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반도체협정으로 가격 경쟁력 잃기 시작
기술 지상주의·비대한 자신감…시장변화 대응 늦어
과대한 기술투자로 원가 경쟁력도 떨어져
시장 형성 초기 도움된 정부 지원… 형성 후 독이 돼

20세기 후반에는 석유가 세계 경제와 국가 간 분쟁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면 21세기 초중반으로 접어드는 현 시점에서는 반도체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시장분석기관 TS롬바드는 지난 2021년 2월 “대만과 한국이 세계 프로세서 칩 생산의 83%, 메모리 칩 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한다”며 “두 동아시아 국가가 거진 두 칩 관련해서 독점을 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대만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이 대만을 함부로 무력 침공하지 못하게 하는 주요 방어 수단이 되고 있을 정도다.

홍콩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020년 중국은 총 3500억 달러 규모 반도체를 수입했다”고 2021년 1월 보도했다.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권석준 교수는 지난 10월 출간한 저서 ‘반도체 삼국지’를 통해 “16% 내외인 중국 자국산 반도체 자급률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매년 거대한 규모의 무역 적자가 발생한다”며 “이는 같은 해 에너지 수입 규모 2배를 훌쩍 뛰어넘는다”고 언급했다.

한편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30년 가까이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온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2021년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3~4% 정도에 불과한 점유율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단,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반도체 장비와 소재 분야에서는 여전히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고 특허 등 지적 자산, 기초 연구기반의 인적 자산도 갖추고 있다.

TSMC는 2021년 2월 일본에 신규 반도체 공정 연구개발센터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1970~80년대 그랬듯 지금도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을 다시 주요 기간산업으로 회복시키고자 하는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펼치고 있다. 한때 후발주자였던 대만, 한국에 대해 대만과는 협력하고 한국과는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권석준 교수는 “TSMC 측이 일본 정부가 절반의 비용을 부담하는 지원을 통해 2021년 10월 일본 구마모토 현에 위치한 소니의 반도체 생산 시설을 인수해 일본 자동차용 반도체나 이미지센서 등을 생산하기 적합한 22~28나노급 공정을 적용한 70억 달러 규모 팹을 운용하기로 결정했다”는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반면 한국 업체들과는 2019년 8월 이후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주요 소재 수출 규제 조치로 인해 협력의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권 교수는 “전통적으로 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 세계 수위권을 20여 년간 고수해온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동북아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반도체 기술 전쟁에서 점점 구석으로 몰리고 있는 형국”이라며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줄이기 어려운 상황이며 메모리반도체에서마저 일부 분야는 중국 업체들과의 기술격차가 거의 없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 확대 및 산업인력 양성 정책을 구체화하고 있으나 동북아 3국과 대만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제는 반도체 산업을 기간 산업으로 여기고 더욱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과거 영광을 재현하고자 시도하는 일본과 대규모 반도체 부문 투자로 뒤쫓아오는 중국을 따돌리기 위해서, 권 교수는 “종합적이면서도 차별화된 전략을 준비해야 하고 이를 위해 먼저 일본과 중국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며 “일본이 리더 부상에서 어떻게 자리를 지키지 못했는 지와 빠르게 쫓아오는 중국의 강-약점은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대응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소비자경제신문은 권석준 교수의 저서 ‘반도체 삼국지’를 통해 ▲일본 반도체 왕국이 몰락한 계기 ▲중국의 반도체 굴기 ▲국내 반도체 업계가 나갈 방향 등을 잇따라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 반도체 업계 근황 

권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2000년 이후에만 노벨 과학상 수상자 18명을 배출했다. 기초과학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에도 시대 이래 일본 사회에는 이른바 일소현명(잇쇼켄메이)이라는 철학이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한 장소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다.

전자 산업의 왕국으로 불리기도 했던 일본은 언젠가부터 자주 ‘갈라파고스’라고 비하되곤 했다. 산업의 갈라파고스화는 특정 지역에 특화된 서비스가 점점 국제 표준이나 세계 시장의 추세와 다르게 발전하며 고립되는 현상을 뜻한다. 한국은 일본과 상황이 다르다. 일본처럼 대를 이어서 한 분야를 파는 기조는 약하나 유행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급변하는 기업 환경과 기술 변화를 빠르게 파악하고 적응할 수 있었다.

