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생명과 연관이 있기에 ‘도덕적 잣대 엄격’ 의견

[소비자경제=서예원 기자] 제약사 리베이트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소비자들과 업계 내 비난이 일고 있다. 이처럼 유독 제약사 리베이트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다른 분야와 달리 소비자의 생명과 직간접 연관이 있기 때문이란 의견이 나온다.
최근 전북 전주 J병원 이사장 박모씨가 제약사와 의약품 도매상으로부터 18억원 상당의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박씨는 지난 2011년 6월부터 2015년 9월 사이 차명으로 도매상 2곳을 차려 제약사로부터 비정상적으로 할인된 가격에 약을 사들인 뒤 J병원에는 정상가에 약을 팔아 할인율만큼 마진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300병상 이상 대형병원에는 도매상만 거래를 할 수 있는데 제약사는 도매상에 줄을 설 수밖에 없어 할인된 가격에 약을 공급하던 관행이 있다”며 “병원이 특정 도매상으로부터 물건을 대량 공급받으면 제약사는 해당 도매상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약사법(47조 4항)에서는 병원이 지위를 이용해 도매상을 두고 제약사로부터 헐값에 약을 공급받는 행위를 막기 위해 의료기관 개설자가 운영하는 도매상과 의료기관 사이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경찰은 J병원과 인과관계가 의심되는 제약사 29곳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히며 이후 제약계에는 그야말로 ‘불똥’이 튀었다.
국내 산업계에서 불법 리베이트는 공정한 경쟁행위를 방해하고, 소비자들의 최종 결정권을 침해하는 불공정행위로 간주해 그에 따른 처벌도 이뤄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제약사 리베이트는 강력한 단속 대상이다. 2010년 11월 도입된 리베이트 쌍벌죄, 2014년 7월 도입된 리베이트 투아웃제 등 강력한 제재와 업계 스스로의 자정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약업계의 고질적 병폐인 불법 리베이트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대대적 규제 완화 행보를 시작한 상황에서 이처럼 불미스러운 사태가 잇달아 터지며 곤혹스러운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경찰 수사 결과 제약사들 다수가 실제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가 흔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업계에서도 자정노력을 강조해 왔는데 자꾸만 이런 일이 발생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국내 의약품시장의 특수성으로 인해 불법 리베이트 근절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내 한 중견제약사 관계자는 “중소 제약사들의 경우 브랜드 파워도 약하고, 주로 제네릭(복제약)을 판매하기 때문에 리베이트 없이 약을 팔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라며 “전문의약품 선택권을 가진 의사들이 리베이트를 요구할 경우 이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전문의약품은 홍보나 광고를 자유롭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시장경제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도 덧붙였다.
중소제약사 입장에선 막대한 개발 비용이 필요한데다가 위험 부담도 크기 때문에 신약 개발을 망설이는 경우가 상당수다. 비슷한 복제약 제품을 가지고 다수의 경쟁자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리베이트의 유혹을 끊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사실 의약품 리베이트는 국내의 일뿐만이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고령화와 건강에 관심이 많은 국내 분위기로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면서 과거 병원과 제약사 사이의 약값에 대한 리베이트 문제가 크게 대두된 바 있다.
이에 지난 2007년 일본 후생노동성은 의료용 의약품의 유통 개선에 관한 간담회를 열고 제약사들의 리베이트 관행 해결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논했다.
제약계 관계자와 소비자 등이 참여한 이 자리에서 후생노동성 측은 공적 보험 제도 하의 거래 전체의 적정화를 도모하는 관점에서 유통 상 여러 과제 및 실태를 토론했다.
이를 통해 의약품 도매에 대한 리베이트 위주의 거래 시정과 대납 관행 개선, 총가 계약의 개선에 관한 방안을 내놓았고, 이후 제약사들의 리베이트가 발견되면 국가적 차원에서 개인뿐만 아니라 그가 소속된 제약사까지 엄격히 처벌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후생노동성은 제약사의 리베이트 관행 척결에 대해 적어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약계는 뒷 그림자가 있으면 안되며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한다며 그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약품을 다루는 일에 있어 환자를 먼저 생각하고 도덕과 청렴을 강조하는 시선은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다.
호주의 경우 직업별 청렴도 및 윤리의식 조사에서 상위권은 항상 약사와 간호사 그리도 의사 등 의약계 종사자가 차지하고 있다.
또 국내에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약계 내의 청렴문화 확산을 위해 직원들의 청렴성과에 대해 체계적인 관리와 포상으로 청렴행정 동기를 부여하는 청렴마일리지 제도를 시행해왔다.
이처럼 사람의 건강과 심지어 목숨까지도 다룰 수 있고, 다른 어떤 직업보다 청렴을 빼놓고 일할 수 없는 직업군이기에 제약계 리베이트 문제에는 소비자들과 업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업계 리베이트 문제가 크게 문제시되는 것은 약이라는 게 수정하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로 사람들의 도덕적 시선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제약업계 리베이트를 규명하는 것이 꽤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한 번 드러나면 이를 제대로 파헤치기 위해 시선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며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리베이트를 통해 환자들이 약을 더 싸게 사는 이득이 생긴다면 모르겠지만 돈많은 사람들이 더 돈을 불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분노하며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서예원 기자 npce@dailycnc.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