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발주 특수선(함정)만 명맥유지…상선은 포기
조선 非전문가 경영…수빅조선소 투자가 패착
IMO 환경 규정 강화…중소형 상선 수주영업론 제기
한진重 "(영도)조선소 폐쇄는 있을 수 없는 일" 발끈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전경.    (사진제공=한진중공업)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전경. (사진=한진중공업 제공)

[소비자경제신문 임준혁 기자] 한때 대한민국 ‘조선업 1번지’라 불리던 부산 영도가 흘러간 옛노래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한진중공업이 함정 등 특수선 사업을 제외하면 사실상 상선 분야는 개점휴업 상태인 까닭이다. 정부 발주 특수선 건조에 머물 뿐 상선 수주실적은 바닥을 헤매면서 조선사업 부문이 2년 뒤에 없어지고 건설 부문만 남을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이에 대해 경영환경이 호전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21일 금융·조선업계에 따르면 2007년 세워진 한진중공업의 자회사 필리핀 수빅조선소(HHIC-Phil Inc.이하 ‘수빅조선소’)가 올해 초(1월) 기업회생절차 신청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가 3월 채권단의 6874억원 출자전환 결의로 위기를 간신히 벗어났다. 경영진의 판단 실수로 발생한 빛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등이 떠안고 국민의 혈세로 이를 매꾼 셈이다.

이같은 사태는 조선소에 건설 출신 인물들이 주요 자리에 오르면서 경쟁력을 회복할 기회를 놓친 패착이라는 평가다. 특히 수빅조선소는 조남호 회장의 판단이 있었지만 회생절차 개시 상황인 현재로서도 책임 소재는 불분명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수빅조선소를 제외한 한진중공업의 매출구조는 약 70%를 국내 주택·토목·부동산 부문에 집중돼 있다”며 “이러한 실정을 감안하면 한진중공업의 밸류에이션은 조선업체보다는 플랜트 비중이 낮은 국내 건설주들과 비교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진중공업은 조선업체가 아닌 건설업체라는 평가다.

한진중공업은 1937년 일본 자본으로 영도에 세워진 조선중공업(朝鮮重工業)이 전신이다. 해방 후 대한조선공사로 출범한 후 한국의 조선 1번지로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1위의 조선강국으로 성장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소가 생기기 전까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중형 컨테이너운반선과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탱커), 벌크선, 특수선(함정) 등 선종을 가리지 않고 건조해냄으로써 조선 1번지로서 명성을 이어왔다. 특히 컨테이너선의 경우 500여 척의 건조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고부가가치 선종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멤브레인형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을 지난 1995년 동양 최초로 개발·건조하기도 했다. 상선으로 분류되는 특수목적선도 다양하게 건조했다. 해저광케이블선을 비롯해 ▲잠수지원선 ▲자동차운반선 ▲냉동운반선 ▲시추선 ▲해양조사선 등을 국내 최초로 건조해 냈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극지용 쇄빙 연구·조사선인 ‘아라온호’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탄생했다.

특수선 사업 부문은 ‘독도함’으로 알려진 대형수송함과 상륙함, 구난함, 공기부양정, 고속정 등을 다수 건조해 해군에 인도한 바 있다. 이들 특수선들 역시 영도조선소에서 모두 건조됐다.

2000년대 초반까지 영도조선소는 중형 상선, 특수선 모두 건조가 가능한 조선소였다. 하지만 영도조선소는 도심 주변에 위치해 면적이 협소하다는 태생적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26만4,4462㎡(약 8만평)의 면적에 도크 3기, 의장안벽 4개, 3000톤급 해상크레인 등으로는 갈수록 대형화되는 선박의 건조에 있어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경영진이 깨달은 것이다. 조선업을 잘 몰랐던 최고경영자와 의사결정자들은 1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이상의 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할 새로운 부지로 필리핀 수빅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선택은 한진중공업 창사 이후 최대의 실수였다.

