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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독립운동가-③] 우리나라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3.1운동 적극 가담...중국 망명 후 비행사로 일제에 맞서
 
우리나라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소비자경제신문 양우희 기자] 하늘을 나는 항공기 파일럿(조종사)은 멋있다. 푸른 창공을 마음껏 누비며 원하는 곳을 빠르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기 자체도 멋있지만 제복을 깔끔하게 입은 모습이 멋지다.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은 파일럿을 꿈꾼다.

하지만 조종사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더욱이 일제치하 비행사의 꿈을 꾸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우리나라 최초로 탄생한 여성 비행사가 있다. 바로 권기옥이다. 그는 오직 조국 해방을 꿈꾸며 독립운동에 앞장섰고 조국 독립을 위해 비행사의 길을 택했다. 잊혀진 독립운동가’ 3편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독립운동을 펼친 권기옥을 소개한다. 

◆숭의여학교에 다니며 독립운동에 눈을 뜨다

권기옥은 1901년 1월,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환경에 4살 위인 언니는 출가하고 어머니는 병약했기 때문에 권기옥은 집안 살림을 맡으면서 공부를 해야했다. 그는 숭현소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숭의여학교 3학년에 편입해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졸업했다.

숭의여학교에 다니며 선생님들을 통해 독립운동에 눈을 뜬 권기옥은 졸업반 때 비밀결사 송죽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학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거리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 일로 유치장에 감금당하다가 풀려났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 모금을 위해 단신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주로 숭의여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았는데, 학생들은 긴 머리를 잘라 판돈을 가져오거나 어머니의 패물을 팔아 돈을 마련하곤 했다.

그러던 중 미행하던 일경에 체포돼 권기옥은 혹독한 고문을 받았지만 임정 활동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했다. 유치장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수십 번 기절하기를 반복했다. 권기옥을 취조한 일본인 형사 다나카는 심문조서에 ‘이 여자는 지독해 도무지 입을 열지 않으니 검찰에서 단단히 다루길 바란다’고 적었다.

6개월 형기를 채운 후 감옥을 나온 권기옥은 독립운동을 위해 여자전도단을 결성하고 활동했다. 전도대장으로 몇 차례 경찰에 연행된 이후 권기옥은 숭의여학교의 김미선 선생에게 여전도대장 자리를 물려주었다.

1920년, 권기옥은 일제의 통치기관 폭파에 함께해달라는 제의를 받고 숭현소학교 석탄창고에 독립단원들을 숨겨줬다. 이곳에서 단원들은 폭탄을 제조하고 몸을 숨길 수 있었다. 그해 8월에 독립단원들에 의해 평안남도 경찰부 청사가 폭발했다. 이 사건으로 임정에 협력한 모든 이들에게 체포령이 내려졌는데, 독립운동자금 모금으로 감시를 받고 있던 권기옥도 체포 대상 명단에 올랐다. 피신한 그녀 대신 부모가 일제의 체포됐다 석방되자 권기옥은 국내에서의 독립활동은 더 이상 힘들다고 판단을 내리고 망명을 추진했다.

3.1운동 이후 투옥됐다 풀려난 권기옥은 조직체나 비밀결사를 통한 활동을 하면 정보가 새 나가기 쉽다는 결론을 내렸다. 송죽회를 통해 만세운동을 벌였지만 회원 중 한명의 체포가 모두의 검거로 이어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3.1운동 이후 특정한 단체에 가입하진 않았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각종독립운동단체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독립운동을 했다.

◆중국에서 비행을 통한 독립운동을 꿈꾸다

이후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해로 탈출한 권기옥은 독립운동을 돕고, 시간강사로 일하며 학생들을 양성했다. 독립운동을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권기옥은 영어와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권기옥이 외국어를 배운 또 다른 이유는 비행사가 되기 위함이었다. 1917년 미국인 스미스 씨의 비행을 처음 보고 마음 깊이 비행사의 꿈을 품은 권기옥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비행을 하길 원했다.

당시 임시정부는 육군 항공대 창설을 계획하고있었기에 중국의 항공학교에 한국 청년들을 추천해 비행사를 양성하고자 했다. 이런 방침에 따라 권기옥은 임정의 추천서를 받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여러 항공학교에서 입학 거절을 당했다. 권기옥은 마지막으로 지원한 운남항공학교에 입학해 유일한 여학생으로 공부했다. 한편, 항공학교에 독립운동을 하다 망명한 여학생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나서 권기옥은 일본영사관 측에 의해 몇 번 살해당할 고비를 넘긴 것으로 알려진다.

학교를 졸업하고 돌아간 임시정부는 권기옥에 꿈과는 달리 비행기를 구입할 여력조차 없는 상태였다. 자신의 비행술을 독립운동에 쓰고싶던 권기옥은 북경에 있는 중국 항공대에 들어갔다. 중국 역시 일제의 침략을 받는 상황에서 비행사로 일제를 대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장제스의 국민정부 아래서 항공사로 일한 권기옥은 1932년 상해전쟁이 일어나자 비행대에서 정찰임무를 맡아 폭격임무를 수행하곤 했다.

비행가로서 활동 외에도 권기옥은 한국애국부인회 재건에 참여했다. 재건 선언문에 나와있듯이 이는 ‘여성들의 당파나 사상을 묻지 않고 총단결하기 위함’이었다. 해방을 맞은 이후에는 완전히 귀국해 제헌국회의 국방위원회 유일의 여성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에서는 1968년 그녀의 공을 기리며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고, 1977년에는 독립장을 줬다. 서울 장충동의 낡은 목조건물에서 남은 생을 보내다가 권기옥은 1988년에 사망했다.

언제나 자신을 따라다닌 ‘한국 최초 여자비행사’라는 꼬리표에 그녀는 불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비행기를 탄 것은 오직 조국 해방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순종과 희생을 여성의 본분으로 강요받던 시대에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며 독립운동에 애쓴 도전정신은 21세기에도 큰 감명을 준다.

 

양우희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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