[자료=IC 인사이츠]
[자료=IC 인사이츠]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점유율(위탁생산, 설계 포함)은 1위 인텔, 2위 삼성전자, 3위 TSMC, 4위 SK하이닉스, 5위 마이크론이다. 2021년에는 삼성전자가 2021년 인텔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일본 기업은 15위권 내 메모리 반도체 업체 키오시아 한 군데 있다. 키오시아 지분은 특수목적법인 ‘판게아(BCPE Pangea Cayman)’가 55.9%, 도시바가 40.6%, 호야가 3.1% 순으로 보유하고 있다.

권 교수는 “세부 시장별로 보면, 메모리반도체는 한국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75%, 시스템 반도체는 미국이 65%를 점유하고 있다”며 “파운드리는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가 1, 2위로 시장을 양분한 가운데 TSMC의 시장지배력이 날로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한국이 25%, 미국이 50%, 대만이 15%를 점유하기에 3국이 과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한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1990~2000년대 시장에서 밀려나던 와중 소니는 이미지센서(CCD, CMOS)라는 확실한 카드를 가지고 시장에 새로운 선수로 참전에 나섰다.

2020년대 이후 소니의 CMOS 시장점유율은 4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382억달러로 성장이 예상되는 이미지센서 시장은 2020년 기준 시스템 반도체 2547억 달러, 메모리반도체 1677억 달러에 이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을 고려하면 이미지센서가 반도체 시장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초반까지 반도체 상위 10개사 중 6개사 즉 NEC(구, 일본전기), 도시바, 히타치, 후지쯔, 미쓰비시, 마쓰시타는 모두 일본 기업이었다. 타이밍에 맞게 필요한 내부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한국 역시 일본이 걸었던 것과 비슷한 쇠망의 길을 갈 가능성이 있다.

일본 반도체업계, 어떻게 1980~1990년대 세계를 거머쥐었나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중·일과 대만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반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다. 일본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파나소닉은 1952년 네덜란드 전자회사 필립스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반도체 사업에 나섰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늦게 진입했으나 정부의 막강한 연구개발 투자와 원천 선행기술에서 확보된 기술 지적재산권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장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해 1위 자리를 1990년대 초반까지 놓치지 않았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일본 정부의 치밀한 계획이 밑받침됐다. 통신산업성 주도로 초LSI기술연구조합이라는 일종의 민관 연합기구를 만들었고 일본의 반도체 기업간 연구개발 비용의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며 시장 변동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했다. 일본 경제산업성(구 통산성)과 재무성은 소수 대기업 위주로 거의 0%에 가까운 자금 대출, 공동 연구개발(R&D) 과제 도출, 외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일본 진출 장벽 강화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

정부가 중후장대 산업 초기 형성 과정에서 훌륭한 역할을 한 것이다.

1976~1979년 사이 일본 경제산업성은 당시 기준으로 한 해 정부 예산 20조 엔의 약 0.1%에 해당하는 2억 달러 정도를 R&D 자금으로 5개사에 집중 지원했다. 1980년대부터 D램이 대용량 컴퓨터와 통신 장비에 필수적인 부품으로 인식되기 시작되면서 수요 폭증이 시작됐고 일본 업체들은 이를 사전에 예견하고 선도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반도체 시장을 평정할 수 있었다. NEC는 1985년부터 1991년까지 반도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고 치킨게임에서 승리한 일본은 글로벌 시장점유율 80% 가까이 차지했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한 분야만 점유했는데도 큰 이익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1980~1990년대초반 일본은 메모리를 비롯해 전력, 시스템 메모리까지 독점에 가깝게 점유하고 있었으니 꿈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사진=SIA]
[사진= 미국 반도체산업협회 SIA]

보복관세 부과와 미-일 반도체협정으로 경쟁력 약화일로

일본 반도체 회사들이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준이 되자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악명 높은 미국 통상법(Trade Act of 1974) 301조를 가지고 일본 반도체 회사들을 몰아붙였다. SIA는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일본 반도체 산업정책의 불공정성, 특히 일본 정부 주도의 반도체 산업 보조금 지급 등 불공정 무역 요소를 정치 쟁점으로 만들며 청원했다.

