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 최송목 CEO PI 전문가 = 요즘 우리 사회에서 AI 이야기를 빼놓고는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다. 정치 뉴스보다 AI 뉴스가 더 자주 눈에 띄고, 저녁 식탁에서도 “이거 혹시 AI가 쓴 거 아니야?”라는 농담이 오간다. 단순한 유행이나 IT 업계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 전반을 흔드는 핵심 주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막상 사람들에게 “AI의 위기가 정확히 뭐냐?”라고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대체로 “똑똑한 컴퓨터”라는 인식에 머물거나, “일자리가 사라진다”라는 두려움 정도로 그친다. AI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협하는지, 그 결과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막연한 답만이 오간다. 그렇다면 AI가 던지는 실제 위기는 무엇일까? 몇 가지 뚜렷한 축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노동시장의 변화다. 매켄지 리포트는 2030년까지 최대 8억 명이 직업을 바꿔야 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는 단순히 일부 산업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콜센터 업무나 번역, 회계 처리처럼 구조화된 지식 노동은 AI에 의해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 때 기계가 육체노동을 대신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인지 노동이 직접적인 압박을 받는 것이다. 문제는 속도다. 산업혁명은 수십 년에 걸쳐 노동시장을 재편했지만, AI는 불과 몇 년 만에 변화를 가속한다. 그 결과 사회 전반은 재교육과 전환의 압력을 감당하기 벅찰 수 있다.
둘째는 정보 신뢰성의 위기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문 기사와 사진, 영상에 일정한 신뢰를 부여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딥페이크 영상은 정치인의 발언을 조작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유명인의 얼굴을 합성해 불법 콘텐츠로 유통되며,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파괴한다. 가짜 뉴스는 선거와 사회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온라인 공간의 불신은 오프라인 정치와 공동체까지 흔들어 놓는다. 정보가 진짜인지 아닌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시대, 민주주의의 기반인 공론장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셋째는 윤리와 책임의 공백이다.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을 때 과연 운전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아니면 제조사 혹은 AI 자체에 귀속해야 하는가? 의료 AI가 내린 오진으로 환자가 피해를 보았을 때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금융 AI의 투자 결정이 대규모 손실을 일으켰을 때 법적으로 누구를 소환해야 하는가? 기존의 법적·윤리적 틀은 아직 이런 질문들에 답을 내놓지 못한다. 기술은 앞서 가지만, 제도와 규범은 뒤처지고 있다. 공백이 커질수록 사회적 갈등은 더욱 날카롭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넷째는 권력 집중이다. 오픈 AI, 구글, 엔비디아 같은 소수의 글로벌 기업이 AI 생태계의 핵심 자원을 장악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와 고성능 연산 능력은 이제 단순히 기업의 이익 차원을 넘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기술 패권이 새로운 형태의 국제 정치 질서를 만들어 가는 셈이다. 인류 전체가 직면한 기술이지만, 그 주도권은 소수의 기업과 국가가 쥐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디지털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기술 혁신이 곧 권력 재편으로 이어지는 국면에서, 약소국이나 개인은 점점 더 주변으로 밀려날 위험이 크다.
그리고 다섯째, 가장 간과되지만, 본질적인 위기, 바로 경험의 멸종이다. 지식을 얻는 과정은 원래 느리고 비효율적이었다. 우리는 책을 뒤지고, 사람을 만나 묻고, 실패를 겪으며 조금씩 배웠다. 글을 쓰며 사고를 정리하고, 길을 헤매며 지형을 익히고, 문제를 풀며 좌절과 성취를 동시에 맛보았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정보 이상의 것을 얻었다. 그러나 AI는 이러한 경험을 건너뛴 채 즉각적인 정답만을 내놓는다. 눈앞의 문제 해결은 빨라지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을 성장시키는 배움의 단계가 사라진다. 지식은 늘어나지만 지혜는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이 생긴다.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는 인간다움의 기반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 모든 위기의 공통된 뿌리는 결국 ‘속도와 효율’에 있다. AI는 빠르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언제나 비효율적인 과정을 통해 깊이를 얻어 왔다. 아이가 넘어지며 걷는 법을 배우듯, 우리는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 공감과 성찰을 키웠다. 만약 이 과정을 전부 AI에 위임한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빈곤하게 만들 수 있다.
이처럼 AI는 위협인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AI는 괴물이 아니라 ‘새로운 불’이다. 불은 잘 쓰면 요리와 난방에 유익하지만, 잘못 쓰면 화재와 재앙을 일으킨다. 마찬가지로 AI도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도, 위험을 불러올 수도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두려움은 무지의 결과이다”라고 했다. 손자병법 역시 “知彼知己 百戰不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고 일깨운다. 성경에서도 하느님께서 홍수를 예고하셨을 때, 두려움 없이 믿음으로 노아는 수 십 년 동안 방주를 세우며 준비를 철저히 했다. 덕분에 자신과 가족이 홍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막연한 두려움이나 과장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해와 철저한 준비다. AI 위기의 본질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지혜의 준비와 노력에 달려 있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효율과 속도를 좇다 잃어버릴 수 있는 인간의 존엄이다. 경험이 사라져 존엄이 흔들리지 않을 때, AI는 비로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로 정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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