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정명섭 기자] 최근 본지에 접수된 소비자 피해 사례를 소개한다. 화물운송업에 종사하는 이 모씨는 외국 자동차 업체로부터 3억여원 상당의 덤프트럭을 할부 구매했다.

그러나 신차임에도 불구하고 주행 중 시동이 꺼지고,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량이 앞으로 밀리는 현상이 발생해 정상적인 업무가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생계마저 위협받게 된 이씨는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했지만 회사 측은 수리 밖에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우리는 구매한 제품에서 하자를 발견하면 교환이나 환불 절차를 밟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자동차를 교환받았다는 소식은 찾아볼 수 없다.

실제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자동차 시동 꺼짐’ 관련 사례는 702건 중 교환이나 환불을 받은 경우는 단 6건(4.7%)에 불과했다. 이 정도 비율이면 하늘의 별따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제조물책임법, 자동차기본법, 자동차관리법 등 어디에도 자동차의 하자나 결함에 대해 교환·환불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국소비자원이 제시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서는 차량 구입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주행 및 안전과 관련해 중대한 결함이 2회 이상, 또는 1년 이내에 4회 이상 발생하면 교환이나 환불을 해주도록 ‘권고’하고 있다. 법적 강제력이 없다보니 업체들 입장에서는 두 귀를 막고 버티면 그만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이미 “시동 꺼짐 사례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지만 교환이나 환급 등의 조치가 미진해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결국 소송으로 가는 길 밖에 없지만 그 마저도 소비자는 불리한 입장이다. 미국이나 주요 유럽 들은 업체가 차량의 결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소비자가 차량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수 천, 수 만 가지 부품의 결합체인 자동차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진 소비자는 몇이나 될까. 법과 제도가 ‘제조사 위주’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업무계획에서 한국판 레몬법 기본안을 올해 안에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희소식이다. 미국은 1975년부터 레몬법을 시행해오고 있다.

오렌지인 줄 알고 구매했는데 알고보니 신 맛이 나고 맛 없는 레몬이었다는데서 유래한 이 법은 신차가 소비자에게 중상해를 입힐 수 있는 결함이 있거나 동일 하자가 4회 이상 반복되면 자동차회사가 차량을 교환·환불 해주도록 강제하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소비자가 모든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부당한 상황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입법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더 이상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실질적인 대안이 도입되길 기대해본다.

 

정명섭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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