전문가와 업계에서는 한진중공업 조선사업 부문 위기의 이유로 두 가지를 꼽고 있다. 바로 경영진에 조선 전문가의 부재(不在)와 수빅조선소로 무리한 진출에서 현 위기가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수빅조선소의 몰락은 예견됐다는 평가다. 수빅조선소가 건조지연에 시달리며 수주잔량이 남아 있음에도 적자폭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조선업의 수익성은 설계능력에서 나오지만 수빅조선소에선 건조경험이 없는 중대형급 컨테이너선 등을 수주했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산업 관계자는 “1999년 한진건설과 중공업이 합쳐진 이후 건설만 담당해 온 최고경영자 및 의사결정권자들이 조선사업 부문을 경영해서 회사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며 “건설산업이 조선산업과 마찬가지로 수주산업인 것은 맞지만 건설과 조선은 산업구조 등이 완전히 다르다”고 일갈했다.

이어 “수빅조선소는 인건비가 (부산 영도의)1/15 수준이라는 말 하나에 급조된 조선소”라며 “조선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기자재업체가 주변에 위치해야 한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은 수빅만 허허벌판에 조선소만 세워서 기자재 조달을 전부 한국에서 해 와야 했다. 따라서 운영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 적자구조를 낼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즉, 현지에 기자재업체가 전무한 관계로 한국에서 건조에 투입되는 모든 기자재들을 배로 싣고 와서 시간·비용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

기후적으로도 수빅조선소는 배를 지을 입지조건이 아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전 세계의 조선소는 북위 30~60도 중위도 지방에 대부분 분포한다. 수빅과 같은 열대지방은 선박 건조과정에서 도장 작업 중 도료(페인트)가 떠서 배를 짓기에 불리한 기후를 갖고 있다”며 “인력도 숙련된 인력이 아니다 보니 조업과정에서 하자가 많이 발생했고, 하자보수도 즉시 이뤄지지 않아 추가비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실제 2015년 수빅조선소의 수주잔고는 한진중공업이 건조한 적이 없는 선박들이었다. 당시 9000TEU급 컨테이너 운반선 2척은 건조 작업이 6개월 지연된 상태였다. 수주 잔고 36척 중 15척의 건조 작업이 지연되고 있으며 나머지 선박들도 순차적으로 건조가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납기를 준수하지도, 선주가 원하는 사양으로 배가 인도되지도 못했다. 건조원가가 계속 상승했고, 건조지연은 조선소 신뢰도로 이어져 악순환에 빠졌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한진중공업의 조선업 경쟁력이 약화된 또 다른 이유로 사업을 책임질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병모 사장은 40년을 조선업에 몸담아 온 조선전문가다. 하지만 지난 3월 29일부로 선임돼 역량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이병모 사장 취임 이전까지 사장직을 맡아온 이윤희 전 대표이사는  조선·건설부문 통합 대표를 맡았다. 그는 35년 동안 토목업계에 몸 담아 온 토목분야 전문가다. 안진규 전 대표이사는 공사부문에서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2006년 수빅조선소를 건설할 때 소장을 맡은 뒤 영도조선소와 수빅조선소의 생산총괄담당 부사장을 역임했다. 현 이병모 사장을 제외하고 10여년간 한진중공업에서 조선전문가로 꼽히는 수장은 2007년 취임했던 박규원 전 대표이사가 마지막이었다는 평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중공업은 조선업이 사양사업으로 접어들자 건설에 힘을 싣고 영도는 함정 같은 특수선, 수빅은 상선을 전담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진중공업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한진건설 출신인 조남호 회장과 그의 측근들이 수빅조선소 건설을 계기로 조선업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기 시작했다”며 “조 회장은 향후 인건비가 관건이라는 판단 아래 필리핀 수빅에 조선소를 세워야 한다는 결단을 내렸는데 이에 이의를 제기하다 지친 조선부문 인력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떠나게 됐다”고 전했다.

