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와의 소통도, 직원과의 업무 스타일도 수평적인 인플루언서 CEO
디자인 경영과 문화마케팅으로 젊은 소비자 공략하는 리더
경영 성과 호평, IT역량 강화하며 승승장구...업황 변수는 향후 해결 과제로 꼽혀

정태영 부회장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대표이사)는 재계에서 손꼽히는 소통왕이자 트렌디에 밝은 CEO로 손꼽힌다 (사진=연합뉴스)
정태영 부회장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대표이사)는 재계에서 손꼽히는 소통왕이자 트렌디에 밝은 CEO로 손꼽힌다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대표이사님이 왜 여기 계시죠?"

지난 5월 24일, 코스트코 양재점 카드 가입 안내 데스크에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이사 부회장이 앉아 있었다. 고객에게 현대카드 혜택을 직접 설명하고 발급 신청도 받았다. 물론 홍보효과 등을 노리고 기획된 짧은 이벤트였지만, CEO와 소비자가 직접 대면하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카드사 CEO가 왜 마트로 갔을까? 그 이유는 잠시 뒤에 얘기하고, 우선 대표이사가 소비자와 직접 만나겠다고 나선 배경부터 한번 살펴보자.

‘소통하는 CEO’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식상한 느낌이 들거나 어쩌면 못미더운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왜냐하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벌써 10년도 넘은 얘기고, 이 세상의 모든 ‘사장님’들은 “나는 고객이나 직원들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한다”고 입버릇처럼 주장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면서 주위에 귀를 잘 기울이는 것처럼 이미지 메이킹만 하려는 CEO들도 많다. 하지만 정태영은 실제로도 소통왕이다.

그는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직함만 보고 말하면 '여의도 금융맨'이다. 하지만 딱딱한 이미지의 금융권 인사가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이미지의 기업인 중 하나다,

정태영=소통 공식이 생긴 가장 큰 이유는 SNS다. 단순히 업로드만 많이 한다고 해서 팔로워가 늘고 인플루언서가 되는 건 아니다. SNS를 통해 전해지는 모습이 얼마나 흥미롭거나 친숙한지, 소비자들과 얼마나 잘 소통하는지가 중요하다. SNS에 올린 글 등을 통해 오히려 갑질논란 등에 휩싸이는 재계 인사들도 많다. 하지만 정태영은 이 ‘양날의 검’을 효과적으로 휘두른다. 실제로 소비자들과의 접점이 넓다는 얘기다.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에는 배우 김수로와 저녁을 먹은 얘기, 설치미술가 양혜규와 찍은 사진, 실크로드 여행 중 반팔 티셔츠를 입은 채 카메라를 목에 걸고 찍은 사진 등이 올라와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일부러 홍보하려고 억지스러운 콘텐츠를 올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분위기다. 2만 1000여명이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다.

◇ 정태영=소통? 보이는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업무스타일

보이는 이미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업무 스타일도 그렇다. 정태영은 회사에서 PPT 보고서를 없앴다. 회의를 질질 끌지 말라는 의미로 사내 회의실에 스톱워치도 배치했다. 문서 결재 시스템도 단순하게 바꿨다.

CEO가 직원들과 대화하는 퍼포먼스가 요즘 여러 기업에서 유행인데, 정태영은 지난 2012년부터 직원들과 정기적인 미팅을 갖기 시작했다. “불분명한 지시와 초점 없는 결정,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지양하라”는 요구를 입버릇처럼 해왔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에만 집중해 효과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이다.

소통에 능한 정태영의 일상을 알 수 있는 사례가 하나 있다. 몇 년 전 한 고등학생이 경제부 기자를 통해 ‘정태영 사장을 멘토로 삼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메일을 보냈고, 기자가 그 내용을 현대카드측에 알린적이 있다. 당시 현대카드는 그 일을 정태영에게 보고했고, 정 부회장은 학생이 질문을 보내주면 이메일로 답하겠다고 승낙해 두 사람이 연결된 적이 있다.

정태영이 당시 고교생에게 보낸 메일은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따지면 약 35장 정도의 장문이었다. 이 글에서 정태영은 “모든 사물에 항상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하면 좋다”고 조언했다. 스스로에 대해서는 “깊이 제대로 알거나 잘 하는 일이 없지만, 비교적 많은 분야에 지식이 있으며 호기심이 많다”고 소개했다.

그는 “훗날 성공하면 찾아와서 밥을 사라”고 마무리 지으면서. 그때쯤 나는 은퇴 후 치매라서 자세히 설명해야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테니 친절하게 대해달라”는 농담도 곁들인 바 있다.

그는 소비자에게도, 직원들에게도, 그리고 현재 자사의 직접적인 소비자가 아니지만 본인에게 무언가를 원하는 누군가에게도 마음을 열고 수평적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정태영 부회장은 재계의 대표적인 '인플루언서'로 손꼽힌다. 사진은 2만여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그의 인스타그랩 첫 화면
정태영 부회장은 재계의 대표적인 '인플루언서'로 손꼽힌다. 사진은 2만여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그의 인스타그랩 첫 화면

◇ 디자인 경영과 문화마케팅으로 젊은 소비자 공략

소통과 더불어 정태영을 수식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트렌디’다. 그는 유행에 밝다. 정확하게 말하면 단순한 유행보다는 문화트렌드라고 말하는게 더 어울린다.

