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를 막걸리라 부르지 못하고” 과일향 첨가하면 세금 6배

▲ 전통주업계는 현행 주세법에 발목 잡혀 신제품 개발을 망설이고 있다고 토로한다. (출처=픽사베이)

[소비자경제=서예원 기자] 국내 전통주 시장의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업계가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기호에 맞게 제품 개발에 힘쓸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최근 우리술 문화기업 배상면주가가 당일 생산한 신선한 막걸리를 당일 판매하는 ‘느린마을양조장&펍 연남점’을 새롭게 오픈했다.

배상면주가는 소형 양조장&펍 모델인 느린마을양조장&펍 연남점을 시작으로 프랜차이즈 형태로 매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을 밝혔다.

기존에 운영 중인 강남점, 양재점, 센터원점 달리 연남점은 정부의 하우스 막걸리 규제 완화 정책에 맞춰 ‘세상에서 가장 작은 양조장’이란 콘셉트로 운영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지난 2월 국무회의는 주세법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소규모 주류 제조면허 대상 주류의 범위에 탁주, 약주, 청주 등을 추가했다. 이에 따라 전통주나 막걸리도 ‘하우스 맥주’처럼 일정 자격요건을 갖추면 음식점에서 만들어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전통주 상품화를 위한 물꼬가 터지며 막걸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여전히 현행 주세법이 막걸리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더 나아가 세계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열린 ‘2016 전통주와 전통음식의 만남’ 축제에 참석한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은 “이제 소규모라면 누구나 술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주세법이 완화된 만큼 전통주의 상품화를 향한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국순당 쌀바나나 (출처=국순당)

전통주 업체인 국순당은 지난달 ‘국순당 쌀바나나’를 새롭게 선보이며 주세법 논란에 불씨를 당겼다.

현재 국내에선 주세법 규정에 따라 향을 첨가한 제품은 ‘막걸리’가 아닌 ‘기타주류’로 된다. ‘바나나맛 막걸리’ 대신 ‘쌀바나나’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순당은 2년 전부터 수출시장을 겨냥해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과일맛 막걸리 개발에 나섰다. 올해 초 국순당 쌀막걸리 과일시리즈 3종을 개발하고 국내외 동시 판매에 나섰다.

한국의 전통주인 막걸리에 과일을 접목한 국순당 쌀막걸리 복숭아와 국순당 쌀막걸리 유자는 아직 국내 판매는 하지 않고 해외 수출만 하고 있다. 현재 15개국에 47만병 수출하고 있고, 가공 해외 주류품평회에서 그 품질을 인정받아 수상하기도 했다.

김성준 국순당 해외사업팀 팀장은 “국순당 쌀막걸리 과일시리즈가 우리 전통주의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기존 막걸리의 개념을 완전히 벗어나 세계인의 입맛에 맞춘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다양한 맛과 향을 첨가한 막걸리가 잇따라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런 술이 주세법상 막걸리에 속하지 않아 업계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주세법상 탁주에 맛과 향을 첨가하려면 농산물 원액만 사용할 수 있다. 국순당 쌀바나나는 바나나 맛을 내고자 원물인 퓨레 이외에도 ‘바나나향’을 첨가했기 때문에 기타주류에 속하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국순당이 지난달 출시한 아이싱 청포도와 아이싱 캔디소다도 탁주가 아닌 기타주류에 속한다. 쌀을 발효시킨 술에 청포도 과즙과 소다를 첨가해서다.

뿐만 아니라 탁주에는 맥아를 포함한 발아곡물, 홉, 커피 등의 사용이 금지돼 있고, 과실 사용량은 20% 이하로 제한된다.

기타주류로 분류되면 막걸리나 탁주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물론 주세가 탁주보다 높아지고, 유통경로도 기존 탁주와 달라진다.

기타주류 주세는 30%로, 탁주 주세(5%)보다 6배 높다. 그렇다보니 대형마트 판매가 기준 국순당 쌀바나나(750㎖)의 가격은 쌀막걸리(1200원)보다 500원이나 비싸다.

주세법에 따라 발효 주류 중 탁주, 약주, 청주 등은 특정주류도매업자가 판매하지만, 쌀바나나는 기타주류이기 때문에 종합주류도매상이 취급한다.

현행 주세법이 급변하는 주류 트렌드에 발맞춘 다양한 전통주 개발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국순당 관계자는 “전통주 업계가 젊은층의 입맛에 맞춘 새로운 전통주 개발을 활발히 해야만 내수시장이 활성화하고 더 나아가 세계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2000년대 중후반 주류 시장을 휩쓸었던 막걸리는 최근 국내 소비는 물론 수출까지 감소하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 (출처=관세청)

관세청에 따르면 2011년 40만8248㎘에 달했던 막걸리 내수 판매량은 2012년 39만3354㎘, 2013년 37만1765㎘, 2014년 36만5893㎘를 기록하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량은 2011년 3만5530㎘로 정점을 찍은 후 2012년 2만1196㎘, 2013년 1만1951㎘, 2014년 1만667㎘로 급락하며 전성기의 반 토막이 됐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기호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이에 얼마나 발 빠르게 움직이는지가 관건”이라며 “특히 위스키나 와인처럼 맑은 술에 익숙한 외국인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탁도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막걸리협회는 막걸리 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탄력적인 탁도 기준 적용을 농림축산식품부에 수차례 건의하고 있지만 정부는 막걸리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탁도에 따른 주세율 부과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막걸리는 발효시켜서 거르지 않고 만든 술을 말하는데, 탁도를 맑게 한다면 막걸리 자체를 재정의하는 일이 생긴다”며 단호한 입장을 고수했다.

여기에 전통주 시장에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며 끝내 전통주 관련 산업의 ‘파이’는 쉽게 커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전통주 시장이 매년 감소하는 가운데 대기업 참여는 침체된 시장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영세한 전통주업계는 연구·개발(R&D) 역량이 충분치 않아 전통주를 육성하고 세계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예원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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