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출총제 폐지 제안 반기지만, 거래는 NO

“재계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는 대신 투자 확대와 일자리 늘리기를 약속해 달라”면서 이른바 ‘뉴딜(New Deal)’을 내세워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권오승)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의 ‘속셈’에 재계의 떠보기와 진보단체들의 비난이 동시에 일고 있다.

재계를 향한 김 의장의 노골적이고 공개적인 ‘거래’ 제안. 주고 받을 게 있을까?

열린우리당이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정부의 경제정책을 패배의 주원인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부동산 시장의 집값을 잡겠다며 내세웠던 8.31부동산정책과 세금정책이 일반서민에게까지 세부담을 가중시켰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고유가와 환율하락 등 악재가 겹치면서 체감경기가 급격하게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하반기 기본 경제정책방향을 경제회복 노력 지속, 물가 등 경제 안정, 서민경제 회복 노력, 경제시스템 선진화로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장기대책으로 승부하겠다던 정부 계획의 차질로 인해 기존 정책들이 조금씩 수정되는 과정에서 김 의장이 들고 나온 ‘뉴딜’은 경제문제를 정략적으로 활용한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이러한 김 의장의 제스처에 대한 재계와 시민단체의 반응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지원사격은 없고 논란만 가중

김 의장의 ‘뉴딜’ 제안에 대해 전경련관계자는 “지금이라도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하겠다고 여당이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출총제 폐지하고 투자를 확대한다 해서 경제가 살아난다는 장담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경제활성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구속된 기업인들의 특사까지 주장하고 있어 두둑한 배짱으로 배팅도 할 뿐 아니라, 심지어 출총제 폐지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면서 순환출자제한이 대안으로 나오자 오히려 출총제를 존속시키는 게 더 낫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기존의 출자총액제한제도에서는 대기업이 순자산액의 25%를 초과하지만 않는다면 계열사에 출자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순환출자금지제도는 순환출자 자체를 막는 것으로 출총제보다 강한 조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김 의장의 출총제 폐지 제안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사후규제가 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 폐지논란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KDI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들의 투자는 활성화되어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서비스업종에는 투자가 부진하여 ‘투자의 양극화’가 나타났다”며, “더 이상 ‘재벌투자 선도론’은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대안도 없이 무턱대고 출총제 폐지하고 기업에 투자와 고용을 늘려달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며 답답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대권을 노리고 있는 김 의장의 제스처는 5.31 지방선거를 보면서 ‘눈에 띄는 경제문제 해결 없이는 표 없다’는 것을 느낀 정치적 계산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金/재계, 호락호락치 않은 흥정

김 의장이 말하는 ‘뉴딜’이란 과거 미국의 F.D 루스벨트의 ‘뉴딜’과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 재계와의 ‘거래’이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미지근하게 반기고, 시민단체에서는 열을 올려 반대하는 입장. 딱히 그럴듯한 지원사격을 받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 김 의장이 재계를 상대로 제시할 수 있는 카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김근태 의장의 카드는 출총제 폐지를 비롯, 입법화가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모기업과 자회사간 법적 분쟁이 생길 것이라며 재계가 반대하고 있는 이중대표소송제, 수도권 지역에 규제가 심해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규제완화를 요구해 온 수도권공장신증설규제 문제 등 각종 제도적 장치들의 폐지 혹은 완화가 될 수 있다.

반대로 김 의장이 재계에 요구하는 고용확대와 투자확대로 침체된 경기를 살릴 수 있다면 ‘동지’에서 ‘경쟁자’로 부각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5.31 지방선거 참패라는 쓴 맛을 본 경제정책을 딛고 ‘경제를 살리는’ 대선 후보로 나설 수 있다.

이는 직?간접적으로 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자극성 발언을 하고 있는 김 의장의 최근 행보에서도 잘 드러난다. 야심찬 계획처럼 재계와의 ‘거래’에 결코 손해보지 않겠다는 의도가 충분히 깔려 있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정치적 의도가 없진 않겠지만 반길만한 일이다. 하지만 다 믿을 수는 없다.”며, 김 의장의 미끼에 조심스레 다가가면서도 정세를 판단한 후 ‘거래’에서 최대한 이득을 뽑아 보겠다는 심산이다.

이처럼 정계와 재계 양쪽 모두에 서로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줄다리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김근태 의장과의 간담회에서 전경련 강신호 회장이 “출총제 폐지 시에는 14조원의 여력이 있어 추가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밝혀 ‘거래’에 대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비전도 없이 경제정책으로 ‘거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된다”며, “진짜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판단되는 정책이 있다면 그냥 추진하면 될텐데, 왜 굳이 딜(Deal)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는 일부 학계의 주장은 국민 경제를 담보로 한 김 의장의 정치적 ‘딜’이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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