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동건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
이동건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

예전에는 주식투자를 하려면 증권사 리포트를 참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에는 증권사 리포트에 대한 의존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는 각종 매체가 발달해서 투자자들이 직접 현황분석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증권사 리포트의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리포트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가장 큰 원인은 증권사 애널리스트에게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는 불안함, 그리고 시장 상황을 무시한 채 남발하는 ‘매수 리포트’다.

최근 유명 애널리스트의 부정거래행위가 적발되어 파문이 일었다. DB금융투자 소속의 한 애널리스트는 차명계좌로 22개 종목을 미리 매수해 두고 본인의 ‘매수의견’이 담긴 리포트를 냈다. 이후 가격이 오르자 주식을 매도해 5.2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결국 증권사 리포트만 믿고 주식을 매매한 금융소비자들은 고점에서 ‘설거지’를 당한 것이다. 그것도 본인이 고객으로 있는 증권사에게 말이다.

증권사 직원인 애널리스트는 기업가치 및 업황, 경제현황 등을 분석해 특정 기업이 현재 투자가치가 있는지를 분석한다. 이에 비해 일반 투자자는 현황을 다각적·전문적으로 분석하기가 어려우므로 증권사 리포트를 참고하여 투자결정을 내린다. 애널리스트의 분석력은 곧 실력이고, 주가예측을 잘하는 애널리스트일수록 업계에서 대우도 좋다. 소비자들은 이왕이면 ‘베스트 애널리스트’의 리포트를 신뢰하고, 해당 종목을 다소 매입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이 깨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뢰가 생명인 금융업계에 소비자의 믿음이 배반당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것은, 현재 우리 금융시장이 얼마나 곪아있는지를 방증한다.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은 책임소재의 부재다. 애널리스트 리포트는 소속 증권사의 이름으로 발표된다. 소비자는 애널리스트의 경력을 보고 리포트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증권사를 믿고 리포트를 선택하는 부분도 크다. 또한 원칙상 리포트는 정직하게 작성되어야 하지만 애널리스트가 금전적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도 사실이므로, 이를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 증권사의 의무다. 증권사는 자사 직원을 통제할 수 있지만, 소비자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증권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직원이 단독적으로 차명계좌까지 써서 저지른 일이라는 식으로 꼬리자르기를 하며, 임직원을 잘못 관리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의식이 없다. 이런 관행이 근절되려면 불법행위를 저지른 애널리스트가 소속된 증권사에게도 무거운 과징금을 물려야 한다. 소속 직원이 저지른 부당이득의 10배 이상 과징금을 증권사에게 부과한다면, 증권사는 어떤 식으로든 통제를 강화할 것이다. 소비자들이 믿었던 증권사에게 뒤통수를 맞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이 증권사 리포트를 신뢰하기 어려운 또다른 이유는 리포트가 ‘매수의견’ 위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포트에는 특정 종목에 대한 애널리스트의 투자등급(의견)을 ‘매수’, ‘보유’, ‘매도’ 중 하나로 표시하고 있다. 매수의견이 붙은 종목은 증권사가 추천하는 종목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1년간 미래에셋 등 국내 증권사 상위 10개사에서 나오는 리포트 10장 중 9장은 ‘매수의견’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주가가 급락하는 시기에도 매수 리포트가 90%였다. 투자자들이 고점에서 손해를 보든 말든 일단 매수하고 보라는 식으로, 이 또한 투자자들에게 고점에 물량을 떠넘기는 ‘설거지’와 다를 바 없다. 반면 상위 10개 증권사 리포트의 매도의견은 0.1%에 불과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최근 1년간 증시가 회복되는 추세에 있었기 때문에 매수 리포트가 많았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 1년간 코스피지수가 30%가량 하락할 때 상위 10개 증권사에서 나온 리포트도 매수의견이 90.0%였다. 중립(보유)의견은 약 10%였고 매도의견은 고작 0.1%에 불과했다. 심지어 9개 증권사에서는 단 한 번도 매도 리포트를 내지 않았다. 시세조종 의도가 없더라도 투자자들이 증권사 리포트를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다.

증권사는 매도 리포트를 쓰면 기업과 해당 기업 투자자에게 항의가 들어와서 매도 리포트를 쓰기 어렵다고 변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신규 투자자는 안중에도 없으며, 손실을 보든 말든 매매수수료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말이다. 증권사가 상세한 분석과 고민 없이 매수 리포트를 쏟아낼 바에는 차라리 리서치 부서를 운영하지 않는 편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 투자자들은 스스로 기업가치와 경제현황을 분석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모든 투자자가 증권사 직원처럼 전문적으로 분석하기는 어렵다. 증권사 리포트는 그래서 여전히 가치가 있다. 문제는 그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증권사다. 증권사가 투자리포트의 가치를 올리려면 금융소비자가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소속 직원이 불법행위를 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고, 그러지 못했을 때는 과징금을 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매수 리포트만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지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것이 증권사를 믿고 이용하는 금융소비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동건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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