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88% "약사 없는 편의점 약 불신"

사진출처=Flickr

[소비자경제=정세진 기자] 유치원생 딸을 키우고 있는 주부 김모씨(35세)는 얼마 전 아이 때문에 조마조마한 상황을 겪었다.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는데 약국 문은 모두 닫은 상태였어요. 편의점에 가서 해열제를 찾았지만 아이에게 먹여도 되는지를 몰라서 발만 동동 구르다 결국 응급실을 찾았어요.”

수도권에 위치한 대부분의 약국들은 평일 오후 7~8시까지만 운영한다. 토요일에는 폐점 시간이 조금 더 앞당겨진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몇 년 전부터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판매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용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적절한 약을 처방해 줄 수 있는 약사가 없다보니 먹어도 되는 약인지, 어떤 제품이 가장 효과가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불만사항이다.

서울 도봉구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거주하는 권모(71)씨는 “편의점 약에 신뢰가 가지 않다보니 심하지 않은 증세에도 응급실을 찾게 되고, 이 때문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토로한다.

◇약사 단체 "공공심야약국 약사법 개정 필요"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이하 약준모)이 수도권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공심야약국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88%에 이른다.

공공심야약국은 유럽연합(EU)와 호주 등지에서 운영되고 있는 모델로, 정치권에서도 공공심야약국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지난 9월초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심야시간대 및 공휴일에 운영하는 공공심야약국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예산의 범위에서 그 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현재 약준모 등 약사단체에서는 이미 자체적으로 심야약국을 일부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다. 경기, 대구, 제주 지역에는 각각 6개, 10개, 12개 약국이 자발 참여하고 있고 주로 저녁 7시부터 자정까지 운영된다.

◇"공공심야약국 법제화 도입 진통 불가피" 

현재까지 공공 심야약국 조례안이 통과된 지자체는 2013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주도를 비롯해 경기도, 강원도, 대전광역시, 인천광역시 연수구, 서울특별시 서초구 등이다.

그러나 심야시간에 근무할 약사를 채용하기가 어려운데다 적자운영으로 인한 경영난이 심해 공공의료로의 편입이 절실하다고 약사단체들은 말한다.

대한약사회 역시 "심야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약국 인프라 구축시 응급실 과밀화와 비용부담 문제가 일부 해소되고, 전문 약사의 복약지도 하에 안전한 의약품 사용이 가능하다"며 공공심야약국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다만 의사협회 등에서는 “공공심야약국은 결국 의료공백 상황을 이용해 사실상 약사들이 진료를 하겠다는 이야기”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응급의료기관과 야간·주말진료를 하고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인프라를 지원, 보강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인 정책 방향"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도 야간근무에 따른 치안과 운영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공공심야약국 전면 도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조속한 공공심야약국 법제화를 주장하는 한편 편의점 의약품 판매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와 알바생 교육 의무화 등의 안전장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경증질환이나 비응급 질환자가 안전한 편의점 상비약품이 아닌 원칙상 처방이 필요한 약을 심야약국에서 구입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있어 도입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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