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군기 잡는 문화 ‘태움’ 만연

(사진=픽사베이)

[소비자경제=곽은영 기자] 지난 15일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하던 신입간호사 A씨가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남자친구는 간호사 조직 내 ‘태움’ 문화가 A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의 남자친구는 A씨가 평상시 대화에서도 “출근하기가 무섭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지?”라는 말을 자주 했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에는 “나 큰 일 났어, 무서워 어떡해?”라는 말을 했다며 간호조직에서 당연시되고 있는 ‘태움’과 선배들의 지속적인 괴롭힘이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서울아산병원은 ”병원 자체조사 결과 선배의 괴롭힘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현재 경찰은 해당 간호사의 정확한 사망 동기를 조사 중에 있다. 누리꾼들은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태움’ 사례를 공유하며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태움’은 간호사 사회에서 선배가 후배를 무섭게 가르치며 군기를 잡는 문화로 알려져 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의 용어에서 그 혹독함을 짐작하게 한다. 간호사가 생명을 다루는 직종이다 보니 작은 실수도 없도록 후배를 엄격하게 가르치는 관습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도가 넘는 인격모독과 폭력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 재가 될 때까지 무엇을 태우나?

이런 가운데 대한간호협회가 20일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1차 결과를 발표했다. 대한간호협회와 보건복지부가 간호사 인권침해 행위 등 유사 사례 발생 현황 파악을 위해 진행한 설문에 참여한 7275명의 설문내용을 분석한 결과, 간호사 10명 중 4명 이상은 동료 간호사나 의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12개월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사람은 40.9%. 가장 최근 괴롭힘을 가한 가해자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직속상관인 간호사 및 프리셉터라고 답한 사람이 30.2%로 가장 많았고, 동료간호사가 27.1%, 간호부서장이 13.3%, 의사가 8.3%로 병원 내 괴롭힘의 대부분이 관계자로부터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괴롭힘의 구체적 사례로는 ‘고함을 치거나 폭언하는 경우’가 1866건으로 가장 많았고, ‘본인에 대한 험담이나 안 좋은 소문’이 1399건, ‘일과 관련해 굴욕 또는 비웃음거리가 되는 경우’가 1324건으로 뒤를 이으며 괴롭힘의 범주가 업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비업무적인 측면에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소비자경제>와의 통화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간호사 태움 문화에 대해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 명백하게 규정된 사안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태도를 취하고 있진 않다”며 “그렇지만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실행하는 등 현장의 문제점을 조사하고 대안을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인권침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방안에 대해서는 “실태조사 자체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이번 조사에서 노동관계법 위반 및 직장 내 괴롭힘 내용에 대해 실명을 밝힌 130여 명의 신고자 의견을 정리해 고용노동부에 접수한 상태”라며 “향후 구제절차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인권침해를 근절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실태조사 분석 결과 설문에 응답한 대부분의 간호사가 근로기준법, 남녀고용차별, 일•가정 양립 등 노동관계법과 관련해 인권침해 경험이 있다고 답해 병원 내 근무환경을 함께 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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