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방법은?

-예측하긴 어렵다.
-조금만 잘못해도 섭섭해 한다.
-부모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불규칙적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잘 의식한다.
-환상을 즐긴다.
마치 사춘기 소녀의 특징을 나열해 놓은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곧 ‘소비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은 동일한 서비스에도 기뻐할 때가 있고, 불만을 나타낼 때가 있다. 또 자신이 되고자하는 이상적인 자아상을 환상 속에서 계속 키워가지만 현실의 자아와는 갭이 크다. 유행도 잘 타고, 타인의 영향을 받기 쉽다. 즉 소비자란 ‘소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오늘날 ‘시장’은 곧 ‘소비자’ 그 자체를 말하므로 시장을 예측한다는 것은 소비자가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 심리연구는 기업들의 필수 항목이다. 기업을 울리기도, 웃게도 만드는 소비자의 심리. 이에 기반을 둔 불황기 전략과 향후 소비자들의 움직임에 대해 김재휘 한국소비자광고심리학회 회장에게 들어봤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사실은 바로, 과거에 침묵을 지켰던 소비자가 자신의 가치, 욕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웹 2.0 환경이 확고하게 자리 잡음과 동시에 블로그와 홈페이지 등에 제품에 관한 무척 상세한 리뷰와 개선해야할 점, 불만 사항들이 공유되고 있다. 이러한 세밀한 체험기는 다른 소비자들에게 판단의 기준이 될 만큼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따라서 웹상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소비자와 신속하고 다양한 의사소통 시스템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또한 기술이 발전되고 많은 제품이 나와 처리할 정보가 많아질수록 선택에 있어서 ‘감성의 힘’이 커졌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사회에 복잡성이 더해갈 수록 인간의 선택은 오히려 자동화 된다. 즉, 가장 대응이 빠른 ‘감성’이 그 역할을 한다. 시장에서 좋은 제품을 고를 때도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성적인 판단이 더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소비자들은 디자인이 예쁘면 성능이 뛰어나고, 견고하며, 우수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다. '보랏빛 소가 온다‘의 저자인 Seth Godin을 비롯해 많은 마케팅학자들이 “디자인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해온 것처럼 이제는 ‘디자인 경영’을 하지 않으면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
불황일수록 소비자는 불안하고, 소극적이게 되며, 마음과 함께 지갑을 닫고 있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선 이들의 마음을 먼저 녹여주어야 할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당신의 돈은 정말 금쪽같은 돈입니다. 우리 제품을 어렵게 선택했다는 걸 잘 압니다”와 같은 자세로 마음을 헤아려줌과 동시에 왜 이 제품을 선택해야하는지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불황일 때 소비자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고, 구매에 실패할 수 있는 여유 또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황 일 때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을 가졌던 상품이 광고시장에서 사라지면 소비자들은 불안해한다. 광고홍보비용을 줄여 광고시장에서 멀어지는 것보다 오히려 적극적인 광고홍보 활동이 회사를 더 돋보이게 하고 신뢰를 얻기도 쉽다. 이 외에 소비자심리를 활용한 구체적 전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희소성을 통한 가치 높이기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는 결핍에서 시작된다. 예컨대, 가정에서 냉장고를 오래 사용해서 고장이 나면 당연히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려는 동기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구매 동기는 기대나 목표에 의해서도 발생하며, 기업은 가만히 있는 소비자에게 ‘외적 유인가’를 통해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게 해 구매동기가 일어나도록 한다. 즉 초대형 냉장고, 서랍식 냉장고, 와인냉장고 등 수많은 새로운 냉장고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사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이 때 소비자들의 동기를 보다 가속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희소성을 강조한 접근법’이다. 결핍에서 비롯한 구매가 아니라면 소비자들은 구매를 빨리 결정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 제품을 “오늘만 판다, 10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 혹은 “오늘만 50%세일이다”라고 하는 설명이 덧붙여지면 갑자기 소비자들은 더 사고 싶어지고, 서둘러 구매를 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희소성 메시지를 통한 구매촉진’이다. 홈쇼핑 TV를 보고 있으면, 준비된 상품의 수와 현재 판매된 제품의 수가 표시되며, 쇼핑호스트가 계속 “몇 개 남지 않았다” 혹은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다, 지금이 찬스”라고 계속 외쳐대면, 이 때 지름신이 찾아오며 자신도 모르게 전화기에 손이 가게 된다.
