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日영화 ‘일일시호일’의 다도와 인생 이야기
[문화산책] 日영화 ‘일일시호일’의 다도와 인생 이야기
인생에 존재하는 ‘금방 알 수 있는 일’과 ‘금방 알 수 없는 일’
  • 곽은영 기자
  • 승인 2019.01.28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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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일시호일' (사진=영화사 진진)
영화 '일일시호일'의 한 장면 (사진=영화사 진진)

 

[소비자경제 곽은영 기자] “같은 사람들이 여러 번 차를 마셔도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아요. 생에 단 한 번이다 생각하고 임해 주세요.” - 영화 <일일호시일> 中

영화 <일일호시일>은 아직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스무 살의 노리코(쿠로키 하루)가 사촌 미치코(타베 미카코)를 따라 이웃의 다케타(키키 키린) 선생에게서 다도를 배우며 일상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동작과 엄격한 규칙들로 가득한 다도에 불만이었던 노리코는 어느 순간 규칙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 다도를 받아들이면서 절기와 날씨를 음미하고 그 속에 있는 자신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 

누구나의 인생처럼 노리코에게도 취직에 실패하는 순간, 실연으로 상심하는 순간, 가족을 잃어 슬픔으로 가득 차는 순간이 있다. 그럼에도 매주 다도 수업만큼은 빠지지 않는다. 꾸준히 쌓아간 다도의 시간은 노리코가 내면이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일일호시일(日日是好日)은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란 의미를 가진 한자어다. 영화는 인생의 좋은 날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성장은 어떻게 이루는지, 변덕이 많은 인생에 익숙해지는 방법은 무엇인지 묻는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쌓아나가는 태도에서 무언가를 보여준다. 

영화 <일일시호일>은 모리시타 노리코의 동명 베스트셀러 에세이 '매일매일 좋은 날'(원제: 日日是好日)을 영화화 한 것으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한 화제작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좋은 날'은 모리시타 노리코가 25년 동안 다도를 배우며 알게 된 인생을 담은 에세이다.

 

영화 '일일시호일' (사진=영화사 진진)
영화 '일일시호일' (사진=영화사 진진)

 

◇ 키키 키린의 마지막 인사

영화 <일일시호일>에서 방향을 잃은 노리코가 기댈 수 있는 어른인 다도 선생 다케타는 일본의 국민 배우 故 키키 키린이 연기했다. 키키 키린은 지난해 9월, 영화 <어느 가족>이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지병이었던 암으로 타계했다. 타계 전 키키 키린은 8월 일본 아사히신문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친필 메시지와 그림을 보냈다.

그녀는 ‘저는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만은 하지 말자고 살아왔습니다. 이런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이 또한 재미있잖아요’라고 말하며 사람들에게 계속 살아나가길 독려했다. 암 투병 중에도 꾸준히 연기를 이어온 그녀는 <일일시호일>에서 다케타 선생으로서 똑같은 마음을 전한다. 생전에 그가 마지막으로 찍어 남긴 영화 <일일시호일>은 ‘키키 키린이 남긴 가장 아름다운 작별인사’라는 평을 받고 있다. 

◇ 다도에서 말하는 의미의 무의미

일본의 다도는 전국 시대 무사를 중심으로 남성들의 취미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메이지시대부터 ‘여자의 교양’으로 인식되며 대중들에게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다. 원작자 모리시타 노리코는 1970년대 다도를 시작해 지금까지도 다케타 선생의 다도 교실에 다니고 있다.

다실은 일반적으로 다다미 여덟 장 크기의 넓은 방이다. 영화 초반 다케타 선생은 다도의 행동 하나하나에 ‘왜’ 이렇게 하는 것인지 의미를 묻는 노리코에게 의미를 물으면 곤란해진다고 말한다. “차는 먼저 형태를 잡고 거기에 마음을 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케타 선생의 대답은 인생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 같기도 하다. 

◇ 계절과 함께하는 태도

다도에서는 계절의 흐름과 절기에 따라 다실의 풍경이 달라진다. 절기는 태음력을 사용하던 시대, 계절을 표현하기 위해 일 년을 24절기로 나눈 것이다. 영화에서는 절기에 따라 내오는 차와 화과자의 종류, 사용하는 다기, 벽에 걸어두는 족자가 달라지는 모습을 조용히 보여준다.

절분 전날에는 매서운 겨울을 견디고 싹트는 새싹을 표현한 화과자 ‘움틈’을 먹으며 봄을 받아들이고, 여름에는 더위를 잊게 해줄 시원한 양갱 ‘수국’을 먹는다. 솥에 물을 끓이기 위한 도구도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5월에서 10월 사이에는 ‘풍로’로 물을 끓이고, 11월에서 4월까지는 ‘화로’로 물을 끓인다. 다도를 갓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노리코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다도에 혼란스러워 하지만 어느덧 절기를 몸으로 익히며 계절을 느끼기 시작한다.

다케다 선생은 말한다. “그건 여름 방식이고 이건 겨울 방식이죠. 괜찮아요. 여름 방식은 다 잊어요. 감각을 바꿉시다. 화로가 나왔으니 그 방식에 집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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