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쓰림, 더부룩한 증상 잡는 액체 위장약

[소비자경제=정명섭 기자] 보령제약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대표 약품이 있다. 1975년부터 40년간 국민의 위장을 지켜온 ‘겔포스(사진)’가 바로 주인공이다. 국가대표 위장약으로 자리매김한 겔포스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최근 ‘월드클래스300 및 글로벌전문기업’으로 선정된 보령제약은 창업주 김승호 회장이 1957년 서울 종로 5가에 설립한 보령약국이 모태다. 보령약국은 당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시장 중 하나인 동대문시장을 마주하고 의정부와 동두천을 연결하는 버스 터미널이 있어 최적의 위치였다.

혁신의 혁신을 거듭해 보령약국이 점차 커가면서 김 회장은 1964년 보령제약을 설립해 직접 약을 제조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스테디셀러 약품을 하나둘씩 만들어내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겔포스’다.

국내 최초 액체형 위장약으로 현재까지 국민들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겔포스는 너무 많이 분비된 위산을 알칼리성 물질로 중화시켜 속쓰림, 더부룩함 같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겔포스는 액체가 고정화된 상태, 즉 콜로이드(Colloid)타입의 제제다. 콜로이드 입자는 표면적이 크기 때문에 입자에 다른 분자나 이온이 붙기가 쉬워 흡착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겔포스는 김 회장이 1972년 ‘비오테락스’와 기술제휴를 통해 국내에 출시한 약품이다. 김 회장은 국내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유럽 의약품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짜 먹는 고형 위장약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알약이나 가루약밖에 없던 시절 미세한 입자가 물에 섞여 걸쭉한 ‘현탁액’ 위장약은 그에게 생소했다.

기술제휴 계약을 체결한 후 3년이라는 시간을 기술도입과 검증과정에 투자했다. 1975년 6월부터 생산을 시작한 이후로, 발매한 지 4년 만에 판매실적이 연 10억원을 넘어 본격적으로 ‘국민 위장약’이 됐다. 현재 보령제약은 겔포스만으로 매년 약 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시대적인 효과가 한 몫 했다. 1970년대 중반 근로자들은 이른 아침 출근해 통행금지 직전 귀가하던 중노동자들이었다. 1년 내내 이어지는 과로를 대포 한잔으로 날리는 것이 근로자들의 낙이었다. 자연히 위장병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고, 겔포스는 ‘위벽을 감싸 줘 술 마시기 전에 먹으면 술이 덜 취하고 위장을 보호한다’는 입소문과 함께 날개가 돋친 듯이 판매됐다.

겔포스는 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는 약품이다. 1980년부터 수출한 대만에서는 제산제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한때는 점유율 95%, 모방 제품 99개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겔포스는 중국에 진출한 첫 국산 약이다. 중국과 한국이 국교를 수립한 첫해부터 겔포스가 수출됐다. 2014년에 현지매출은 약 500억원 정도다. 1992년부터 현재까지 중국에서 팔린 양을 따져보면, 1억3000만명의 중국인이 1포씩 복용할 수 있는 양(중국 판매기준)이다. 지금은 중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국내 제약사 제품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수출되고 있다.

보령제약 최태홍 대표는 “현재 겔포스의 신제품 발매를 준비하고 있으며, 젊은층에 대한 마케팅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겔포스의 효능은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이 끝났다”며 “적극적인 마케팅과 수출을 통해 국민 위장약을 넘어 세계인의 위장약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정명섭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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