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범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선임간사
배창범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선임간사

국제사회는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Renewable Electricity 100%을 기반으로 그린텍소노미와 탄소국경세 등을 도입했다. 반면 정부는 RE100 도입이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경제계의 민원을 들어, RE100보다는 CF100(무탄소 에너지)을 도입하자며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제는 유럽은 이미 RE100을 기준으로 산업을 재편하고 있고 정부의 CF100 도입은 공허한 외침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EU는 이미 RE100을 기반의 탄소 국경세 도입을 결정했고, 2026년부터 과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유럽 대형 회사들도 한국 공급 업체에 RE100을 요구하고, 미비 시 계약을 취소하고 있다.

정부는 CF100에서는 원전을 무탄소에너지로 보는 반면, RE100은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워 사실상 원전을 재생에너지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정부의 희망대로 원전이 RE100으로 인정받으려면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확보와 운영 세부 계획도 있어야 한다. 또 2025년부터 신규 건설되는 원전과 수명 연장 원전에 대해서는 ‘사고 저향성 핵연료’를 적용하는 경우에만 녹색 분류체계 혜택을 볼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월성 원전에 임시로 보관하고 있지만 그것마저도 가득 찼다. 전국적으로 원전의 고준위 임시 방폐장 저장 한계 시점은 2030년이다. 경주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분시설도 마찬가지다. 동굴처분시설은 2023년 2월 기준 2만7098드럼이 채워져 운영한 지 7년 만에 수용량의 약 25%가량이 찼다. 고준위 핵폐기물 방폐장 부지 선정부터 건설까지 30년이 걸리는 만큼 늦을수록 원전 가동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RE100에서 원전의 승인 기준으로 삼고 있는 ‘사고 저항성 핵연료’의 경우도 웨스팅하우스, 제너릴 일렉트릭 등 2030년대 상용을 목적으로 개발 중인 기술로 사실상 2030년 전까지는 사용이 불가하다. 사고 저항성 핵연료가 2030년 개발된다고 해도 원전 적용까지 4~5년, 규제기간 허가까지 5년~10년이 추가로 걸린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CF100을 원전 때문에 고집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삼성은 2021년부터 10년간 171조 원의 투자를 결정했고 2022년 평택 3라인 공장 완공을 시작으로 2025년 4라인 공장이 완공된다. 하지만, 뒷받침되는 RE100기반 에너지 공급이 없다면 삼성의 신규생산시설에서 생산된 제품은 유럽 수출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RE100기반 에너지 공급에 나서거나 계획 중인 평택 5,6라인 공장을 축소하고, 신규시설을 유럽이나 타국에 지어야 한다.

에너지원을 바꾸고 산업의 체질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추진 필요성이 큰 만큼, 정부는 관련 인력, 예산, 정책적 지원 등을 확대해야 한다. CF100 탄소는 줄일지 몰라도 원전은 처리(핵 페기물)에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반재생 에너지다. 그래서 RE100에서도 까다로운 조건을 들어 사실상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전기 공급체계를 이원화해 원전 등 기존 에너지 공급은 일반용과 가정용 등에 집중하고, 산업용은 빠르게 RE100 에너지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아울러 2030년까지 RE100 기반의 에너지 공급을 전체 발전량 비중에서 최소 30%까지 확보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기업도 단기간 비용 상승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미래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RE100에 참여해야 한다. 화력과 원전 위주의 에너지 공급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현실에 안주하게 되면 기업 경쟁력 쇠퇴를 가져올 수 있다. 한발 앞선 신재생 에너지원 개발, 에너지 포집 신기술에 대한 집중 투자만이 미래 에너지 시장에서 선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배창범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선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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