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노조의 구조조정 반대와
대표·창업주 등 고발로 빌미 제공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애경본사 앞에서 열린 이스타항공 노동자 8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정부의 적극 해결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애경본사 앞에서 열린 이스타항공 노동자 8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정부의 적극 해결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책임 소재를 두고 말이 오가고 있다. 그 와중에 이미 노조가 인수합병 무산의 이유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이스타항공이 20일 공개한 지난 3월2일 체결된 제주항공과의 주식매매계약(SPA)에 따르면 인수 과정에서 인사·노무와 관련한 소송·고발을 하지 않을 것이란 단서 조항이 있다. 만약 이 조항을 어기면 제주항공은 해당 계약을 무효로 할 권한이 생기며 이 사항은 체결 당시 사전에 이스타항공 노조 측에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자대표 측은 인수합병 성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판단해 구조조정에 동의했다.

그러나 SPA 계약 체결 후 조건인 이스타항공의 직원 중 45%(720명) 구조조정에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가  반발하면서 구조조정 비중을 25%(400명)로 낮췄고 급기야 구조조정에 전면 반대했다. 이마저도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해 집회를 하면서 전면 반대에 나서자 4월 말에 인수를 마무리하려던 제주항공의 인수 의지가 이 시점에서 꺾이기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제주항공은 지난 7월 1일 이스타항공에 7월15일까지 미지급금 등 선결 조건을 해소하지 못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 공문이 어디까지나 형식적이며 이미 지난 5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과 계약을 파기할 조건은 충족되어 이스타항공 인수합병 협상이 완전이 무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종사 노조가 4월 29일 이스타항공 최종구 대표를 검찰에 고발하고 이어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스타홀딩스 대표인 이상직 의원의 아들과 딸까지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하자 SPA의 단서 조항 위반으로 계약 무효 권한이 충족되어 제주항공이 언제든지 무산시킬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제주항공은 현재 계약 파기를 위한 실제 법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노동법상 근로자와 합의 없는 구조조정은 무효인 만큼 조종사 인력 감축을 강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스타항공 일반 직원들은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어 희망퇴직 등으로 3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반면 이스타항공 조종사 220명 중 퇴사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종사 노조는 지금까지 고용보장 없는 인수합병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어 이스타항공 내부적으로 조종사 노조의 이기적인 행보에 대한 비판 여론도 크다. 이달 초 진행한 전 직원의 임금반납 동의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도 조종사들은 제외됐다.

업계는 “제주항공도 자체 구조조정을 고민하는 마당에 이스타항공 조종사만 전원 고용을 보장하라는 것은 과욕이다”고 지적하며 “조종사노조 내부에서도 임금반납을 찬성하는 조종사들이 있는데 이들의 투표권을 주지않고 뺏어 이 설문조사 이후 20~30명의 조종사들이 조종사노조에서 탈퇴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스타항공은 마지막으로 정부 중재를 통한 인수합병 성사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 간 계약에 정부가 나설 명분이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지난주 이스타항공 사태와 관련해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스타항공의 일시폐쇄가 제주항공이 원하는 대로 됐기 때문에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는 오늘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다. 조종사 노조는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의 합병 무산과 관련해 의견을 밝히고 정부에 인수합병에 개입해 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소비자경제신문 권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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