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자보다 6배 더 많은 자살자…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시달려

▲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직업인 ‘소방관’의 처우 및 근무 환경은 정작 ‘바닥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2016년 종합소방기술경연대회’에서 화재 발생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소방의용대원들의 모습. (출처=포커스뉴스)

[소비자경제=공동취재팀] 인력과 장비가 부족한 것은 물론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시급하지만 이를 위한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대전에서 소방대원으로 근무하는 이 모씨는 3교대로 근무하며 매일 뜬눈으로 밤을 새기 부지기수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귀가해도 지친 몸으로 인해 가족들과 대화부족이 늘 미안할 뿐이다.   

그는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많지 않아 주말이라도 최대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 하지만 쉽지 않다”며 “몸이 안 따라줘 아이들을 봐도 못 일어나는 게 요즘 제일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아내 역시 상처투성이로 귀가하는 남편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그는 “무엇보다 밖에 있다가도 괜히 뉴스에 불 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마음이 불안해진다”며 “소방차가 지나가는 사이렌 소리에도 가슴이 쿵쿵 뛴다”고 말했다.

◆ 한국인이 존경하는 직업 1위, 사회적 처우는 바닥

소방관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직업이다. 김흥규 인하대 사범대 명예교수와 이상란 인하대 학생생활연구소 박사가 최근 한국인의 직업관을 조사한 결과, 소방관은 3연속 1위라는 영예를 안았다.

대형 재난 현장에서 보여준 소방관의 투철한 직업의식과 헌신적인 희생정신이 국민들의 마음을 울렸다는 평가다.

이처럼 소방공무원에 대한 높은 평판에 비해 사회적 처우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2~3교대로 빠듯하게 돌아가는 업무, 노후한 장비와 낮은 연봉 등 적절한 대우와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소방관들의 사기를 꺾고 있다.

소방관을 향한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의 폭언이나 폭행도 소방관들의 희생과 보람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곤 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이 사흘에 한 번 꼴로 폭행을 당한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왔다. 지난해 국회 안전행정위 소속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소방관 폭행 및 처벌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총 538건의 소방관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음주 폭행이 전체의 90.7%인 488건으로 가장 많았고, 단순폭행 43건(7.9%)과 정신질환자 7건(1.3%)이 뒤를 이었다.

실제 소방대원들의 주요 업무는 재난 처리뿐만 아니라 대민 활동도 상당 부분 차지한다. 구급·구조 출동 건수는 화재 진압 출동 건수를 능가할 정도다.

인력은 적은데 업무량은 많다보니 과로를 달고 사는 소방관들도 많다. 수도권과 지방 모두 인력난에 따른 고충을 토로하고 있지만, 지방은 수도권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다.

충남에서 4년째 소방대원으로 근무하는 김 모씨는 “인력이 부족해 화재나 사고, 민원 등 모든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데 하루에 20번 넘게 출동하는 경우도 많다”며 “대부분 소방차 운전자와 소방관 1명이 출동할 정도인데 큰 불이라도 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인력 충원이 우선되지 않으면 그 어떤 처우 개선도 의미 없을 것”이라며 “인력난이 계속된다면 시민들은 물론 소방대원들까지 위험을 벗어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뿐만이 아니다. 소방관들은 인력난과 함께 장비난까지 겹치며 최악의 근무여건에 놓여 있다.

지난해 소방관들이 ‘최소한의 안전 장비’인 소방장갑을 개인적으로 구매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의 공분을 샀다.

이에 국민안전처는 소방장갑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꿨고, 에어 매트와 맨홀 구조 장치 등 노후화된 소방차와 구조장비도 차례로 교체했다.

국민안전처 소방장비항공과 담당자는 “지난해 소방장갑 수급을 100% 완료했다”며 “소방 현장과 관련된 각종 지원들은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소방 관계자들은 국민안전처의 신속하고 적절한 대처라기보다는 ‘소방안전교부세’가 추가되며 지원금이 늘었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소방안전교부세는 소방 및 안전시설 확충, 안전관리 강화 등을 위해 쓰이는 세금으로, 담배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의 20%로 충원된다.

지난해 노후한 소방장비 교체는 정부 지원으로 이뤄졌지만, 올해부터 재원을 소방안전교부세로 전환했다.

▲ 지난 22일 창원 거가대교에서 투신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과 해경, 경찰의 모습. 이들은 차량 조사 뿐만 아니라 바다 수색 작업을 통해 투신자로 추정되는 시신을 인양했다. 소방관은 이러한 민원을 해결하면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출처=포커스뉴스)

◆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슈퍼맨, 복지정책 미비

소방관들을 위한 복지제도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많은 소방관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무기력증, 불면증 등을 겪고 있지만, 이를 위한 대책은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지난 2015년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으로 실시한 ‘소방공무원 인권 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방관들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의 위험에 노출될 확률은 일반인의 15배에 달했다.

당시 조사결과에 의하면 ‘우울증·불안장애를 겪고 있다’고 답한 소방관은 전체 응답자 7541명 가운데 1467명(19.4%)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11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제3차 근로환경조사 당시 일반 근로자의 우울증 유병률이 1.3%였던 것과 비교하면 15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또 ‘지난 일주일간의 우울 증상 경험 여부’를 물은 결과 응답한 7345명의 소방관 중 20.8%가 ‘지난 일주일 동안 우울 증상이 있었다’고 답했다.

언제든 현장에 출동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소방관들은 만성적으로 긴장 상태에 있어야 하고, 참혹한 사고나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받는 충격이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가 대다수다.

소방관들은 평균수명이 가장 짧은 공무원이다. 국민안전처에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소방공무원의 순직자가 27명, 자살자가 41명이다. 100명 중에 한 명은 하루 종일 죽음을 생각하고, 소방공무원의 40%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때로는 현장에서 동료의 순직도 목격해야 하고 동료 시신까지 수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소방서에는 소방관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심신안정실’을 비치하거나 ‘힐링캠프’를 운영하기도 하는 반면 걸림돌은 ‘예산’이다.

당장 현장에 필요한 예산도 부족한 실정이다 보니 퇴직 소방관에 대한 치료 프로그램은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이에 국민안전처는 지난해 19개 소방서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 ‘찾아가는 심리상담실’을 올해는 30개 소방서로 늘리기로 했다.

이 사업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수면장애, 우울증 등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정신건강증진팀이 직접 소방서를 방문해 통합교육과 개인상담, 집단상담 등을 하는 것이다.

최태영 국민안전처 소방정책과장은 “소방관 PTSD 등 심신장애의 예방을 위해서는 국가와 개인이 함께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조기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소방대원 처우 관련 법안이 20대 국회 들어와 처음 발의되며 소방공무원에 대한 처우 개선에 기대를 모아지고 있다.

이렇게 처우 및 환경 개선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정치권에서도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20대 국회 회의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을 대표로 한 ‘소방공무원 보건 안전 및 복지 기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발의된 것이다.

이와 관련 이명수 의원실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현장에 필요한 것을 고민하면서 발의된 법안”이라며 “아직까지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교대 방식과 수당 문제를 개선을 법제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기재부를 비롯한 정부에서는 재정을 문제로 반대하고 있지만 멀리는 소방 병원까지 추진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서예원, 김은희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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