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강연주 기자] ‘또! 오해영’은 평범한 로맨틱코미디와 다르다. 코믹한 전개 속에 교훈이 담겨 있다. 첫 번째 교훈은 ‘바꿀 수 있다’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봤던 박도경(에릭)은 스스로 운명을 바꿨다. 두 번째 교훈은 ‘바뀔 수 있다’다.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본 도경의 용기에 불행했던 오해영(서현진)은 열등감에서 빠져나와 행복해졌고, 박도경 스스로도 편안해졌다.

또! 박도경이 마음을 숨겼다면, 그는 죽고 해영은 태진(이재윤)과 결혼했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도경은 후회했을 것이고 죽는 순간이 두려웠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꾸고 싶어 했고, 바꾸려고 했고, 바뀌었다는 것이다. 살게 될지 운명대로 죽게 될지는 모르지만.

또! 몰라영? 바꾸려는 시도는 변화가 필요할 때 생긴다. 국회는 개헌 논의가 한창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모른다. 사실 관심도 없다. 여전히 싸움판인 국회를 비난한다. 대통령의 무능함을 욕한다. 오늘이 힘듦을 한탄하고 내일도 나아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바뀌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또! 무능해영. 대통령 무능론은 대통령 마다 있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제는 선진국에 유일무이하다. 법 하나 만들고 시행하는 데는 3년이나 걸린다. 임기 2년이 지나면 대통령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임기 중간에 총선까지 겹치면 그마저도 어려울 수 있다. 국민들은 사람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공약을 보고 선거 했다. 그러나 뭘 할 시간이 없다.

또! 하려구영? 대한민국은 독재 노이로제에 걸렸다. 이승만, 전두환, 박정희 전 대통령들은 자기 임기 늘리는 데 헌법을 이용했다. 지금은 다르다. 개헌을 주장했던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도 “나 다음부터 중임제하자”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내 임기 줄여서라도 4년 중임제하자”고 했다. 이들도 5년으로는 뭘 바꿀 수 없는 걸 알았던 것이다. 더 이상 독재 퇴보는 불가능하다.

또! 누구야. 6공화국을 만들던 때는 급했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오랜 독재와 탄압에 대통령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민주주의를 꿈꾸던 이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7년, 8년은 이들에게 너무 긴 시간이었다. 그렇게 합의된 시간이 5년 단임제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김영삼과 김대중은 대통령을 했다. 국민들은 민주주의 쟁취에 열광했지만 5년의 한계는 몰랐다. 물론 6공화국은 감동적인 투쟁의 역사다.

또! 싸워영? 국민들에게 국회는 불신덩어리다. 선거마다 싸운다. 사람은 있는데 의석은 텅텅 비었다. 싸우면 안 된다. 국민들은 불안하다. 똑같은 놈이 바꾸는 데 뭐가 바뀌겠냐고. 다른 속내가 있는 건 아니냐고. 국민들은 말한다. 한국 정치는 썩었다고. 국민들은 무관심해졌다. 6공화국의 감동과 열정은 사라졌다.

또! 똑같아. ‘6.29 선언’은 대한민국을 바꿨다. 노태우와 전두환의 정치적 쇼였더라도 국민들은 그토록 갈구하던 민주주의를 얻었다. 6공화국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민주주의를 얻었는데 지금의 국민들은 힘들다. 공약은 지켜지지 않고 무능한 대통령과 정치인들뿐이다. 6공화국은 국민이 만들었다. 국민이 나서야 바뀐다.

‘또!’는 지긋지긋하다. 예쁜 오해영을 만난 그냥 오해영도 또 만난 것을 싫어했다. 예쁜 오해영을 만났던 박도경도 또 다른 오해영을 만나 괴로웠다. 박도경은 또 보이는 미래에 두려웠다. ‘또’ 반복되는 것이 고통이라면 변화의 신호다. 바꾸려고 해야 바뀐다. 바꾸는 주체는 국민이어야 한다.

 

강연주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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