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우 편집인 겸 발행인
윤대우 편집인 겸 발행인

[소비자경제=칼럼] 한국과 독일의 러시아 월드컵 경기를 앉아서 볼 수 없었다. 경기후반부터는 계속 거실에서 서성이며 때론 무릎을 꿇기도 하면서 경기를 봤다. 앞선 스웨덴전과 멕시코 전에선 소파에 대자로 누워 편하게 봤었다. 이번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독일팀이 한국팀 패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골을 몰고 들어오면 여지없이 가슴이 쿵쾅쿵쾅 거렸다. 혹시나 골을 허용할까봐서다. 두 손이 저절로 모아졌다.

승률 1% 희망에 간절히 매달린 이유는 우리 대표팀이 3전 전패를 당했을 때 오는 국가적 상실감 때문이다. 축구가 전부인 영국이나 브라질, 스페인보다야 심각하진 않겠지만 4년을 기다린 월드컵에서 전패를 당하면 우리 국민들은 알게 모르게 낙심하고 의욕을 잃는다. 월드컵 때마다 경험한 바이다.

혹자는 축구하나에 온 국민이 목을 매어야하냐고 힐난한다. 그런데 국가적 통합이 유난히 어려운 대한민국은 월드컵으로 잠시나마 하나가 된다. 축구경기 과정과 결과가 좋아 국민모두가 기쁘고 한마음을 이룬다면 이보다 통합의 가치를 아름답게 이루어내는 순간이 또 어디 있겠는가. 잘하던 말던 밋밋한 태도보다 훨씬 더 순수한 반응 아닌가.

솔직히 2패를 당한 대한민국 월드컵 팀에게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바라지는 않았다. 다만, 최선을 다하길 원했다. 개인기와 조직력은 밀리더라도 죽으라고 뛰길 바랬다. 과거 차두리, 박지성, 이영표 처럼 말이다. 무기력했던 스웨덴전이나 어이없던 멕시코전과는 다르길 바랬던 것이다. 어디 나만 그랬을까.

마침내 김영권 선수가 추가시간에 한골 넣자, 새벽 1시가 넘었음에도 우레와 같은 비명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가족을 한 명 한 명 얼싸안고 기뻐했다. 감동적이었다. 간절함이 승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주세종의 긴 어시스트를 받은 손흥민이 전력질주하며 추가골을 만들어 냈다. 처음엔 어시스트한 공이 손흥민 보다 앞서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공은 기적같이 스피드가 줄더니 손흥민이 치고 나갈 수 있게 도와줬다. 이날 우리 선수들이 뛴 거리는 118km, 마라톤(42.195km)의 약 3배(2.79)를 뛰었다. 우리선수들은 그렇게 달리고 달려 세계 최강 독일을 잡았다.

유튜브에는 대한민뿐국만 아니라 멕시코, 잉글랜드, 브라질 국민들이 자국이 우승한 것처럼 기뻐 방방 뛰는 모습이 나온다. 베트남, 중국, 일본인 등 아시아인들은 한국이 아시아최강이란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줬다. 더욱이 다음날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한 일본이 폴란드전에서 0-1로 지고 있음에도 무사안일한 경기로 비판을 받은 상황이라 우리 축구팀 실력이 더욱 대비됐다.

이날 기사 댓글을 검색하다가 눈에 들어온 내용이 있었다. 독일 뮌헨에 살고 있다는 한 교민은 독일 직장동료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왜 한국은 멕시코가 스웨덴한테 0-3으로 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즉 16강 탈락확정을 알고 있음) 90분간 그렇게 열심히 뛰어 2골이나 만든거야? 이해가 안가네” 이 말을 들은 교포는 “그게 한국이다. 한국인은 결과보다 열정을 중시한다.”

한국이 세계최강 독일을 격파한 것은 그 자체가 최고의 외교성과라 볼 수 있다. 우리 팀 덕분에 16강에 오른 멕시코나 독일에 7-1이라는 수모를 당했던 브라질, 2차 대전 당시 독일에게 피해를 입었던 유럽 국가들은 우리를 응원했다. 한국 최고의 기업과 그 어떤 외교관도 못 이룰 성과를 이뤘다.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긍정으로 바꿔줬다.

이러한 비슷한 간절함은 몇 년 전, 정확히 2015년 11월 일본에서 열린 WBSC 프리미어21 야구 4강전에서도 있었다. 당시 한국은 일본 투수 공을 전혀 때려내지 못하고 9회까지 0-3으로 패색이 짙었다. 이제 남은 아웃카운트는 3개, 경기를 뒤집기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

야구팬이라면 대부분 간절한 마음을 갖기보단 포기하지 않았을까한다. 필자는 그때도 서성이기도 하고 무릎을 꿇었다. 아무 때나 꿇는 무릎은 아니다. 왠지 꼭 이겨줬으면 할 때 그 간절함이 생긴다. 그날도 기적이 일어났다. 이대호의 기적 같은 끝내기 안타로 4-3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야구만큼은 자신들이 최고라 생각했던 일본의 콧대를 시원하게 꺾어줬던 순간이었다. 잊혀지지 않는 명승부였다. 아마도 선수들과 한국 시청자의 간절함이 신께 전달됐었나 보다.

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윤성민, 스피드스케이트 이승훈도 간절함으로 금메달을 땄다. 은메달, 동메달은 딴 선수들을 비롯해 메달을 못 땄지만 최선을 다한 선수도 간절함이 있었다. 경쟁상황이라면 더 간절한 사람이 반드시 승리하게 돼 있다. 간절함은 표면상의 승리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실패를 했어도 내면의 금메달이 이미 주어진다.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과 내공 말이다.

무엇이든 간절한 소망이 있으면 우리는 기어코 일을 만들고 말았다. 일제치하 독립에 대한 간절한 소망, 민주화에 대한 간절함, 경제발전을 위한 치열함, 2002년 월드컵 4강을 위한 염원, 간절했던 촛불시위, 그리고 러시아 월드컵 1승에 대한 간절한 소원 말이다. 간절할 때 승리한다.

현시점에서 우리 조국의 간절함은 무엇인가 진정한 한반도 평화와 경제발전, 청년, 청소년들이 꿈과 소망을 갖는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우리나라, 출산율의 증가, 모든 기업이 신나게 일하는 일터, 거룩한 대한민국, 강대국이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국방과 외교가 튼튼한 나라를 간절히 소원한다. 그 때가 오기를 바라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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