금융사 CEO라면 거시경제에 밝고 자본시장 등에 관해 폭넓은 인사이트를 갖췄겠지만 왠지 최신 트렌드나 문화적인 이슈와는 거리가 멀어 보일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정태영은 디자인과 대중문화에 매우 민감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현대카드가 소비자들과 만나온 두가지 축이 바로 ‘디자인 경영’과 ‘문화마케팅’이다.

비욘세와 레이디 가가, 폴 메카트니, 콜드플레이 등 세계 최고의 음악가들이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로 내한했고 현대카드는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포함해 뮤직, 트래블, 쿠킹 등 다양한 도서관을 운영한다. 이 라이브러리들은 ‘아날로그적 영감의 공간’이라는 단어로 소비자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현대카드 회원 본인 및 동반 2인 무료입장으로 운영된다.

정태영이 운영하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현대커머셜 등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홍보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해당 콘텐츠들을 만들때도 중요한 원칙은 디자인적인 관점과 문화콘텐츠 관련 내용이었다.

2년 동안 현대카드 회원소식지와 현대캐피탈 SNS 채널 콘텐츠를 직접 제작했던 매거진 에디터는 “금융 상품을 소개하거나 혜택을 비교하는 1차원적인 콘텐츠는 최대한 배제하고, 소비자들에게 문화적인 인사이트나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과제였다”고 말했다.

이 에디터는 “어지간한 문화예술 잡지보다 훨씬 더 트렌디한 콘텐츠를 매일, 매월 생산했다. 당시 담당자들은 ‘현대카드다운, 현대캐피탈스러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고 실제로 실무자들은 그런 단어들을 썼다”고 말했다.  

현대커머셜의 온라인 콘텐츠를 담당했던 한 디자이너는 “현대카드가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서체를 사용하고, 디자인 톤앤매너는 어지간한 광고 콘텐츠나 잡지 콘텐츠와 비교해도 더 훌륭했다”고 말했다. 이 디자이너는 “자료가 필요할 때 예전에는 대형출판사 외국 서적 코너를 뒤졌지만 요즘은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찾는다”고 말했다. 이렇듯 디자인과 문화콘텐츠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 것은 CEO의 성향과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대형 도서관이 부럽지 않은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모습 (사진=현대카드 라이브러리 홈페이지 캡쳐)
대형 도서관이 부럽지 않은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모습 (사진=현대카드 라이브러리 홈페이지 캡쳐)

◇ IT역량 강화하며 승승장구, 업황 변수는 해결해야 할 과제

현대카드는 현대자동차그룹이 2001년 ‘다이너스클럽 코리아’를 인수해 만든 회사다. 인수 당시 현대카드 시장 점유율은 약 1.8%로 업계 하위권에 머물렀다. 정태영은 2003년 현대카드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뒤 현대카드를 업계 상위권으로 키워냈다. 

소비자들의 눈을 즐겁게 한 성과도 많았다. 포인트를 활용해 다양한 마케팅을 벌이고 카드 디자인 등으로 차별화를 꾀한 현대카드M이 정태영의 작품이다. 이후 정태영은 ‘디자인을 활용해 차별화된 브랜드를 구축하자’고 독려하며 ‘잇(it)워터’ ‘잇와인’등의 제품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기도 했다. 매출 면에서도, 그리고 브랜드 이미지 제고 측면에서도 정태영의 공이 매우 크다.

디자인이나 문화 등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카드는 2015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사무소를 열고 마이크로소프트 출신 임원을 영입했다. 고객행동패턴에 맞는 상품검색 서비스를 출시하고 블록체인 관련 특허를 취득하는 등 IT 역량도 강화했다. 스타트업 공유 오피스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 영역도 넓혔다. IT역량을 키우는 것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원동력이라는 판단에서다.

다만, 카드업계에 전반적으로 불어닥친 시장 변화는 정태영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카드사들은 간편결제 서비스의 성장,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등 경영 변수와 맞닥뜨렸고 미래 먹거리 발굴에 힘쓰고 있다.

정태영은 지난해 10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변화의 시기에는 모두가 스타트업”이라고 밝히며 도전정신을 드러낸 바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지난 19년간 계약을 맺어왔던 코스트코와 삼성카드의 관계를 종료시키고 현대카드가 코스트코 유치에 성공한 것은 호재다. 기사 첫 부분에 소개한 카드 발급 부스 직접 방문은, 양사의 제휴가 시작된 첫날 이뤄진 이벤트였다.  

트렌디한 감각과 문화적인 감성을 앞세워 소비자와 소통하고 IT 역량 강화에 힘쓰는 정태영. 그는 스타트업 CEO 못잖은 변화의 정신으로 기업을 이끄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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