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정운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대표 발의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보험사 보험금 지급과정에서 보험소비자에게 고지의무 위반으로 거절한 사례는 작년 한 해에만 1424건에 달했다. (사진=소비자경제DB)

[소비자경제=고동석 기자] 보험소비자들은 미래의 질병·사고 등 예기치 못한 위험과 재정적 부담을 덜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지만 정작 사고가 발생해 보험금을 청구할 때 보험회사로부터 지급이 거절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보험소비자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93.8%가 1개 이상의 보험에 가입하고 있고, 가구당 가입률은 96.3%로 나타났다.

이렇듯 전 국민이 보험 하나쯤은 가입해 있는 상황이다보니 보험회사와 보험소비자 사이에 보험금 지급 분쟁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보험민원은 총 4만8573건이었고, 이중 보험사 보험금 지급과정에서 보험소비자에게 고지의무 위반으로 거절한 사례만 1424건에 달했다.

그러나 현행 상법 보험편은 보험소비자에게 불리하고 보험회사가 유리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한 고지의무 때문에 보험금 지급 거절 분쟁으로 부담해야 할 사회적 갈등과 비용도 한계 수위에 도달해 있다.

◆보험소비자 보호보다는 보험회사에 유리한 현행 상법

보험계약 시 '고지의무'는 보험소비자가 보험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보험회사에 자신의 병력과 직업 등 중요 신상을 알려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보험소비자 보호를 위한 계약자 고지의무에 대해 법률안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법 개정 방향을 제시했다. 더 이상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 거절 분쟁을 방치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보험 계약 체결 시 고지의무는 현행 상법 제651조에 ‘보험계약자가 보험자에 대해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고 부실한 고지를 해선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법 제655조는 보험계약자가 고지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았을 때에는 보험회사가 보험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문제는 보험회사들이 법 조항을 악용해 보험사고가 발생해 원칙적으로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거절하는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법률상으로는 보험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과정에 유리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래서 보험선진국인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주요국은 보험계약 시 고지의무에 대해 보험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는 고지의무를 폐지하고 있다. 이들 주요국들은 자발적 고지의무를 수동적 응답의무로 전환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를 완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대법원도 보험금 지급 거절 소송에 대해 지난 2004년 6월 “보험회사가 질문하지 않은 사항을 보험계약자가 스스로 답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판결한 적이 있다. 이는 보험상품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보험가입자에게 일방적으로 고지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은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불합리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이런 이유에서 현행 상법 보험계약 관련 조항들을 보험소비자 보호를 위해 개정해야 한다는 보험소비자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를 위해 국회입법조사처 황현영 입법조사관은 “현행 상법 제651조에 ‘보험계약 당시에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아니하거나 부실 고지한 경우’라고 명시된 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황 조사관은 “보험계약자가 중요한 사항을 스스로 판단해 보험자에게 고지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수동적 응답의무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수동적 응답의무를 규정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예를 들면 ‘보험회사가 요구하는 내용에 대해 성실하게 고지하도록 한다’와 같이 규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선량한 보험계약자 보호하고, 변화된 보험환경 반영 필요

황 조사관의 주장은 고지의무를 수동화할 경우 현행법에서 보험계약자가 적극적으로 고지하도록 의무화한 것을 전제로 규정한 제651조의2와 제655조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보험계약자가 의무적으로 고지해야 하는 중요한 사항을 둘러싸고 분쟁을 줄이기 위해선 보험회사가 서면으로 질문한 것은 ‘중요한 사항’이라고 본다는 추정 법 규정을 고지의무를 수동화해 보험회사가 물어보는 내용에 대해서만 보험계약자가 답변하도록 하는 응답의무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법 조항에 명시된 ‘중요한 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추정규정을 별도로 둘 필요가 없고, 고지의무를 수동화하면 보험계약자가 보험회사의 질문에 성실하게 고지하지 않았다면 보험계약자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결국 보험소비자는 상법 제655조에서 보험계약자가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은 경우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규정한 조항에서 부담을 털어낼 수 있는 것이다.

황 조사관은 “보험회사가 질문한 내용은 아니지만 보험계약 체결과정에서 중요한 사항을 보험계약자가 고지하지 않은 경우, 보험계약은 유효하고 보험금도 지급되어야 하지만 이에 대해 법문에 이렇다 할 규정이 없다”며 “응답의무 위반에 따른 계약해지와 보험금청구에 관한 책임 소재에 대해 상법 제655조에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험에 대해 비전문가인 보험계약자 입장에서는 어디까지 알려야 중요한 사항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불합리한 경우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험소비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고지의무가 개정되고 있는 글로벌 입법경향과 민생문제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에 맞추어 우리나라도 고지의무를 수동화 할 필요가 있다”며 “보험계약자는 보험자가 서면으로 질문한 사항들에 대해서만 성실히 답변함으로써 고지의무 위반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여 선량한 보험계약자를 보호하고, 변화된 보험환경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보험소비자의 불합리한 피해를 막기 위해 바른정당 정운천 의원(전주시을)은 지난 29일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 의원은 “최근 보험업이 발달함에 따라 보험회사는 고객들에게 물어봐야하는 중요사항에 대해 질문과 조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소비자에게 고지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소비자들이 보험회사와 보험계약 시 자기 돈을 주고 가입하는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가 원하는 고지가 제대로 안되었다는 이유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한테 전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발의한 상법 일부개정 법률안에는 보험회사가 소비자에게 건강정보 등의 고지를 요구한 사항에 대해 직접 보험회사가 소비자에게 직접 묻고 확인하는 방식으로 조정됐다.

정 의원은 “다만 소비자가 고의나 중과실로 고지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고지한 경우에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며 “고지의무를 서면 이외의 전자문서 등 텍스트형식으로 고지할 수 있도록 보험소비자를 보호함과 동시에 편의성을 높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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