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왕실 공식 맥주'로서 역사적 가치 높아
파스퇴르와 손잡고 라거의 표준화, 산업화에 앞장선 브랜드
예술 활동 지원으로 지역사회 공헌하는 '책임있는' 브랜드

덴마크 왕실 공식 맥주 칼스버그 (사진 = 골든블루 홈페이지 캡쳐)
덴마크 왕실 공식 맥주 칼스버그 (사진 = 골든블루 홈페이지 캡쳐)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한달 전, 덴마크 왕세자가 국내 한 백화점을 방문해 화제가 됐었다. ‘한국-덴마크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백화점과 덴마크 대사관이 공동 주관한  ‘덴마크 라이프스타일 위크’에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행사에는 덴마크의 여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참여했다.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이 국내에서 인기를 끈 것은 이미 오랜 이슈여서 덴마크 브랜드에 향한 관심은 충분히 예상됐다. 그런데 당시 행사에 낯익은 브랜드가 하나 눈에 띄었다. '칼스버그 맥주'다.  

칼스버그 맥주 기사에는 늘 '덴마크 왕실 공식 맥주'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하지만 단순히 한 줄로 칼스버그의 역사와 가치를 논하기는 어렵다. 이 얘기를 하려면 우선 1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덴마크 국왕 프레드릭 7세가 전국 양조가들을 모아놓고 준엄하게 명령했다

“덴마크 왕실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맥주를 만드시오”

 

지금이야 맥주가 세계적인 주류산업이지만, 그 시절만 해도 맥주는 양조장 주인 손맛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고, 생산량 역시 양조장 규모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말하자면. 산업화가 이뤄지기 이전, 가내수공업 형태였다. 덴마크 국왕은 여기에 브랜드 가치를 매겨 산업화를 이뤄내고 싶어했다. 

양조자들과의 대결에서 최종 승리자가 된 사람은 20대 중반 청년 크리스티안 야콥센이다. 그는 ‘칼스버그’ 맥주를 만들었다. 칼스버그라는 이름은 야콥센의 아들 칼(Carl)과 그의 양조장이 있던 언덕(Berg)에서 따온 이름이다. 왕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 맥주에는 빨간 왕관 모양이 새겨졌다. 덴마크 왕실 공식 인증 마크다.


□ ‘기술 표준화’ 초석 세운, 라거의 조상

180년 전, 당시 국왕이 본인 입맛으로 고른 맥주에만 그쳤다면, 굳이 오늘 칼스버그를 다시 논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 맥주에는 현대의 소비자들이 짚어볼 만한 이야기거리가 많다.

칼스버그를 논하려면 꼭 함께 얘기해야 할 사람이 있다. 프랑스 화학자 겸 미생물학자 루이스 파스퇴르. 생물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과학적으로 논한 인물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파스퇴르 우유’의 그 파스퇴르 맞다.

파스퇴르는 칼스버그에도 큰 영향을 줬다. 그는 알코올 발효에는 효모가 관여한다는 것을 발견한 학자다. 1881년, 칼스버그 연구원인 크리스티안 한센이 효모를 분리 추출해 순수 배양에 성공했고 이 효모를 맥주에 활용했다. 파스퇴르가 발견한 효모 이론으로 순수한 효모를 배양하는데 성공한 첫 번째 맥주회사가 바로 칼스버그다. 효모를 사용한 게 무슨 의미냐고? 이때부터 칼스버그는 맥주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오랫동안 보관하거나 이동해도 품질이 유지될 수 있었다.

칼스버그는 효모를 특허 등록해 혼자만의 비법으로 사용하는 대신 다른 맥주회사와 기술을 공유했다. 요즘 우리가 마시는 라거 맥주에는 칼스버그가 개발한 방식을 바탕으로 한 효모가 들어있다. 생물학적 학술명으로는 파스퇴르 효모지만 맥주 업계에서는 칼스버그 효모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맥주 제작 기술의 ‘표준화’를 이룩한 셈이다. 이렇게 칼스버그는 라거의 조상이 됐다.


□ 예술을 사랑한 맥주, 소비자 ‘술값’이 미술관 세웠다 

창업주 크리스티안 야콥센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칼 야콥센이 칼스버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들도 맥주 팔아 번 돈을 의미 있는 곳에 썼다. 야콥센은 고대 예술품을 1만점 가까이 수집했는데, 자신의 수집품들을 코펜하긴 시와 덴마크 당국에 적극적으로 기부했다. 그가 기부한 예술품이 너무 많아 코펜하겐에는 미술관을 따로 지어야 했다. 로댕과 고갱 작품을 다수 소유한 칼스버그 미술관(Ny Carlsberg Glyptotek) 덕분에 코펜하겐은 ‘예술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었다.

코펜하겐 랜드마크 중 하나인 인어공주 동상도 칼 야콥센이 의뢰해 만들었다. 1909년, 덴마크 왕립극장에서 인어공주 발레를 보고 크게 감명 받은 야콥센이 조각가에게 안드르센 동화와 어울리는 조각상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했다. 이로부터 4년 후 조각상이 완성됐고 야콥센은 이를 코펜하겐 시에 기증했다. 덴마크 관광 명소 게피엔 분수도 칼스버그 재단이 기증했다. 국내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야콥센은 세상을 떠나면서 “벽난로에 땔감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내 관에는 꽂을 얹어놓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럭셔리’ 맥주, 칼스버그의 역사와 의미다.


1만원짜리 한 장이면 맥주를 2리터나 마실 수 있는 시대다. 전 세계 곳곳에서 생산되는 유명 브랜드 맥주, 전국 방방곳곳 수제 맥주가 맛과 향이 고스란히 보관된 상태로 장바구니에 담기는 시대다. 편리한 접근성 속에 소비자들은 습관적으로 지갑을 연다. 하지만 제품을 소비할 때, 그 제품이 가진 역사와 가치를 곱씹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치를 공유하는 시대니까 말이다.

칼스버그는 주류업체 골든블루를 통해 국내에 수입된다. 이 맥주는 편의점에서도 쉽게 마실 수 있지만, 웨스틴 조선호텔 팝업스토어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폼나게 먹어볼 수도 있다. 6월과 9월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7~8월은 매일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팝업스토어가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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