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기술 확보, 시장 선점 위해 폭넓은 협업
절대 강자도, 영원한 적도 없는 대통합의 시대

지난달 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스마트국토엑스포를 찾은 관람객들이 자율주행차 체험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자율주행 기술 발전 및 시장 선점을 위해 기업들이 대통합에 나섰다. 사진은 지난달 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스마트국토엑스포를 찾은 관람객들이 자율주행차 체험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완성차업체와 통신 3사 등 IT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시장을 향해 다양하게 협업하고 있다. 이종 산업간의 활발한 교류는 물론이고 국경까지 넘나드는 ‘대통합’이 이뤄지는 중이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다.

10월 10일 서울 LG마곡사이언스파크. 당시 그곳에서 LG유플러스 통신 기술을 탑재한 현대자동차 에쿠스 모델로 자율주행 시연이 이뤄졌다. 그로부터 며칠 후, KT가 현대모비스 주행시험장에서 자율주행차를 시연했다. KT와 현대모비스는 이미 지난해부터 관련 기술 개발 협력을 이어왔다.

범현대차그룹이 한 회사는 LG유플러스와, 또 다른 회사는 역시 통신업계인 KT와 협력하는 모습이 자칫 낯설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 및 IT 업계의 분위기는 바로 이렇다. 이종산업간의 협업은 물론이고, 경쟁구도나 국경도 초월하는 활발한 협업이 이뤄진다. 한 외국계 자동차기업 엔지니어는 “절대 강자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는 대통합의 시대”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차 시장의 청사진에 대해서는 여러 예측이 공존한다. 국내 시장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현대자동차의 움직임이다. 국내 완성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가진 기업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수소차 프로젝트와 더불어 자율주행차에도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총괄수석부회장은 최근 “2022년 말쯤 자율주행 시범 운행을 시작하고, 2024년에 본격 양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본인의 발언보다 1년 이상 앞당긴 계획이다.

현대차는 최근 미국 자율주행 기술 업체 앱티브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앱티브는 일반 소비자에게 이름이 익숙한 기업은 아니다. 하지만 업계에서 이미 탄탄한 기술력을 인정받은 곳이다.

경영컨설팅업체 ‘내비건트 리서치’의 자율주행 관련 벤더 순위를 보면, 2018~2019년 현대차그룹은 15위다. 낮은 순위라고 볼 수는 없으나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숫자다. 반면 합작사를 설립하는 앱티브는 2018년 7위에서 2019년 4위로 올라서 비교적 높은 경쟁력을 보여주고 이다.

현대차그룹은 합작회사 설립을 위해 약 2조 4000억원 규모를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과거에도 이미 오로라 등 자율주행 관련 기술 업체에 꾸준히 투자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규모 면에서 그 무게감이 다르다. 실제로 현대차의 오로라 투자액은 약 300억원 수준이었다.

◇ 유명 자동차 기업 모두...자율차 향해 ‘모여라’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여러 기업이 힘을 모아야 할 일이 늘어난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기술이 필요할수록 한 회사가 그것을 다 할 수는 없어서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를 혼자 만들 수 없고, 애플이 아이폰을 혼자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대표적으로 그런 분야다. 완성차가 필요하고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하며 둘 사이를 연결할 데이터 통신 기술도 필수다. 이건 현대차만의 이슈가 아니다. 완성차 업계와 IT 업계의 자율주행 관련 합종연횡은 세계적인 추세다. 이미 전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이 소프트웨어 기업 투자에 나섰다.

일례로 GM은 자율주행 기술 개발 스타트업 크루즈오토메이션을 인수하고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다. 국내 시장에서 GM의 인지도는 독일 업체 등에 비해 다소 밀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해외 컨설팅업계가 평가하는 자율주행기술력 부문에서는 세계 2위 수준이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자금도 이곳에 투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드와 폭스바겐은 자율주행 연구기업 아르고AI에 투자해왔다. 포드가 2017년 아르고AI를 인수했고 폭스바겐은 최근 이 회사에 26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서 양사는 완성차업계의 경쟁사이면서 아르고AI 지분은 서로 나눠갖는 관계가 됐다.

도요타는 소프트뱅크 등과 함께 우버에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해당 투자는 우버의 자율주행 프로그램을 주로 겨냥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는 지난해에도 우버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 바 있고, 당시에도 언론에서는 우버의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투자했다고 보도했다.

