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에서 공유, 공유에서 구독으로 바뀐 소비트렌드
크고 좋은 물건 대신 값진 체험 원하는 밀레니얼 취향 반영
단순한 할부 시스템 아닌 '초개인화' 및 ‘편리미엄’의 극치

과거의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물건을 고르는 눈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골라서 추천해주는 시대다. '구독경제'시대를 사는 2020년의 소비자들은 그걸 즐기기만 하면 된다. '초개인화'와 '편리미엄'이 가능해진 셈이다. 사진은 '넷플릭스'를 이용 중인 해외 소비자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과거의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물건을 고르는 눈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골라서 추천해주는 시대다. '구독경제'시대를 사는 2020년의 소비자들은 그걸 즐기기만 하면 된다. '초개인화'와 '편리미엄'이 가능해진 셈이다. 사진은 '넷플릭스'를 이용 중인 해외 소비자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요즘 '구독경제'가 화제다. 제품을 일시불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월 사용료만 내고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개념이다. 과거의 구독과는 달리 소비자 개인별 맞춤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뉴스란에 ‘구독경제’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11월 25일 오후 12시 현재 129만 3500여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129만여건의 기사는 ‘조국’ 기사 59만 5000여건, ‘아이폰’ 기사 53만 9000여건과 비교해도 두배가 넘는 숫자다. 실제로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내년 기준 전세계 구독경제 시장 규모가 약 600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대체 ‘구독경제’가 뭐길래 이렇게 이슈일까?

구독은 과거 ‘신문을 구독한다’고 말하던 시절의 그 의미와 똑같다. 매달 일정 금액의 ‘구독료’를 내고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쓰는 것을 뜻한다. 웅진코웨이의 정수기나 비데 렌탈, 무제한 스트리밍 영상을 제공하는 넷플리스 등이 대표적이다.

구독경제는 매우 다양한 분야로 진화했다. 매달 일정 금액을 내고 커피나 술을 무제한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생겼고, 매일 신선식품을 배송해주거나 심지어 개인 맞춤형 속옷을 배송하는 서비스도 생겼다. 고급 승용차를 취향 따라 바꿔가며 탈 수 있는 신개념 리스도 구독경제의 일환이다.

업계에서는 구독경제가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크게 두가지 흐름으로 본다. 소비의 주요 개념이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서 벗어나 체험을 소비하는 것으로 바뀌는 경향, 그리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관리해야 하는 수고로움에서 벗어나 이른바 ‘편리미엄’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 소유에서 공유, 공유에서 구독으로 바뀐 소비트렌드

미국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자신의 저서 <소유의 종말>을 통해 미래 인류의 소비가 소유를 넘어 ‘접속’과 ‘이용’의 시대로 바뀔 것이라고 예언했다. 제한된 자원, 정해진 예산에서 최대한의 만족을 느끼려는 경제적 ‘효용이론’이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구독 형태가 ‘가격이 저렴하다’고 느낀다. 올해 초부터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40대 소비자는 “9900원만 내면 영화나 드라마를 마음껏 볼 수 있는데, 점심 한끼, 커피 두잔만 아끼면 되는 돈으로 매일 여가를 즐길 수 있으니 굉장히 경제적”이라며 만족해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수기나 안마의자를 렌털하는 것은 결국 비싼 제품을 할부로 이용하는 형태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실제로 지난 가을 넷플릭스를 해지했다는 한 30대 소비자는 “영화와 드라마 몇 편 보는 돈으로 매년 12만원을 내는 셈인데, 막상 그만큼의 ‘가성비’를 해내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소비자는 “결국 마케팅 전략에 휘둘려 지갑을 연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하지만 최근의 구독경제는 과거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오랫동안 쌓여온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과 취향을 빅데이터화하고 개인별로 큐레이션해서 이른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넷플릭스만 봐도 사람마다 초기화면(추천작품)이 다르다. 요즘은 정수기 등 전통 렌탈 가전도 소비자에게 맞춤형 제품을 제안한다.

