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시간 마라톤 회의, 그리스 몰아넣어 협상 이끌어

▲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대화 중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출처=독일 정부 홈페이지)

[소비자경제=정명섭 기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48시간 이어진 마라톤협상 끝에 그리스 구제금융안에 극적 합의한 가운데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무티(Mutti·엄마)’ 리더십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 협상 타결, 혹독 긴축 받아들인 그리스

12일 오후 4시(현지 시간) 유로존 정상들과 그리스가 제3차 구제금융안에 합의하면서 세계경제에 위협이었던 그렉시트(Grexit, 그리스 유로존 탈퇴)는 당분간 가라앉게 됐다. 그러나 그리스는 기존보다 더 혹독한 긴축정책을 수행하는 대가를 치루게 됐다.

그리스는 500억유로(약 60조원) 수준의 국유 자산을 민영화하고 독립 펀드로도 옮겨 은행 자본금을 확충하고 정부 부채를 갚기로 합의했다. 부가가치세 간소화와 연금 체계 개선을 추진해 15일까지 그리스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노동시장뿐만 아니라 사법기관과 행정기관에 대한 개혁도 협상 내용에 담겼다. 이 조건을 이행할 시 채권단은 그리스에 유럽안정화기구(ESM)를 통해 3년 동안 820억~860억유로(약 103조~108조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 메르켈 총리, 강경 입장 안 바꿔

국민 투표를 등에 업고 ‘벼랑 끝 전술’로 채권단에 적극 맞서던 치프라스 총리를 설득해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인공은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였다.

악역을 자처한 메르켈 총리는 치프라스 총리와의 협상 과정에서 ‘빚은 스스로 갚으라’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막는게 시급하다고 설득했지만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를 구석으로 몰았다.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는 가장 중요한 통화인 ‘신뢰’를 잃었다”며 협상이 타결된 후에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그리스 정부는 협상안을 약속한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메르켈 총리의 한결같은 입장을 고수해 그리스는 결국 부채 탕감을 받지 못했다. 치프라스 총리가 사실상 항복한 것이다. 유로존 잔류를 희망한 치프라스 총리에 비해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의 유로존 한시적 탈퇴까지 염두해 좀 더 유리한 입장이었다는 분석이다.

또한 독일 국민의 80%가 그리스 구제금융안에 반대한 것도 메르켈 총리가 강경하게 나갈 수 있었던 이유다. 독일 국민 여론에 편승해 좀 더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 최초 여성 총리, 부드럽지만 힘 있어

메르켈 총리는 지난 2005년 11월 여성으로서 역사상 처음으로 총리에 선출됐다. 라이프치히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베를린 물리화학 중앙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1989년 동독의 민주화를 주도한 시민단체 '민주주의 새출발'의 대변인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0년에 기민당 입당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고향인 메크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1991년에 여성ㆍ청소년부 장관에 오르면서 독일 역사상 최연소 장관이 된 이력이 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에서 그녀의 리더십을 이르는 말로 ‘메르켈리즘(Merkelism)’이라는 용어가 탄생할 정도로 독일 국민에게 신망이 두터운 정치인이다.

메르켈은 이데올리기에 치우치지 않는 등의 실용적인 정책은 갈등 이슈를 둔화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양성 평등, 복지 확대, 징병제 폐지 등과 같은 사민당과 녹색당의 주장을 수용하는 등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원자력 발전 신봉자였던 메르켈 총리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과감히 발전소 폐기에 나선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권력을 과시하기보다 상반된 의견을 포용할 줄 아는 ‘엄마 리더십’으로도 유명하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야당과 노조 등 반대 세력에 강력히 대응한 반면, 메르켈 총리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정명섭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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