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 '백팩주의 포스터' 1,2호선은 일부역 및 일부 전동칸만 홍보
[소비자경제=한민철 기자] “아! 가방 좀 내려요!” “제발 백팩 좀 치워요!” 서울지하철 2호선 아침 출근길, 만원지하철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목소리다.
과거 지하철 불편개선과 안전의식 제고를 위해 자주 접할 수 있었던 말은 ‘한줄 지키기’와 ‘노약자·임산부 배려’ 그리고 ‘기내 소란금지’ 등이었다. 그런데 최근 서울지하철 승객들은 ‘백팩족’과의 전쟁 중이다.
본지는 승객들의 지하철 불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지난 20일부터 5일간 서울 지하철 총 16개역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대상은 20대~60대 남녀 100명으로 서울메트로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지하철 이용시 불편하고 짜증나다고 생각하는 두가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변자 중 73명은 ‘취객’을 꼽았다. 이어 ‘백팩족’이라고 답한 사람 52명, 쩍벌남(42명)과 음식물섭취객(17명), 잡상인(16명)이 뒤를 이었다.
취객은 남녀와 연령을 불문하고 지하철 이용객들이 가장 많은 불편을 느끼게 하는 항목이었다. 20대 응답자의 경우 ‘백팩족’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고, 특히 여성응답자는 취객과 함께 백팩족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흔히 지하철 게시판이나 공익방송매체에서 다뤄왔던 ‘지하철 매너’ 중 단골손님은 설문 항목 중 하나였던 취객이나 쩍벌남, 새치기족 등이 있었다. 그런데 본지의 조사결과 백팩족을 택한 응답자는 20대 여성들이 다수였고, 그들은 백팩족에 대해 다양한 불편을 호소했다.
설문에서 취객과 백팩족을 택한 김 모씨(30·남)는 “아침에 사람들이 많이 붐빌 때 안 그래도 비좁은데 백팩을 멘 사람들이 두 명 자리를 차지한다”며 “솔직히 그럴 때마다 뒷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고, 백팩 때문에 고성이 오간 걸 본 적도 많다”고 말했다.
또 23일 건대입구역에서 설문에 응한 박 모씨(20대·여)는 “나는 백팩을 현재 이용하지 않지만 대학생 때는 공부할 책을 백팩에 많이 넣고 다녔기 때문에 백팩족이 이해도 간다”며 “하지만 그때는 나도 지하철 안에 사람이 많다면 가방을 벗어 앞쪽으로 돌린다거나 했는데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만원지하철에서 백팩을 메고 있으면 보기 좋지 않다”고 밝혔다.
백팩족에 대해 불편을 느끼는 건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백팩족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본 사이타마현에 거주하며 지난해 한국에 여행온 적이 있는 사토 미키 씨는 “아침에 명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역을 지나가는데 큰 백팩을 메고 있는 대학생들이 많아서 놀랐다”며 “처음에는 젊은이들이 단체로 등산을 간다고 생각했지만, 등산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좁고 사람도 많은 지하철에서 그렇게 백팩을 메는 것은 민폐다”라고 말했다.
한국에 3개월 마다 출장을 온다는 하세가와 씨도 “처음 한국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 큰 백팩을 멘 두 사람이 양쪽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있고, 그 좁은 백팩들 사이로 다른 사람들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당황했었다”며 “어떤 남자가 백팩이 커서 통행에 방해가 되는데도 스마트폰 게임만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본과 미국인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지하철 백팩족이 생소하고 놀라움을 줄 수 있었다. 그들의 국가에서 여행이나 등산을 가지 않는 이상 큰 백팩을 멘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없고, 그들에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백팩을 메고 있다는 것은 남에게 민폐를 끼친다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세가와 씨도 “특별히 만원지하철에서 백팩을 메지 말자라는 캠페인을 일본 지하철에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초적인 지하철 매너다”라며 “중학교 때 지하철 매너를 배울 때 가방이나 머리카락이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주의하라는 교육도 있었지만, 이는 굳이 배우지 않더라도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앨라배마주에 사는 아레시아 씨도 기자와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한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는 지하철을 탈 때 백팩을 멘 사람들은 종종 볼 수 있지만, 그것으로 통로를 막거나 좁은 공간을 더 좁게 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백팩이 크면 무겁지 않나, 왜 내려놓거나 선반에 올리지 않고 메고 있는 것인가”라고 질문을 하자 기자는 답할 수 없었다.
