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기념 행사에 참여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기념 행사에 참여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대단히 슬프게도,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인해 국내 자동차 산업이 겪고 있는 위기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만이 증명되고 있다.  

미국으로 급파되었던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을 갖고 “IRA는 법이기 때문에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 법안을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하위지침과 관련해 우리측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방향으로 미국 정부와 협의를 이어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원래 안 본부장의 목표가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미국 상·하원 국회의원들과 만나 IRA를 개정해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것이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해당 목표의 달성이 실패했다는 말로 해석된다.

이번 법안 시행은 정말 이례적이다. 보통 정책 수립 전 산업계가 1년 정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었다면, 이번 IRA의 서명 및 시행은 발의 이후 1개월만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국 자동차 업계의 대응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으로 진행됐고, 미국자동차산업협회(AAI)조차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는 눈치였다. 심지어 일부 존 오소프 상원 의원 현대차 공장을 유치한 조지아 주 출신 미 의원들도 IRA 개정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효과는 참으로 좋은 모양새다. 무엇보다 미국 자동차 업계에도 큰 타격이 예상되고 있으니 말이다. 독일에 배터리 공장을 지으려면 테슬라는 급히 미국으로 ‘유턴’ 했으며, 제너럴 모터스(GM)는 실판 아민 GM 수석부사장의 한국 방문을 급히 취소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짐 팔리 포드 CEO는 다음주 방한해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CEO와 최재원 SK수석부회장와 대책을 논의한다. 

현재 IRA로 인해 미국 완성차 업계가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는 전기차 배터리다. 우선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리튬, 니켈, 망간, 코발트 등 원료 비중은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인데, 문제는 이들 3사의 배터리가 미국 자동차 업계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비중이 2025년까지 70%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포드와 GM, 스텔란티스 등도 IRA 시행 이전 적극적으로 배터리 3사와 손을 잡았던 것을 생각하면 당장 미국 자동차 업계 전반이 생산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대체재를 찾기도 쉽지 않다. 국내 배터리 3사를 제외하면 10위권 기업은 중국기업과 일본 배터리 기업인 파나소닉, 리튬에너지재팬(LEJ), 프라임어스 EV 에너지(PEVE)로 한정되는데 파나소닉을 제외하면 걸음마 수준의 기술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고 파나소닉을 쓴다? 테슬라가 파나소닉제 배터리를 자사 자동차 공급량의 87%에 사용한다지만 뜯어보면 해당 배터리의 원료 역시 중국 의존도가 국내 배터리 3사와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크다. 배터리가 전기차 제조 비용의 상당 부분을 담당한다고 생각했을 때 이를 막아버리면 미국의 전기차 생산은 매우 더뎌질 것이다. 

이번 IRA에는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의 정치적인 상황이 많이 반영되었으리라고 본다. 당장 올해 연말이 미국 중간 선거로, 민주당 출신인 바이든 대통령과 그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선거를 이겨서 공화당 상대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화당 소속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동맹국들의 뒤통수를 때린 것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면서 동맹국에 ‘안보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앞뒤 생각 안하고 추가 방위분담금을 요구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다를 바가 없다. 중국 견제?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견제로 자국 기업들도, 동맹국도 피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대책은 세우고 진행하거나 시행 이후 빠르게 대책을 내놓았어야만 하는데 이에 대한 방관만 하고 있으니 문제다. 즉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가 일절 없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정치적 상황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닌, 미국 산업의 발전과 동맹국과의 돈독한 관계 유지라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상황을 재단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IRA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 관료들과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소비자경제신문 권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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