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석 편집국장.

[소비자경제 칼럼]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내걸었던 대선공약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이 가시화되고 있다. 대선 전에는 가칭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로 불렸다.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18일 발표한 공수처 구성의 밑그림을 살펴보면 공수처장과 그 아래로 차장을 두고 검사 30~50명, 수사관 50~70명 수사인원을 갖춰 최대 122명 내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의 수사대상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회의원,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대법관, 헌법재판관, 광역지방단체장과 교육감 등 외에도 정무직 공무원과 고위공무원단,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고위직 경찰, 장성급 장교가 포함됐다.

만약 공수처가 신설되면 그야말로 검찰 위에 검찰로 통할 ‘슈퍼 갑’의 사정권력이라고도 해도 손색없는 제3의 수사기관이 탄생하는 것이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청와대·검찰·경찰·국정원·감사원·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범죄에 대해 꼬리 자르기, 봐주기라는 비판이 있었다”면서 “공직 사회에 만연한 부패 등 범죄행위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며 수사 대상에 성역은 없어야 한다”며 공수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안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보수야당들은 벌써부터 설레발을 치고 있다. 현재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행사하고 있는 검찰도 감당 못할 판에 혹을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이는 것은 아니냐는 식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푸들로도 충분한데 맹견까지 풀려고 하나”며 “공수처 법안을 보니 아예 대통령이 사정으로 공포정치를 하려고 작심한 것 같다”며 공수처 신설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한국당은 지난 대선 때 특별감찰관제도에서 감찰대상을 확대하고, 대통령에게 감찰 결과만 보고하는 것으로 공수처 신설에 부정적이었다.

이에 반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정의당 모두 공수처 신설을 공약사항으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공수처 신설안이 나오자 국민의당은 비대한 조직과 수사범위가 광범위하고, 청와대에 예속된 별도의 수사기관으로 작동할 우려도 있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바른정당도 공수처가 과다한 권력독점으로 국민기본권을 제한할 소지가 있다는 핑계로 에둘러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정의당은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다.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임명할 경우 추천위 구도 자체가 대통령의 의중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검찰 인사권 독립에 저해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지금에 와서 오히려 검찰개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보수야당들이 한 목소리로 공수처 신설에 반기를 들고 있다. 5개월 전 대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울 때에는 국민의 준엄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한다며 공수처 신설 앞 다퉈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다.

우리 정치는 원래 이런 식으로 국민들을 기만해왔다. 논평은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정부가 내놓은 공수처 신설안을 여권 내에서도 순순히 응할지도 미지수다. 대략적으로 윤곽이 드러난 공수처 조직과 수사대상에서 보듯 눈만 뜨면 국회의원들의 비리를 감시하고 쫓아다닐 수사기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 사안이 국민적 정서와 맞물려 앞으로 어떻게 표류하고 흘러서 국회를 통과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대로 가면 ‘내로남불’의 덫에 걸려 여야 간 살벌한 대치 정국의 소용돌이를 또 한 번 예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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