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우 발행인 겸 편집인

[소비자경제 칼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모두 바꾸자”고 말한 신경영이 선포된 지 올해로 23주년을 맞이했다.

이 회장의 한마디는 당시 삼성은 물론 한국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이대론 안된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관습과 타성에 젖어 있던 한국사회는 세계화 물결이 빠르게 밀려오면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필요로 했다.

우리사회에 짧고 강력한 한마디를 던졌던 이건희 회장은 현재 서울삼성병원에 입원중이다.

삼성측은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고 하나 향후 이 회장이 기자들 앞에서 다시 한마디를 할 수 있을 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현재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한국경제 나아가 한국사회를 향해 쓴 소리, 따끔한 충고를 해줄 재계 인물은 없어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말들이 생산되지만 유독 경제계에선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경제계 창업 1세대가 아니어도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비전을 당당히 밝히는 CEO를 찾기 어렵다.

CEO들은 공식 인터뷰는 고사하더라도 공항 혹은 조찬 세미나에서 만나도 말을 아낀다. 말을 아낀다기보다 정확히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이는 시간이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대기업이든 중견기업이든 인터뷰가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필자는 8년 전 권영수 LG디스플레이 대표(현 LG유플러스 부회장)를 단독 인터뷰 했었다. 당시 권 대표가 직원을 뽑는 기준은 스펙보다 열정이란 사실을 취재를 통해 알게 됐다. 권 대표는 인터뷰를 승낙한 이유에 대해 “당신의 열정 때문이다”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권 대표의 관심은 온통 ‘열정’이란 단어였다.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을 비롯해, 코리아나 유상옥 회장, 롯데자산개발 김창권 대표, 로엔엔터테인먼트 신원수 대표,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 BBQ 윤홍근 회장 인터뷰도 가능했었다. 인터뷰가 성공하면 이를 추진한 기자 본인도 좋지만 기사를 통해 기업 오너의 철학과 방향이 대외에 공개돼 취업 준비생이나 대학생,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성공과 실패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온라인 매체가 증가하고 반재벌 정서가 팽배하면서 기업 오너는 커녕 사업 부문장 인터뷰도 어려운 시대가 됐다.

재계 CEO들이 이처럼 말을 아끼는 이유는 SNS의 영향력 때문이다. 과거 언론에서 한번 걸러졌던 자신의 말들이 여과 없이 온라인상으로 퍼지고 CEO 자신의 말이 본인 의도와 관계없이 회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때 SNS를 활발히 이용했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최근 페이스북에는 신제품 사진만이 잔뜩 올라간 상태고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페이스북에는 과거처럼 소소한 일상을 찾을 수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대통령조차 소통을 꺼리고 말을 아끼는 판국에 자신의 인터뷰 혹은 말 한마디가 튄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재계 1위 삼성의 경우 수많은 계열사 사장들이 있어도 언론과 단독 인터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CEO가 말 못하는 사회의 최대 피해자는 우리의 다음세대다. 우리 청소년, 청년들이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한 이야기, 성공한 사람의 실패한 스토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생생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다음세대는 그저 책장에 꽂힌 해외 CEO들의 위인전을 통해 성공한 이야기를 간접 체험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 오너의 상황도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입을 꾹 다물고 인터뷰를 무조건 거부한다고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외 언론과 투자자들은 한국사회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를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창조적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하드웨어 강국에서 소프트웨어 파워국가로 도약해야 된다. 이를 위해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문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CEO 자신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 필요가 있다.

CEO들은 자신의 경험과 비전을 마구 쏟아 내어야한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또한 조성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좀 더 유연한 사회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레이건, 빌 클린턴, 오바마 대통령은 코미디 프로그램에 간간히 출연해 망가지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 미국 대통령은 사회의 분위기를 보다 유연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 차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SBS '웃찾사'나 tvN '코미디 빅리그' 같은 개그 프로그램에 한번 출연하면 어떨까. 쉽지 않은 이야기고 성사되기도 어렵겠지만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데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하고 싶어서다.

23년 전 삼성 임직원을 향해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모두 바꾸자"고 말한 이건희 회장은 병상에 있다. 만약 그가 다시 일어나 한국사회를 향해 한 마디를 한다면 어떤 말을 할까. 아마도 이 회장은 거창한 말보다 경영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그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위해 한 마디 할 것 같다.

"아들아 요즘 많이 힘들지,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을 응원한다. 힘내라"

 

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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