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융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가 9일 투쟁상황실에서 '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노동자들의 근무 실태를 알렸다.
전국금융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가 9일 투쟁상황실에서 '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노동자들의 근무 실태를 알렸다.(사진=소비자경제)

[소비자경제신문=권지연 기자]  “고객들이 지점에 다녀가면 그 고객들의 데이터를 가지고 금융상품을 권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관리하고 마케팅 및 추가 서류 작업까지 해야 합니다. 여신이나 기업과 관련한 업무는 서류 검토나 의견서 써서 심사 올리고 하는 것들에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100개-200개의 법인 거래처를 관리하고 이밖에 업무들을 처리하다보면 야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의 한 은행에 근무하는 노동자 A씨의 하소연이다.  이 같은 현실은 단지 A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은행은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으로 알려졌지만 은행 노동자들의 명보다 암은 훨씬 짙었다. 

전국금융노동조합이 장시간 노동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금융노동자들의 현실의 심각함을 알렸다. 금융노조는 노동시간 단축과 정년, 임금피크제도 개선, 핵심성과지표(KPI) 제도 개선, 노동이사제 도입 등에 대한 요구안을 사측에 제시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결국 총파업을 결의했다. 

◇ 금융노동자 절반, 주 5일 연장근무

금융노조가 시중은행, 국책은행 지방은행 등 33개 지부 노조원 9만3939명을 대상으로 노동시간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1만8036명의 절반(총 8179명, 50.9%) 가량은 주5일 3시간 이상의 연장근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주일에 3일 이상 연장 근로하는 비율은 70.2%에 달했다. 응답자의 34.1%가 8시 전에 출근했다. 또, 응답자의 60.1%가 오후 7시 이후 퇴근하고 오후 8시 이후 퇴근 비율은 18%로 나타났다. 

이 중 69.8%가 업무량 과다 및 인력부족을 연장근로의 이유로 꼽았다. 특히 기업고객 대면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장시간 노동이 가장 심각했다. 이 경우 7시 이후 퇴근은 78.8%, 8시 이후 퇴근비율은 27.9%로 조사됐다. 

또 응답자의 38.1%는 연장근로에 대한 보상도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의 52.6%가 바쁜 업무로 점심을 굶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60.9%는 인원 충원 없이는 정상적인 휴가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휴가 미사용 사유로 13.7%는 ‘상급자 눈치’ 때문으로 답해 은행 내 경직된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이에 금융노조는 약2만9천명 신규채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우리·신한·하나·NH농협은행)의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규모가 약 2250명 수준이지만 금융노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인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금융당국과 사측이 희망퇴직을 권장하는 분위기에 금융노조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금융산업은 장시간 노동과 과당경쟁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사측은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인력을 감축하고 남아 있는 노동자들에게 달성 불가능한 실적을 요구해 노동력을 쥐어짜 왔다“며 “(금융권은) 산업 중 과로사 수 2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또 “해마다 은행원 수십 명이 암이나 심혈관 질환, 자살 등으로 사망하고 있다”며 “이중 4대 시중은행의 과당경쟁이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 인간성 말살하는 ‘핵심성과지표(KPI) 폐지’ 주장 

금융노조는 핵심성과지표(KPI)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핵심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KPI)는 은행 직원 성과를 평가하는 핵심 지표로 성가 평가 목록은 100가지도 넘는다. 이 지표가 곧 인사고가에 반영되는 만큼 은행원들은 매일 실적 경쟁에 시달리는데다 과도한 대출금리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월·분기·반기·연간 단위 실적 순위를 공개해 금융 노동자들의 압박 스트레스가 커진 만큼 은행들의 실적은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 상반기 시중은행 6곳(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IBK기업)의 당기순이익은 6조6609억 원이다. 

한 은행 노동자는 “누군가는 귀족노조라고 하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돈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근무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노조는 오는 9월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금융노조는 9일 투쟁상황실에서 '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밝혔다. 

지난 7일 금융노조는 쟁의행위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전체 조합원 9만3427명 중 7만6778명(82%)이 투표에 참여했고 찬성률 93.1%(7만1447명)로 가결됐다. 

금융노조는 13일부터 금융투쟁상황실을 가동하고 9일 서울과 수도권 지역을 시작으로 지역별 순위 집회에 돌입한다.  20일 부산과 울산, 경상남도, 22일에는 대구권 지역을 순회한 뒤 오는 29일에는 서울시정광장에서 수도권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

금융노조는 이달 말까지 사용자협의회가 결단을 내려주길 촉구했다.

여기에다 오는 13일에 고용노동부에 특별 근로감독 요구서를 전달하고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과 면담도 추진한다. 금융당국에 과당경쟁 억제 대책 마련과 은산분리 규제 완화 반대를 요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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