공식 유튜브]

신속하고 단호한 게임사들의 대응, 그리고 분노

게임사들의 대응은 빨랐다. 우선 스튜디오 뿌리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넥슨은 지난 26일 새벽 판교사옥으로 직원들을 긴급호출해 출근시켰으며, 스마일게이트와 네오위즈, 님블뉴런 등 스튜디오 뿌리에 영상 제작을 의뢰했었던 게임사들도 현재까지 각 게임별 영상과 아트, 그래픽 등에 대한 검수에 나서고 있다. 

이 중 넥슨은 가장 큰 피해자로서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 블루아카이브 등 주요 게임에서 해당 손모양이 발견된 상태다. 이에 각 게임을 총괄하는 디렉터들은 해당 영상들을 모두 비공개 처리하고 회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검토 중에 있다고 발표했다. 

이중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디렉터는 26일 저녁 긴급 방송을 통해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고 그것을 드러냄에 있어서 일련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문화, 그리고 그런 것들을 몰래 드러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서 저희가 얼마나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는지 입장을 말씀드리는 것이 오늘 방송에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으며, “방송 시작에서 말씀드렸듯, 타인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문화와,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메이플을 유린하도록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원만 던전앤파이터 디렉터 역시 26일 공지를 통해 이번 사건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사안으로 규정했으며 이후 28일 긴급방송을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관련된 모든 사안에 대해 강경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밖에도 스마일게이트의 에픽세븐과 아우터플레인, 님블뉴런의 이터널 리턴(카카오게임즈 퍼블리싱), 네오위즈의 브라운더스트2에서도 해당 사안에 대한 경위 및 실태 파악을 진행하고, 걱정하고 있는 유저들에게 지속적으로 진행상황을 공지하고 있다. 

한편 블라인드와 각 종합 커뮤니티를 통해 일부 게임사의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현 상황에 대해 밝혀 누리꾼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 대부분의 인원들이 프레임 단위로 영상 검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 밖에도 다양한 콘텐츠에서 문제점들이 발견되어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일부에서는 곧 다가올 성수기를 앞두고 사건이 발생해 소중한 휴식마저 빼앗긴 게임사 직원들의 분노가 지속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장선영 스튜디오 뿌리 대표의 명의로 올라온 2차 사과문. 그러나 해당 사과문도 부정적인 여론을 오히려 키우는데 일조했다. [사진=루리웹]
장선영 스튜디오 뿌리 대표의 명의로 올라온 2차 사과문. 그러나 해당 사과문도 부정적인 여론을 오히려 키우는데 일조했다. [사진=루리웹]

스튜디오 뿌리, 사과문이 아닌 사과문

스튜디오 뿌리는 초기 사건 발생 당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나. 사건이 전개됨에 따라 논란이 확대되어 가면서 26일 오후 4시에 첫번째 사과문을 발표하게 된다. 

그러나 해당 사과문에서는 댓서의 발언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었으며, 해당 손모양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밝히는 한편 책임소재마저도 불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여기에 앞으로 대처 또한 단순히 영상들을 수정하겠다는 미온적인 태도에만 그쳐 업계와 유저들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특히 스튜디오 뿌리 측이 영상을 수정한다하더라도, 이미 사건이 발생한 이상 해당 영상들의 가치는 모두 손실된지 오래다. 게다가 영상제작을 맞겼던 게임사들의 이미지와 신뢰, 재산 손실은 이미 일어났으며, 만약 게임사가 스튜디오 뿌리 측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들과 타협하려들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27일 저녁에 게시된 2차 사과문에서도 댓서가 퇴사처리 되었다는 사실만 밝혔을 뿐, 댓서가 책임을 어떻게 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게재가 되지 않았다. 또 피해를 입은 회사들이 아닌 유저들에게만 사과를 한 점, 회사들이 입은 피해 사실에 대한 보상안을 제시하지 않은 점 또한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스튜디오 뿌리는 진정성 그 자체를 의심받고 있으며, 댓서에 대한 별다른 처벌이 없는 것으로 인해 회사 전체가 비정상적인 곳으로 받아들여지며 의혹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블라인드를 통해 스튜디오 뿌리 측이 업무적 연락 및 직접적인 만남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와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여러 단체들은 28일 넥슨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정작 기자회견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내용과 대응으로 이루어졌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와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여러 단체들은 28일 넥슨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정작 기자회견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내용과 대응으로 이루어졌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문제의 본질 파악 없이 논란만 키운 단체들

한편 한국여성민우회를 중심으로 다수의 여성단체들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28일 오전 넥슨코리아 앞에서 “넥슨은 일부 유저의 집단적 착각에 굴복한 '집게 손' 억지논란을 멈춰라 -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를 규탄한다”며 긴급 기자회견를 벌였다. 