미국 상무부는 1986년 들어 USTR에 제소된 반덤핑 사안에 대해 직권 조사를 시작했고 일본 반도체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결정이 내려졌다. 이로 인해 미국에 수출하는 일본 반도체 가격이 올랐고 이는 경쟁력 악화 신호탄이 됐다. 미 정부의 보복관세 조치를 장기간 버틸 수 없었던 일본 반도체 업체는 1986년 제1차 미일 반도체협정을 맺었다.

이로 인해 ▲일본 기업이 미국에 대한 저가 반도체 수출을 중단하고 ▲미국 내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절반 이하로 유지 ▲1986년 기준 10%이던 일본 내 미국 반도체 업체 점유율(쿼터)을 1992년까지 20%로 상향 조정해야 했다. 1991년에 맺은 2차 반도체협정으로 이 조치는 1996년까지 연장됐다.

10년이라는 반도체협정 기간 일본은 과감한 투자나 기술개발보다 수율(투입 수에 대한 완성된 양품의 비율)과 품질 개선 쪽으로 전략을 세웠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점차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본 반도체 왕국의 쇠락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았다.

[사진=후지쯔, 파나소닉, 히타치, NEC, 미쓰비시, 도시바]
[사진=후지쯔, 파나소닉, 히타치, NEC, 미쓰비시, 도시바]

일본 반도체 왕국은 왜 무너지게 됐는가

일본 반도체 왕국의 패착은 ▲기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과 그로 인한 세계 시장의 변화에 대한 대응력 저하 ▲혁신의 딜레마 ▲정부의 과도한 간섭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패착은 기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과 이에 말미암은 세계 시장 변화에 대한 발빠른 대응에 실패해서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시장을 압도하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한 혁신 기술이 역설적으로 수익률의 발목을 붙잡았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 초창기에는 정부가 든든한 보호막이자 비용을 절감하고 정보 공유를 가능하게 해준 훌륭한 플랫폼으로 작용하였으나, 업체들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며 경쟁하던 시점에서는 사사건건 훈수를 두는 시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여러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자신들의 기술과 다른 방향에서 나타난 파괴적 기술로 인해 타격을 입었다. 자사 개발 기술만 맹신했던 대표적 사례들로는 히타치의 트렌치형 DRAM 집적 공정 기술, 후지쓰가 막대한 연구개발비용을 투자해 20년 넘게 포기하지 않았던 NOR 플래시메모리, 95% 이상의 수율을 유지하기 위해 지나치게 높은 비용이 요구되는 ‘반도체 검사 및 패키징 공정(OSAT)’를 포기할 수 없었던 엘피다 등이 있다.

일본 반도체 회사들이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저질렀던 실착 중 하나는 연구개발 인력만 우대하고 주요 의사결정이 마케팅 인력보다 기술개발 인력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인텔은 개발과 양산 부서를 동등하게 대했고 삼성전자는 연구개발과 마케팅 부서 간 인력을 순환 배치하며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시장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고려할 수 있게 했다.

두 번째 패착은 혁신의 딜레마다.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로 시장에서 성공을 경험했기에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에 오히려 장애물이 되어 기존 성공 방법론만 답습하거나 과거 관성에 젖었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웨이퍼 크기 규격을 들 수 있다. DRAM 생산 공정에서 과거 6인치 웨이퍼 기준의 공정은 일본 DRAM 업체들이 극한까지 공정 기술을 발전시켰으나 정작 생산 능력을 결정하는 것은 웨이퍼 크기 였고, 그 과정에서 수율의 손해를 다소 감수하고서라도 발빠르게 8인치로 옮겨간 삼성이 유리한 상황을 가져갈 수 있었다. 일본 업체들의 6인치 공정에 대한 과도한 기술 투자는 쉽게 8인치로 넘어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 요인이 됐다.

