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수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실장
김삼수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실장

윤석열 정부가 공식출범했다. 시작부터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 환경에 직면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여파로 곡물·에너지·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인한 초대형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다. 가계부채가 1900조원을 넘었고, 대출이자 부담으로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다. 4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4.8%로 치솟아 금융위기 시기인 2008년 10월 이후 가장 높다.

윤석열 정부의 1기 내각 구성도 험난하다. 후보자의 자질논란과 자녀 특혜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국무총리를 포함해 장관을 절반도 임명하지 못한 채 출범했다. 윤 대통령의 첫 인사는 낙제수준이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장관 후보자들의 임명 강행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국민을 바라보고, 기득권이 아닌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으로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3일 인수위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나 10일 취임사에서도 정책의 부재는 여실히 드러났다.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커다란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지만, 우리나라의 당면과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자유’와 ‘빠른 성장’이 민생과 소비자를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특히 국정과제는 윤 정부가 향후 5년 동안 나아갈 좌표임에도 어떤 정책들을 어떻게 구체화해 추진할 것인지 실천 의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소비자권익 향상을 위한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대선 당시 약속했던 공약이 인수위 국정과제에서 후퇴하거나 삭제된 상황도 발생했다.

윤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를 살펴보면, 주요 소비자 정책으로 공정경쟁 확립을 제시했다. 독과점 남용 및 담합행위 집중 감시, 사익편취·부당내부거래 등에 엄정한 법집행을 하겠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공정위 전속고발제도도 고발요청기관과 MOU 개정을 통해 협력을 강화하고, 의무고발 요건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여기까지다. 금융소비자보호는 예대금리 공시 빈도를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소비자의 선택에 실질적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평가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운영 독립성을 확보해 금융분쟁조정과 소비자피해구제의 실효성을 확보한다는 전략이지만, 불완전판매에 따른 피해에 대해 소비자들이 대형 금융사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증권 분야에만 도입된 집단소송제의 범위를 금융상품에까지 늘려야 하지만 관련 내용이 없다.

안전분야에서도 생산부터 소비까지 건강위해요인의 통합관리를 강화하고, 화학물질 관리 개선에 나서 먹거리 안전과 생활 안전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대선 후보 당시 약속한 ‘GMO(유전자변형성분) 완전표시제’는 빠져있다.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화석연료 발전비중 축소, 전기차·수소차 확대, 경유차 조기 폐차 지원 및 운행제한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주요 오염원인 시멘트 소성로의 대기오염물질 배출기준 강화 내용은 빠져있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구축과 개방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개인정보보호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미디어산업 발전을 명분으로 광고·편성 등을 포함한 방송규제 완화만 제시한 것도 우려스럽다. 모든 미디어 소비자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이용하고, ‘표현의 자유’, ‘방송의 공정성’,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세부 내용이 빠져있다.

윤 대통령이 임기 5년 동안 국정 운영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입장에서 국정과제를 재검토하는 것이 시급하다. 당장은 민생과 직결된 물가안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소비자피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구제하는 ‘집단소송제’ 도입과 기업이 고의나 중대 과실로 소비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때 징벌적 의미의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재고해야 한다.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소비자들이 대기업이나 국가를 상대로 피해구제를 받기 어려운 현실에서 소비자 피해구제를 위한 입증책임 전환도 필요하다. 개인정보 불법침해를 막기 위해 정보주체의 동의절차 강화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도 수립해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약속했던 ‘GMO완전표시제’를 도입해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아울러 식품에 함유된 위해 성분과 함유량을 정확히 표기토록 하고, 생활화학제품의 유해물질 표시를 의무화하고 안전등급을 부여해야 한다.

특히 윤 정부는 플라스틱 처리를 매립과 소각이 아닌 열분해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인데, 이는 시멘트 소성로를 통한 플라스틱 처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대기오염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큰 만큼 ‘미세먼지·산성비 원인’ 중 하나인 시멘트 소성로의 질소산화물 배출기준을 강화하고, 시멘트 산업을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에 포함해야 한다.

소비자 정책은 시민들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제들이다. 윤 대통령이 5년 후 퇴임시 소비자권익을 향상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어 낸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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