그러나 기자회견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발언자들은 이번 사건의 본질에 대해서는 전혀 파악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체로 넥슨은 부당 해고를 멈추라는 의견, 화할수록 여성 캐릭터는 남성과 달리 노출도가 높아진다는 의견 등 엉뚱한 이야기만을 늘어놓은 것이다. 또 기자회견 답지 않게 길이도 매우 짧았으며, 질문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에게 질의 기회도 주지 않고 철수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민주노총은 자신들의 가맹 노조인 넥슨 노조 ‘스타팅 포인트’ 의견은 듣지도 않고 멋대로 시위에 참여해 넥슨 노조 측에서 탈퇴 및 강경대응을 시사하고 나선 상황이다.  

배수찬 넥슨 노조 지회장은 “민주노총총연맹은 우리 지회와 어떠한 논의도, 사안에 대한 이해도 없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건 그냥 산하 지회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시위에서 해당 손가락 모양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였다”면서 “그냥 좀 항의만 하는 시늉이 아니라, 최대한 외부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저희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스피커를 동원할 것이다. 또 이와 별개로, 우리에게 민주노총이 정말 필요한지에 대해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상헌 의원은 이번 뿌리 사태에 대해  "이 문제는 진영과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청업체의 직원이 원청업체의 의지에 반하여 원청업체에게 피해가 갈만한 행동을 독단적으로 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쳐]
이상헌 의원은 이번 뿌리 사태에 대해  "이 문제는 진영과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청업체의 직원이 원청업체의 의지에 반하여 원청업체에게 피해가 갈만한 행동을 독단적으로 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쳐]

정치권에서 여야 모두 비판 목소리

현재 여야 정치권에서도 대부분이 한목소리로 스튜디오 뿌리는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일부에서는 과거 있었던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이나 ‘림버스 컴퍼니 원화가 트위터 남성혐오 논란’, ‘GS25 남성혐오 논란’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문제는 진영과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청업체의 직원이 원청업체의 의지에 반하여 원청업체에게 피해가 갈만한 행동을 독단적으로 했다는 데 있다.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한 이상 상품을 만든 제조사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수정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밝혔다.

또 “이 문제의 악질적인 점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라는 데 있다. 이들은 그들만의 혐오 표현을 숨겨 넣는데 희열을 느낀다. 이는 과거의 일베가 그랬고, 최근 KNN 방송 화면에 숨겨져있던 단어가 그러했다.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어선 안될 것이다”고 전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문제는 민간의 영역을 일터로 갖고 들어왔을 때다. 원칙은 간명하다. 일을 하러 왔으면 일을 해야지, 왜 업장에서 사회운동을 하는 것인가?”고 지적하면서 “왜 이렇게 청년들이 이러한 손모영에 불쾌감을 느낄까? 이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상상도 못할 처참한 수준으로 남성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데 앞장서온 이들을 똑똑히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방식이 바로 저 손가락 모양이다”고 비판했다. 

메이플스토리는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은 게임 중 하나로, 사건 당시 '엔젤릭버스터' 직업 리마스터를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업데이트와 이벤트가 진행된 상황이었다. [사진=넥슨] 
메이플스토리는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은 게임 중 하나로, 사건 당시 '엔젤릭버스터' 직업 리마스터를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업데이트와 이벤트가 진행된 상황이었다. [사진=넥슨] 

사건은 여전히 진행중

이 사건의 본질은 앞서 언급했듯이 기업간의 거래에서 한쪽이 고의적으로 망가져있는 물품을 판매한 것이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젠더 갈등과 함께 사상검증을 운운하고 있지만 결국 스튜디오 뿌리가 넥슨을 비롯한 게임사와의 거래에 있어 명시된 계약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장기적으로도 회복하기 힘든 손실을 입혔기 때문에 법정분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손실을 입은 게임사가 한두곳이 아니고 책임소재 또한 명백함으로, 소송 규모 역시 무시무시하게 커질것은 자명하다.

여기에 스튜디오 뿌리는 스스로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의 이미지와 자사의 미래 역시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는 안그래도 어려운 상황이 잘 알려져 있는데, 스튜디오 뿌리는 이를 준수한 퀄리티를 통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고 있던 업계 상위권의 업체였다.

특히 스튜디오 뿌리의 작업 수주 물량의 절반 이상이 넥슨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수익 구조를 이들 게임사에 사실상 의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 사건이 터졌고, 거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신뢰를 저버림으로서 하루아침에 직원들의 커리어와 회사의 존속성이 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히 스튜디오 뿌리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게임업계 전반을 넘어서 확대되는 상황이다. 각 게임사의 전수조사과정에서 스튜디오 뿌리가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게임 내 콘텐츠와 아트 등에 해당 손모양이나 혹은 비슷한 혐오 상징물이 들어간 사례들이 확인되고 있으며, 관련이 없는 게임사들도 “우리도 혹시....?”하는 마음에 조사를 시작한 업체도 있다. 여기에 포스코의 홍보영상, 삼성전자의 사내 메신저, 빙그레의 홍보 애니메이션등 타 산업계에서도 문제들이 발견되어 각 회사가 대응에 들어갔다. 

이 밖에도 이번 사건은 일본과 미국 등 해외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상황으로,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루어지거나 애니메이션 업계의 금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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