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7명 학교 업무 중 부상이나 질병 얻은 적 있다"

2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부직본부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학교현장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권 실현을 촉구했다.(사진=소비자경제)

[소비자경제=권지연 기자] 세계산재사망 추모의 날(4월28일)을 앞두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며 피켓을 들었다. 

<소비자경제>는 제대로 된 안전장비 하나 없이 과중한 노동을 지속하다 각종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했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 "사람 키우는 학교에서 노동자 죽어나는 현실 방치할 것인가"

# 학교현장에서 17년이 넘도록 급식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양선희 씨는 비정규직이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하면 2시가 다 돼서야 점심을 먹을 때도 있다. 그 정도로 업무량은 많고 힘들다.

양 씨의 업무는 조리뿐이 아니다. 뜨겁게 달궈진 솥과 솥 사이를 넘나들면서 후드 청소를 하는 일, 미끄러운 바닥에서 물통과 플라스틱 의자를 밟고 곡예 하듯 천장을 닦는 일까지 모두 양 씨가 해야 할 일이다. 매일 불안하게 일했던 양 씨는 2011년, 일하는 도중 두 차례나 사고를 당했다.

처음 사고는 화상이었다. 수저 삶는 솥의 안전고리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장화 속으로 펄펄 끊는 물이 들어와 2도 화상을 입었다.

1달 간의 치료가 끝나고 출근한지 1주일 만에 야채절단기에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양 씨는 스스로 병원을 찾았다. 그 누구도 119구급대를 불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학교현장에 왜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없는가”에 물음표를 던졌다. 그러면서 “분명한 산업재해였지만 학교 책임자의 눈치를 보고 또 봐야 했다”고 말했다

#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10년이 넘도록 급식노동자로 일해 온 김영애 씨도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 2014년 산업재해판결이 내려졌지만 근로복지공단조차도 노동자 편이 아니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만큼 입증하기가 어려웠다.  

겨우 산재 인정을 받아 김 씨가 낸 병원비의 3분의 1가량(보상에서 비급여 항목 제외)과 산재기간동안의 임금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김 씨는 급식노동자의 80%가까이가 질병을 호소하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인력부족으로 골병 드는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급식노동자 1인 식수 인원은 공공기관이 평균 약 29명, 많아야 50-60명인데 학교급식 노동자는 1인당 식수인원이 130-150명 이다”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1인 평균 식수 인원이 타 기관보다 2배-3배 가량인 셈이다

학교급식 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와 반복되는 근골격계 부담 작업으로 학교급식 노동자들 중 미국산업안전보건연구소(NIOSH)기준 90% 이상이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해 타 산업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전국 각급학교 특수교육지도사 45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을 보아도 학교 현장의 노동 현실은 매우 암울하다. 

응답자의 77%가 업무 중 부상이나 질병을 얻은 적이 있다고 답했고 71%는 근골격계 질환을 앓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는 48%가 적절한 인력이 배치되지 않아 무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55%는 휴게시간조차 사용하지 못했다. 산재처리 했다는 응답은 4%에 불과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실태 조사-

반면 산업재해신청과 인정률은 믿기지 않을 만큼 낮다.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가 인천지역 급식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업무상 사고 또는 질병을 얻어도 전혀 치료받지 않은 비율은 28,9%(58명),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개인이 부담했다는 응답은 96.1%(140명)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2.1%(3명)만이 산재처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씨는 '라돈'과 '석면'에 노출돼 있는 학교 현장에서 늘 불안하게 근무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세계보건기구(WHO)는 흡연 다음으로 심각한 폐암의 원인으로 라돈을 지정했다. 라돈은 심각한 발암물질이지만 2017년 학교 실내 공기질 측정 조사대상 1만350여 곳 중 480개 초, 중, 고등학교에서 라돈 기준치가 초과한 것으로 나타나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전했다.

◆ 발암물질 없는 학교·노동자 골병 없는 노동환경 만들기 촉구

“비정규직은 타고날 때부터 비정규적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몸이 튼튼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산재 규정도 제대로 없습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학교 급식실을 ‘기관구내식당업’으로 분류하고 산업보건안전법 제119조 제2항에 따라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운영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운영 매뉴얼조차 제대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

2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한 학교 현장을 만들어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학교현장에서 비정규직의 노동 현실은 특히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며 이제야 대책을 만들어봐야 한다고 말하는 교육부와 교육청, 고용노동부의 안일함을 규탄했다.

이들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학교전체 공간에 대한 공기질 측정 실시로 발암물질을 제거하고 석면철거 공사 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안전을 확보할 것,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위한 매뉴얼 제공과 교육공무직 전 직종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할 것, 적정 특수교사 인력을 배치하고 휴게시간을 보장할 것, 산재 은폐의 온상인 공상처리 및 업무상 재해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할 것 등이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람을 키우는 학교에서 비인간적인 행위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목청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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