백팩족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시선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인터넷 뉴스 덧글과 커뮤니티 내에서는 이들 백팩족의 시민의식을 거론하며 비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백팩족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홍대입구역에서 어렵게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한 한 백팩족 남성은 좁은 지하철 안에서도 백팩을 메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 인지하지만, 자신의 시민의식만을 탓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나로인해 한정된 공간이 좁아지는 것도 알고 가끔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지만, 지하철에 어느 곳에서도 백팩을 메는 게 잘못된 행동이라는 경고문구 하나를 본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서울지하철 내에서 백팩사용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포스터 등이 설치됐지만, 승객들이 이를 충분히 보고 느끼기에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지하철 2호선 승강장에 비치된 ‘서울메트로 게시판’에 ‘백팩은 앞으로 매거나 선반위로 올려주세요’라는 문구와 그림이 실린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사실 ‘매거나’가 아닌 ‘메거나’가 맞다.) 그러나 2호선 홍대입구역은 200미터가 넘는 넓은 승강장에서 이 포스터가 겨우 한 장 붙어있었다. 심지어 스크린도어에 붙어있는 것이 아닌 이를 등진 방향에 포스터가 걸려있어 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2호선 신도림역의 경우 승강장이 아닌 역사 내부 외진 곳에서 백팩주의 포스터를 볼 수 있었고,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명동역 승강장에서는 이 포스터마저 찾아볼 수 없었다.
5호선과 중앙선 왕십리역도 마찬가지, 심지어 7호선 강남구청역은 백팩주의 포스터 대신 일본여행을 홍보하는 광고포스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9호선의 경우 거의 모든 역에 백팩을 주의하는 포스터가 스크린도어에 붙어있었지만, 백팩주의 그림과 문구가 다른 주의사항들과 뒤섞여 있고 크기도 작았다.
노량진에서 만난 또 다른 백팩족 남성은 기자에게 자신의 가방에 담긴 공무원 수험서 여러권을 보여줬다. 남성은 공부할 책을 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방이 커질 수 밖에 없었고, 선반위에 올리거나 바닥에 내려놓으면 도난위험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남성은 “만약 기내에서 백팩으로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방송이 나왔다면 부끄러워서라도 얼릉 벗었을 터인데, 방송에서는 벌써 몇 년째 계속 들어왔던 방송만 하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나 심지어 병원광고 등을 하면서 백팩에 대해서는 방송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백팩을 멘 나를 보고 미개한 시민의식을 가졌다고 욕하기 전에 서울 지하철 일하는 공무원들도 백팩과 관련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서울메트로 홍보팀 관계자는 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서울메트로 직원인 저부터가 지하철을 직접 타고 다니기때문에 백팩과 관련된 승객들의 불편은 알고 있었다”며 “포스터나 동영상을 통해 백팩주의에 대해 지속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었지만, 기대만큼의 큰 효과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백팩에 대해 지하철 게시판이나 언론홍보를 통해 캠페인을 벌이도록 노력할 것이고, 안내방송에 넣을 것이 꽉 차있지만 고려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경춘선과 신분당선 등이 개통하며 지하철을 통해 등산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공무원시험 등 취업 준비로 가방이 무거워져 백팩을 멘 지하철 이용객 수는 더 증가할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오는 2017년까지 200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지하철 백팩족 사이를 지나가는 외국인 관광객은 그 좁디좁은 공간처럼 한국을 재방문할 마음을 닫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민철 기자 npce@dailycnc.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