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이남경 기자] 국내 제약사들의 공격적 R&D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과 유럽 등 제약선진국에 비하면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R&D생산성을 끌어올리려면 적절한 약가(藥價)보상 및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뒷바침돼야 한다고 충고한다.

25일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국내제약 상위 7대 업체들의 평균 R&D 투자는 지난 2004년 1514억 원(매출액 대비 7.7%)에서 지난해 6100억 원(매출액 대비 12.4%)으로 10년 만에 4배 규모로 증가했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높은 제약사는 한미약품(20.3%), LG생명과학(18.9%), 종근당(13.7%), 동아에스티(11.04%) 등이었다.

배기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제약 상위 7대 업체 R&D 투자금액이 사상 최대인 6336억 원에 달할 것”이라며 “공격적인 R&D투자가 신약 성과와 수출확대로 나타나고 있다”며 제약업계 투자확대를 권고했다.

◇벼랑끝에 선 제약업계, R&D로 살길 텃다

한미약품은 매출 대비 R&D 투자비중을 2011년 13.5%에서 지난해 20%(1525억)로 크게 늘리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3년간 R&D에 투자한 금액은 약 3600억원에 달한다. R&D 관련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동아에스티 지분과 동아쏘시오홀딩스 지분을 총 880억 규모로 매각하기도 했다. 현재는 26건에 이르는 신약 R&D 프로젝트를 국내외에서 진행하고 있다.

장은령 한미약품 대리는 “한미약품은 2011년과 2012년 매출액 대비 13%, 2013년 15% 이상 R&D에 꾸준하게 투자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투자비율은 성장세일 것”이라고 말했다.

LG 생명과학도 2004년 약 500억 원이었던 R&D 비용을 지난해 750억 원(매출액 17.5%)로 50% 이상 늘렸다. 종근당 또한 2012년 10.9%에서 2014년 13.7%로 늘렸다. 손쉬운 제네릭 생산과 영업에 의존했던 국내 제약사들이 비로소 기술개발로 눈을 돌린 것이다.

업계는 이 같은 변화를 제약사들의 새로운 돌파구 공약으로 분석한다. 정부의 대규모 약가 인하정책에 따라 내수 시장 성장률이 2~3%대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정윤택 진흥원 제약산업지원실장은 “제약사들이 일괄약가인하, 리베이트 투아웃제 등 정부 규제 강화로 내수시장이 정체되자 R&D투자를 통한 글로벌 진출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진승 한국제약협회 홍보팀 부장은 “신약개발에는 많은 기간과 돈, 시설이 필요하다”며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므로 미래 가치에 대한 지속적 투자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해외에 비해 국내 제약사들의 R&D 투자가 미미한 수준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유럽연합 산업 R&D 투자 스코어보드 2013’에 따르면 글로벌 R&D 투자 제약기업(294개사)이 총 969억유로를 투자(매출액 18%)한데 비해 국내 제약기업은 12개 기업이 3억5000만유로를 투자, 전체 제약분야 연구비의 0.4%에 그쳤기 때문이다. 제약 강국인 스위스의 1개 기업 평균 투자규모가 약 15억유로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더라도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보건산업정보통계센터의 한 관계자는 “해외 기업과 한국 기업은 규모와 투자 기간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며 “매출액 대비 투자비용 비교는 지나치게 단순한 비교”라고 말했다.

◇국내약가, OECD 국가 중 ‘꼴찌’

이에 따라 제약사들의 R&D 독려를 위해서는 신약에 대한 절절한 약가보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재천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상무는 “약가규제가 신약 R&D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국산신약의 혁신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약가정책은 제약산업 황폐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2007년 이후 국내에 등재된 신약의 가격은 OECD 국가 평균가격의 44.4% 수준이다. 보험 등재된 전체 신약의 약 73%를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

일본은 임상으로 확인된 치료효과 외에 임상적으로 유용한 새로운 작용기전, 제형이 개선된 신약, 적응증과 투약량이 명백히 소아용인 신약 등에 대한 의약품의 혁신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탈리아도 치료효과의 개선 없이 새로운 작용기전을 가진 신약은 혁신의약품으로 적절한 약가를 보상하고 있다.

◇R&D생산성 취약, 정부협조 ‘절실’

▲ 출처=한국제약협회

신약관련 R&D 생산성이 취약한 것도 약가정책이 변화돼야하는 이유 중 하나다. R&D 비용은 계속 증가하는데 반해 신약 개발 성공률은 계속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13년 보건산업백서’에 따르면 제약기업의 연구개발비는 2008년 6858억원에서 2009년 7868억원, 2010년 8103억원, 2011년 9803억원, 2012년 1조171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신약개발에 소요되는 시간도 함께 늘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의 2010년 BT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신약개발의 모든 과정을 거쳐 신약이 출시되기까지는 보통 10~15년 정도가 소요된다. 동아ST ‘시벡스트로’의 경우 전임상을 마치고 지난 2007년 기술이전을 한 뒤 미국에서 허가, 출시되기까지 7년이 소요됐다.

2012년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이 조사한 결과 국내에서 신약 1건이 탄생하기까지 평균 9년의 시간과 187억 원의 연구개발비가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과거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에 비교적 소극적이었던 이유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이상은 한국제약협회 공정약가정책팀 선임연구원은 “수백에서 수천억을 상회하는 R&D 비용을 생각할 때 판매가 저조하다면 신약개발 재투자 및 개발신약 추가 투자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합리적인 약가 등재를 통해 R&D 투자비와 개발원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보험등재제도 개선이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제약시장, ‘파머징 마켓’이 대세

▲ 출처=한국제약협회

한편 세계 제약시장의 성장축은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했던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아시아와 중남미 등의 신흥국가들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제약협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른바 ‘파머징 파켓’은 2006년 전체 14%에서 2011년 20%로 늘어나 2016년에는 30%가량의 점유율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파머징 마켓이란 중국, 브라질, 인도, 러시아, 터키 등 경제성장과 함께 의약품 소비량이 급증하는 국가를 말한다.

김명중 한국제약협회 대리는 “니즈증가로 인한 시장규모 확대”라며 “기업활동 풍토가 조성되면서 성과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벨기에는 세계에서 개발되는 신약 중 5%를 차지, ‘신약개발의 세계 최고 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구당 임상시험 수에서는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성과 뒷편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R&D 투자와 정책지원이 있었다. 벨기에는 제약 분야 R&D에 매년 약 2조133억원(15억유로)을 투자하고 있다. 이는 벨기에 전체 R&D 투자액의 약 40%를 차지한다. 국내 제약업계에 대한 정부의 R&D 투자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한미약품은 R&D 투자로 다국적제약사 일라이릴리와 BTK저해제 HM71224에 대한 78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녹십자의 혈우병치료제와 혈액제제, SK케미칼의 혈우병치료제가 글로벌 임상3상 단계에 있으며 종근당의 고도비만치료제도 호주에서 임상2상에 들어갔다.

김지영 보건산업정보통계센터 연구원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의 투자노력과 더불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은영 보건복지부 해외의료진출지원과 과장은 “미래제약 10대 특화분야를 도출해 육성형 R&D를 지원하고자 한다”며 “신약개발 R&D협의체를 운영해 투자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남경 기자 npce@daily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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