2. 공돈 효과, 푼돈 효과
우리가 버는 돈의 대부분은 노동의 대가이다 보니 필사적으로 정성들여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걷다 땅에 떨어진 돈을 발견했다면 어떨까? 이 돈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우연히 생긴 것이다. 공짜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면 과감한 지출을 하게 된다는 것이 공돈 효과(house-money-effect)이다. 공돈은 소비자들에게 계획에 없던 구매를 유발하고 충동구매를 유도한다.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여 소비자의 지갑을 보다 쉽게 열게 한 것이 푼돈(pennies-a-day)전략이다. 예컨대, 한 달에 몇 만원씩을 납입해야하는 보험료를 ‘하루 천 00원만 납입하면 1억 보장!’ 등과 같이 실제 지불할 금액을 적게 만들어서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커피 한 잔 값으로 평생보장’ 등과 같이 사람들이 매일같이 쉽게 지출하는 상황과 연결한다면, 보험가입에 지출하는 비용이 더욱 더 푼돈이라고 여겨질 것이고 쉽게 가입을 하고 말 것이다.
3. 준거점 바꾸기 전략
소비자는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예측할 때 어떤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을 통해 최종적인 예측치를 판단하고 구매결정을 한다. 예컨대, 자동차를 판매할 때 판매원이 구매조건을 어떻게 제시하는가에 따라서 소비자들이 최종적으로 지출하는 금액이 달라진다. 한 그룹은 뒷좌석 TV, 내비게이션, 좌석 열 히트와 같은 다양한 인테리어를 포함한 풀 옵션(full option)을 제시하여 이것을 기준으로 하나씩 옵션을 제거하도록 하고, 다른 그룹에서는 주어진 옵션들을 하나씩 채워가는 조건(base option)이라고 하자. 첫 번째 그룹은 모든 기능이 포함된 것이 준거점(reference point)이 되며, 다른 그룹은 아무런 기능이 포함되지 않은 조건이 준거점이 된다. 이 경우에 풀 옵션을 기준으로 제시했던 그룹이 더 많은 옵션을 선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지출 금액이 훨씬 높아진다.
준거점을 바꾸는 전략으로 더 흥미로운 것은 ‘후불제 판매’이다. 소비자들이 선불제로 물건을 사는 경우는 제품의 ‘장점’에 준거를 둔다. 하지만, 후불제의 경우엔 제품에 어떤 장점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하지 않고, ‘나중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환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일단 주문한 물건이 손에 들어오면 ‘꼭 내가 반환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반환할 만큼 제품에 결정적 문제가 있는가’처럼 ‘단점’을 찾는 준거로 바뀌게 된다. 또 교환과 반환에도 번잡함, 귀찮음, 시간소여가 발생하기 쉽다. 따라서 오늘날 소비자들의 신용카드구매, 할부, 교환보장 등의 후불상품판매제도가 판단 준거를 바꾸어 소비자들이 물건을 더 쉽게 사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소비 심리를 작동시키는 수많은 마케팅 전략들이 소비자들에게 ‘지름신이 내려오도록’만드는 것인지 모른다. 근래에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SI)가 5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자심리는 ‘시장’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때론 이처럼 국내동향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미국에서도 최근 ‘소비자행동’을 전공한 교수들이 스스로 ‘소비자심리학자’로 지칭하며 ‘소비자행동론’이 아닌 ‘소비자심리학’ 과목을 개설하는 등 소비자광고심리학 분야는 입지를 강화하며 꾸준히 성장 중이다. 한국은 풍족한 삶과 같은 물질적 가치에서 자존감이나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탈 물질적 가치로 그 중심이 이행하는 중이므로 ‘건강, 행복, 재미’ 등의 키워드에 주목하며 이에 따른 소비자들의 심리변화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한국소비자광고심리학회
1996년 무렵 마케팅학회, 광고학회, 소비자학회 등이 성장하면서 이론적 발전을 모색하던 차에 이론적으로 무장이 잘 되어 있는 심리학과 함께 어울려 99년 12월 5일 정식 발족했다. 금년 겨울 10주년 행사를 기획하고 있으며, 현재 530명 이상의 심리학, 광고학, 소비자학, 패션마케팅학, 관광학 등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과 리서치, 광고회사, 기업, 공공기관 등 현업의 많은 전문가들이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엄혜영 기자
ehy@ceo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