또한 플래시메모리 역시 일본은 NAND 플래시메모리가 장기적으로는 유리한 기술적 선택지가 되리라는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NOR 플래시메모리의 기술적 스펙을 높임으로써 NOR 플래시메모리 고유의 장점인 NAND 대비 더 빠른 읽기/쓰기 속도 극대화에 투자를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NOR 플래시메모리 생산 원가는 가파르게 올랐고 기술적 스펙이 앞섰으나 NOR 플래시메모리는 시장점유율이 점점 하락했다.

기술에 과도하게 투자하며 원가 경쟁력이 떨어진 일본 반도체 업계는 1980년대 중반 라인 증설과 선행기술 개발을 바탕으로 반도체 시장에 뛰어든 삼성전자에게 시장을 빼앗기기 시작했고 대만 반도체 업체 역시 파운드리 산업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여갔다.

1989년 메모리 분야에서 도시바 NEC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 이어 4위였던 삼성전자는 1990년 1위 도시바의 시장점유율 14.7%에 이어 2위 12.9%까지 올라섰다. 1992년에는 DRAM 시장 세계 1위에 등극했다.

마지막 패착 사유는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다. 미국의 견제와 후발 반도체 업체들의 추격이 이어지던 와중 일본 정부는 1990년대 초-중반 자국 반도체 기업이 너무 많아서 내부 경쟁으로 인해 후발 업체에게 따라 잡힌다고 원인을 분석했고 그로 인해 히타치와 미쓰비시, 히타치와 도시바를 합치는 과정을 주도했다. 문제는 합친 기업간 문화, 지향점, 기술 노하우가 달라서 결합을 해보았으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질 못해 시너지가 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또한 비용의 절감 효과보다 시장 지배력을 더 많이 상실하게 됨에 따라 득보다 실이 컸다.

일본 정부는 1997년 동아시아발 금융위기를 거치며 일본 반도체 업계가 위기를 맞자 반도체 산업의 중흥을 목표로 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다시 나섰다. 200억 엔규모 아스카 프로젝트, 80억 엔 규모의 차세대반도체개발 HALCA 프로젝트, 315억 엔 규모의 첨단 SoC기반기술개발 (ASPLA) 같은 프로젝트들이 그 예시다. 이미 규모가 커진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분기 매출액도 안되는 정부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오히려 번거로웠다.

또한 일본 정부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열망이 커서 기업들이 경영 효율화 차원에서 결정한 사업 분리, 정리를 쉽게 허가해주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정부 주도적 시도가 시대착오적이라고 느끼고 있었으나 반도체 산업 형성 초기 정부로 받은 특혜가 결코 적지 않아서 정부의간섭을 무시할 수도 없었던 입장이었다.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권석준 교수가 지난 10월 출간한 저서 ‘반도체 삼국지’ [사진=문재호 기자]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권석준 교수가 지난 10월 출간한 저서 ‘반도체 삼국지’ [사진=문재호 기자]

한편 2020년대 들어서도 일본 정부는 반도체 산업 부활에 대한 희망의 끈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7월에는 키오시아 설비 개선을 위해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키오시아가 투자하려는 2조 7000억원 규모의 금액에 대해 그 1/3 수준인 9000억원 규모의 지원을 하는 프로그램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키오시아는 2023년 상반기 3차원 낸드(NAND) 플래시메모리 양산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회사들이 한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에는 칸토덴카 공업같은 중소 규모 회사가 한국 공장에서 생산을 개시했고, 다이요홀딩스 같은 부품 회사는 2020년 5월 한국에 신규로 400만 제곱미터 규모 공장을 세우기 위해 자회사 다이요어드밴스트머티리얼을 설립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 업체 뿐만 아니라 다른 해외 업체들도 반도체 소재-부품 공장을 짓고 있다. 일례로 대만의 글로벌 웨이퍼스를 모회사로 둔 엠이엠씨(MEMC) 코리아는 2019년 11월 5400억원을 투자해 천안에 반도체용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두 번째 공장을 새로 준공했다.

권 교수는 “일본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약 10년 정도의 기간 동안의 기회는 몇 번 있었다”며 “이 견제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몇 번 있었다. 예를 들어서 이제 기술 소송을 건다든지 아니면 대만의 업체들을 예를 들어서 인수를 하든지 여러 가지 기회가 있었는데 일본의 정부가 그때 그때마다 발목을 잡은 것들이 좀 있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경제신문 문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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