구독경제라는 단어를 만든 티엔 추오 주오라 창업자는 최근 한 강연에서 “앞으로 모든 제품이 인터넷에 연결돼 데이터를 생산하고 고객과 상호작용을 유도해 수많은 새 구독경제를 창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에 쌓이는 정보가 많아질수록, 소유에서 공유의 시대를 넘어 구독경제 시대로 가는 속도 역시 빨라진다.

◇ 크고 좋은 물건 대신 값진 체험 원하는 밀레니얼 취향 반영

정식으로 구매하지 않고 월 이용료만 내는 형태가 반드시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것은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과도 연결되어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가장 큰 관심은 소유였다. 내집마련이 삶의 첫째 목표였고, 여행은 ‘있는 사람이 여유로울 때’나 가는 것으로 여겼으며, 좋은 오디오와 큰 차가 자신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보여준다고 여겼다.

하지만 밀레니얼은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이들은 선배 세대보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저성장 경제와 고용불안도 함께 경험했다.

이들은 내집마련을 꿈꾸며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하는 것 보다는 ‘욜로’와 ‘소확행’을 추구한다. 무엇을 가졌느냐보다는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라고 여긴다.

쉽게 말하면 과거 세대가 큰 화면의 질 좋은 TV를 사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면 지금 세대들은 내게 맞는 다양한 콘텐츠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거실에 큰 TV를 들여놓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남들이 관심없더라도 내가 재밌어하는 해외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보는 게 더 기쁘다는 뜻이다. TV를 구입하는 것과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차이가 바로 여기 있다.

기자는 JTBC 예능 '아는형님' 애청자다. 넷플릭스는 그걸 잘 알고 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중에 넷플릭스는 기자의 핸드폰으로 알람을 보냈다. 좋아할만한 콘텐츠를 마련해두었으니 와서 보기만 하라는 얘기다. 구독경제의 핵심 플랫폼이 바로 이 지점이다. (사진=소비자경제)
기자는 JTBC 예능 '아는형님' 애청자다. 넷플릭스는 그걸 잘 알고 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중에도 넷플릭스는 기자의 핸드폰으로 알람을 보냈다. 좋아할만한 콘텐츠를 마련해두었으니 와서 보기만 하라는 얘기다. 구독경제의 핵심 플랫폼이 바로 이 지점이다. (사진=소비자경제)

◇ 단순한 할부 시스템 아닌 ‘초개인화’ ‘편리미엄’의 극치

이 지점에서 추가로 짚어봐야 할 것이 ‘편리미엄’이다. 편리미엄은 서울대 김난도 교수 등이 <트렌드코리아 2020>에서 제안한 키워드로, ‘편리한 것이 곧 프리미엄’이라는 의미다.

물론 구독경제의 세계적인 성장을 단순히 ‘편리함’ 키워드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구독경제의 핵심은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유하면서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르는 수고까지 덜어준다. 추천받은 것을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된다. 빅데이터 등을 통해 추천받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족도도 매우 높다. 소비자의 취향과 상황에 꼭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초개인화’ 마케팅이 가능하다.

넷플릭스를 예로 들어보자. 넷플릭스는 가입 시점에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몇 개 지정해두면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흥미롭게 여길 콘텐츠를 추천한다.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빅데이터가 더해져 매우 정교한 추천이 가능하다.

따지고 보면 인터넷이나 통신요금도 사실상 구독경제다. 하지만 단순히 월 사용료를 내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 요즘 구독경제의 핵심 키워드다. 그야말로 ‘초개인화’와 ‘편리미엄’의 극치다.

네이버 시사상식사전에서는 구독경제가 ‘일정액을 내면 사용자가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자가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신개념 유통 서비스’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요즘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소비자 대신 훌륭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큐레이션해서 제공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데이터와 기술이 만든 경향이다. 소유하지 않아도 좋고, 편리하면서 프리미엄한 구독경제는 바로 여기에서 왔다.

과거의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물건을 고르는 눈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골라서 추천해주는 시대다. '구독경제'시대를 사는 2020년의 소비자들은 그걸 즐기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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