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불안, 금리로 대응할 필요 없어…변동성 커지면 대응
[소비자경제신문=최지우 기자]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기준금리를 다시 3.50%로 묶었다. 이는 제1 관리 대상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년 만에 가장 낮은 4%대 초반까지 떨어진 만큼, 무리하게 금리를 더 올려 가뜩이나 수출 부진과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등으로 얼어붙은 경기와 금융에 부담을 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11일 오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기준금리(연 3.50%)를 조정 없이 동결했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결문에서 동결 배경에 대해 “물가 상승률의 둔화 흐름이 이어지겠지만 목표 수준을 상회하는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주요국에서 금융 부문의 리스크(위험)가 증대되는 등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도 크다”면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 속도, 금융안정 상황, 여타 불확실성 요인들의 전개 상황을 점검하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물가(상승률)가 (한은)중장기목표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금리 인하 논의를 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서 “상반기 물가 경로는 확신이 있는데 하반기 불확실성이 많아서 확인하기 전까지 금리 인하 언급은 부적절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서 “금통위원들의 견해를 말씀드리면 금리 인하를 아직 고려할 단계가 아니며, 물가 불안 요인이나 이런 불확실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통위는 지난 2020년 3월 16일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p) 낮췄고(1.25→0.75%), 같은 해 5월 28일 추가 인하(0.75→0.50%)에 나서 금리를 빠르게 내렸다. 이후 금통위는 15개월 동안 금리를 동결하다가 0.25%p 올리면서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섰고, 2021년 11월, 2022년 1월·4월·5월·7월·8월·10월·11월과 2023년 1월까지 지속적으로 금리를 높여왔다.
한은이 재차 동결을 결정한 데에는 최근 다소 안정된 물가 상황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0.56로, 작년 같은 달보다 4.2%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월(4.8%)보다 0.6%p 떨어졌고, 작년 3월(4.1%) 이후 1년 만에 가장 낮았다.
금통위는 의결문에서 소비자물가와 관련해 “앞으로 상승률이 지난해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기저효과, 수요 압력 약화 등의 영향으로 2분기 이후 3%대로 낮아지는 등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이다”면서 “올해 연간으로는 지난 2월 전망치(3.5%)에 부합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계속 나빠지는 경기 지표도 금통위 내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파’에 힘을 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ㅊ)은 수출 부진 등에 이미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0.4%, 직전분기 대비)로 돌아섰고, 올해 1분기 반등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1∼2월 경상수지는 11년 만에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통관기준 무역수지도 3월(-46억2천만달러)까지 13개월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통위는 국내 경기에 대해 “앞으로 글로벌 경기 둔화, 금리 인상 영향 등으로 상반기까지는 부진한 성장 흐름을 이어가겠지만 하반기 이후 IT(정보기술) 경기 부진 완화와 중국 경제 회복 등에 점차 회복될 것이다”면서 “올해 성장률은 지난 2월 전망치(1.6%)를 소폭 하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망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고 진단했다.
지난 2월과 이번 회의에서의 결정으로 다시 동결로 돌아선 상황에 대해 시장에서는 ‘한은 금리 인상 종결론’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창용 총재는 이러한 반응에 대해 “금통위원 중 많은 분이 ‘시장의 기대가 과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했지만, 금통위원 중 대부분이 3.75%로 추가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전했다. 특히 이창용 총재는 회의에 참석한 금통위원 중 5명이 3.75%를, 1명이 3.5%로 동결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다만 미국과의 기준금리(정책금리) 격차 확대에 따른 추가 인상 여지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으로 금리가 다시 동결되면서 환율의 격차는 미국과 격차는 1.50%p(한국 3.50%·미국 4.75∼5.00%)로 유지됐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환율 격차도 지난 2000년 10월 이후 가장 큰 차이인데, 시장의 예상대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가 5월 최소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p 인상)만 밟아도 격차는 역대 최대 수준인 1.75%p 이상까지 벌어지고, 그만큼 한국 경제는 외국인 자금 유출과 원화 절하(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창용 총재는 이러한 외환시장 불안에 대해 “금리를 통해 반응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단 변동성이 클 경우에는 금리뿐 아니라 여러 다른 정책을 통해 반응하는 게 당연하다”고 밝혔다.
이어서 “무역수지도 환율 결정의 중요요인이지만 주요국 통화정책이 어떻게 변화할지, SVB 사태 이후 긴축이 지속될지 아닐지도 환율에 크게 미치는 영향이 있어 한 방향을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면서 “큰 변동성에는 대처 방안이 있다고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