포르쉐도 스타트업 ‘코페르니쿠스 오토모티브’와 협력해 자율 주행 시험장을 설치하는 등 다양한 준비를 해왔다. 해당 스타트업은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회사로 자율 주행 핵심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우디는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와 손잡고 공중에서 자율주행으로 이동하는 플라잉카 관련 계획을 공개했다. 아우디코리아 사장 제프리 매너링은 23일 A6 신차공개 행사 후 기자들과 따로 만난 자리에서 자율주행차 관련 계획에 대해 “멀지 않은 미래”라고 답했다. 

벤츠 등을 만드는 독일 다임러 그룹도 자율주행 분야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나섰다. 그리고 BMW그룹이 다임러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기로 상호 합의했는데, 이들의 전략적 제휴 이면에도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이다. BMW와 벤츠의 협업은 두 기업의 라이벌 구도를 감안하면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 자율주행 기술은 현재 3단계, 5단계 위해 협업 나선 글로벌 기업들

기업들이 자율주행을 위해 대규모 투자와 협업에 나서는 이유는 ‘아직 기술을 더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는 자율주행 단계를 레벨 0부터 5까지 6단계로 구분한다.

0단계는 ‘전통적 주행단계’로 운전자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쉽게 생각해서 지금의 운전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1단계는 ‘부분 부조주행’으로 차간거리 유지나 차선 유지 등에 시스템이 일정 부분 개입하는 형태다.

2단계는 ‘보조 주행’ 단계로 특정 상황에서 일정 시간 동안 보조 주행이 가능하고 필요시 운전자가 즉시 개입한다. 미디어를 대상으로 도로에서 이뤄지는 자율차 시연 등이 이 단계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3단계는 ‘부분 자율주행’으로 고속도로와 같은 조건에서 자율 주행을 하고 필요시 운전자가 즉시 개입하는 방식이다. 현재 소비자들이 타고 있는 차에 구현된 기술은 0~2단계 사이고, 양산차에 탑재되는 기술은 레벨3에 비교적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숙제는 4단계와 5단계다. 4단계는 ‘고도 자율주행’으로 제한 상황을 제외한 대부분의 도로에서 자율주행이 이뤄지고, 5단계 ‘완전 자율주행’ 단계에서는 사람은 그냥 목적지만 입력하면 된다. 이론상으로는 운전대와 페달을 제거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도로에는 자동차만 다니는 게 아니다. 오토바이나 자전거, 심지어 보행자도 다니고 때로는 동물이 나타날 수도 있다. 공사를 하거나 도로가 침수 또는 파손될 수도 있고 바람에 쓰러진 가로등이나 나무가 도로 위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변수들에 모두 대처할 수 있어야 완전 자율주행 단계로 진입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높은 수준에 이르러야 하고, 그토록 고도화된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찻값이 지금보다 크게 올라가지 않아야 한다는 숙제도 있다. AI기술만 발전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고, 완성차 기술만 발전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자율주행’이라는 숙제를 앞두고 기업간 국경과 경쟁구도가 흐릿해진 이유가 여기 있다.

◇ 기업간 국경도, 경쟁구도도 사라져...국내 기업 시장선점 과제는?

그렇다면 자율주행 기술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현대차의 전망은 어떨까. 삼성증권 임은영 연구원은 “미국시장에는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관련해 구글연합, 소프트뱅크 연합, 테슬라, JV형태로 기술을 개발하는 완성차 간의 경쟁구도가 형성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2021년 이후 현대차그룹과 앱티브의 합작회사가 생태계를 구성할 만큼 기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IBK투자증권 이상현 연구원은 현대차와 앱티브의 합작회사 설립에 대해 “당장 수익에 기여하는 바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나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는 시기에는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가늠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국내 자율주행차 시장은 큰 도전에 직면해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KPMG가 자율주행차 도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세계 25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자율주행차준비지수(AVRI)에서 우리나라는 올해 1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0위에서 오히려 3계단 떨어졌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관련 규제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국내에서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모든 차량 운전자가 조향장치와 제동장치 등을 정확하게 조작해야 하고 운전자가 컴퓨터 등을 사용하는 행위도 금지돼 있다. 현재 레벨 3단계 파일럿 운전만 허용하고 있다.

실제로 <소비자경제>가 지난 10일 LG유플러스 자율주행시연차를 시승했을 때, 동영상 촬영을 위해 운전석에 타고 있던 엔지니어에게 잠시 내려줄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었다. 하지만 당시 엔지니어는 “법적으로 운전석에 반드시 탑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조인트벤처 본사를 미국 보스턴에 두기로 결정한 것도 국내의 규제 등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기술 확보와 시장선점을 위해 기업들은 대개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하지만 자율주행 시대 실현을 위해 자동차 업계와 IT 기업들은 폭넓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업간 국경은 물론이고 기존의 경쟁구도까지 모두 허물어지고 있다. 이른바 ‘대통합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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