1999년 한진중공업과 한진건설이 합병한 이래 조선, 건설 출신 사이 갈등이 있었지만 서로 큰 간섭 없이 운영됐다. 그런데 수빅조선소 기획 단계부터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후문이다. 금융시장에서 “한진중공업은 최근 10년 간 수장 자리에 조선전문가가 없었다”, “한진중공업의 위기는 배를 모르는 사람이 배를 영업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막중한 이자비용을 감수하면서 2조원 가량을 투자한 수빅조선소의 수익성은 기대했던 만큼 나오지 않았다. 조선업은 고난도 기술을 갖춘 숙련공을 확보해야 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전문가들은 수빅은 오지에 위치한 만큼 인력 확보가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수빅에서 일했던 한국인 근로자들은 현지 인력과 소통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인프라, 기자재 조달에도 불만을 토로했다. 애초부터 수빅에 조선소를 세운 것은 조선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결정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산업은행의 한진중공업 구조조정에서 상선 부문은 사실상 배제, 관련 인력들은 잉여인력으로 분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선 부문이 사라지면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도 사실이다. 조선업 부진을 상쇄하겠다는 건설사업 부문도 실적 개선이 여의치 않다.

그렇다면 특수선 부문은 어떤 상태일까?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영도조선소에서 전담하는 방산부문 특수선은 이익 기여도가 낮다. 2008년부터 방산업계는 전면적으로 도입된 ‘최저가 입찰제’로 인해 기술력을 축적하기도 어렵고 이익도 별로 나지 않는 상황이다. 수빅조선소 문제가 해결되면 한진중공업은 사실상 조선업에서 손을 떼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한진중공업 조선부문 특수선(방산) 사업분야의 3월 말 기준 수주잔량은 23척, 9264억원이다. 수주잔량과 관련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5월 현재 약 25척, 3년치의 일감을 확보한 상태”라고 소비자경제와의 통화를 통해 밝혔다.

이에 대해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진중공업의 수주잔량은 국가에서 발주한 특수선만으로 구성돼 있다”며 “방위계획 등에 의해 함정이 발주되는 만큼 발주 시기에 틈새(텀)가 적지 않게 있을 수 있다. 3년치 일감이 꽉 찬 것이 아니라 3년 후에 해군이나 해경에 인도하는 선박이 있어서 3년치라고 말한 것”이라고 특수선 분야의 수주 및 인도 패턴을 무시한 집계임을 꼬집었다.

업계에서 이미 수주한 20여 척의 특수선 건조·인도가 끝나면 사실상 수주영업을 하지 않아서 상선 부문과 버팀목인 특수선의 일감이 바닥나 사실상 영도조선소를 폐쇄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본다는 지적에 대해 한진중공업 측은 강하게 부인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여러 종류의 해군, 해경 함정을 건조한 경험을 바탕으로 영도조선소는 기술력과 노하우를 갖고 있다”며 “수빅조선소를 정리하고 재무상태가 나아져 상장이 재개되는 상황에 수주영업 포기나 2년 후 조선소 폐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특수선을 건조하는 방산업체가 한진중공업만 있는 것도 아니고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등 대형 업체도 방산업체인데 이들 공룡과 싸우려면 특수선 분야에만 의지하지 말고 상선 분야에도 영업활동을 해야 한다”며 “전 세계적으로 선박은 점점 대형화되는 추세다. 이러한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진중공업도 대형 선박을 수주해야 하는데 영도조선소의 물리적 크기 때문에 수빅조선소로 양분화했다.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건전한 사업포트폴리오를 가져가려고 하면 민간이 발주하는 중소형 상선도 수주가 뒷받침이 돼야 한다”고 한진중공업이 조선사업 부문의 미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조언했다.

지금은 국내 조선 ‘빅3’가 대형 LNG운반선이나 초대형원유운반선 등 대형 선박 위주로 수주를 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추진하는 선박 유해물질 저감 규정으로 이미 건조·운항중인 중소형 컨테이너선이나 PC탱커 등의 교체수요가 발생한다.

다시 말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과거 전성기에 수주·건조해왔던 중소형 상선의 신규 발주 수요가 약 2년 후에 생기는 만큼 이에 대한 수주 영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계 해운조선 시황에 따라 일희일비했던 한진중공업이 수빅조선소를 포기한 상태에서 영도조선소를 함정 등 특수선만 의지하고 상선 부문 수주잔량 제로(0)인 현 상태로 방관한다면 과거 ‘한국 조선 1번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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