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김민진 기자) 지난 8일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2항 제3호의 위헌을 위한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됐다. 청구인 수는 21만751명. 역사상 최다 청구인이었던 9만5988명을 2배 이상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청구인으로 역대 최다였다. 주요 청구인으로 나선 이는 전 게임개발자이자 90만 구독자를 보유한 G식백과 채널의 김성회였다. 그가 헌법 소원을 시도한 이유는 무엇이고, 그 과정은 무엇일까, 자세히 살펴보았다.
역대 최다 청구인이 모인 헌법 소원
지난 9월 5일 한국게임이용자협회의 이철우 협회장과 G식백과의 김성회 씨는 영상을 통해 게임산업법 제32조 제2항 제3호의 폐지를 위한 헌법소원을 추진한다고 밝히며 청구인 모집과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영상이 올라간 지 1시간 만에 2만 명의 게이머들이 서명을 했고, 22시간 만에 종전 최다 헌법소원 청구인이었던 9만5988명을 뛰어넘는 10만 명을 달성했다. 그리고 약 22일만에 21만여 명의 청구인이 모여 사상 최대 인원이 참여하는 헌법소원이 시작됐다. 이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이들이 문제 삼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2항 제3호를 살펴보자. ‘② 누구든지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반입해서는 아니 된다. 3.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해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것’
얼핏 보면 큰 문제가 없는 문구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법률은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데다가 사전 검열을 정당화할 수 있는 문구라고 할 수 있다. 영화나 만화에서는 일찍이 사라진 사전 검열을 가능하게 하는 법률이다. 실제로 김성회 씨는 꽤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지적해 왔다.
모든 콘텐츠는 제작, 유통되기 전에 이 콘텐츠를 몇 세까지 즐길 수 있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등급 심사를 받는다. 게임은 게임물관리위원회라는 조직이 이를 도맡아서 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나 결과가 게이머들의 상식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 단간론파 V3’의 심의 거부 논란이다. 이 게임은 2010년부터 시리즈가 제작된 추리 어드벤처 게임으로 감금된 장소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을 수사해서 진범을 찾아내 벌하는 내용이다. 게이머는 학급 내에서 수많은 추론과 수사를 통해 진범을 밝히고, 그 진범을 다소 잔혹하고 처절하게 벌하는 게임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2017년 이 게임의 등급분류를 거부하며 사실상 ‘뉴 단간론파 V3’의 국내 유통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그리고 그때 거부의 이유로 내세운 것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2항 제3호였다.
‘뉴 단간론파 V3’의 등급 거부는 당시 게이머들 사이에 꽤 논란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뉴 단간론파 V3’ 이전에 출시한 단간론파 시리즈는 모두 무사히 심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시리즈의 특성상 단간론파 시리즈는 모두 잔혹한 묘사가 있고, 범죄를 모티브로 하고 있기에 콕 집어 ‘뉴 단간론파 V3’만 심의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비단 ‘뉴 단간론파 V3’만의 사례만이 아니다. 김성회 씨가 국회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대표적인 PC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월 평균 17.3종의 성인용 게임을 차단했으며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에는 2주간 51종의 게임을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현의 자유가 무엇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오늘날, 이같은 검열을 행하고 있는 국가는 지구상에서 중국과 한국뿐이다.
수많은 게이머가 헌법소원에 참여한 이유는?
헌법소원에 이토록 많은 게이머가 동의를 구하며 참여한 이유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2항 제3호에 대한 반감뿐만 아니라, 그동안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일관되지 못한 등급 심사에 대한 반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성회 씨가 자신의 영상과 기자회견에서 계속해서 강조한 것처럼 게임은 다른 콘텐츠인 영화나 만화, 드라마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로 등급분류가 진행된다. 명백한 성인임에도 성인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성에 대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이라 평가받는 이슬람 국가에서도 플레이가 가능한 성인 게임이 한국에서는 등급분류가 되지 못해 플레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 그동안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보여준 행보가 게이머들의 반감을 키웠다.
그동안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게임’이라는 전문영역을 관리하는 집단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반 게임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게임의 순기능이나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모습보다는 규제와 처벌을 통해 게임의 역기능을 강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김성회 씨가 국회를 통해 입수한 ‘뉴 단간론파 V3’의 심의 회의록에서도 이런 모습들은 잘 나와 있다.
녹취록에서 등급위원들은 ‘과거 심의 내역은 참고만 할 뿐이다’라는 멘트를 통해 사람이 바뀌면 등급의 기준 역시 바뀐다는 이야기를 했다. 체계적인 절차와 제도에 따라 등급이 이뤄질 것이라는 게이머들의 기대를 정면으로 외면하는 발언이었다.
김성회 씨는 지난 민생토론회에서 언급한 “게이머는 계도와 계몽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비 살인자도 정신병자도 아닙니다. 한 명의 국민이자 문화 소비자로 대해 주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도 게임이 다른 콘텐츠와 같은 선상에서 분류되고 심의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김성회 씨와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한 한국게임이용자협회 회장이자 사건의 대리인이기도 한 이철우 변호사 역시 “유독 게임에만 엄격한 잣대가 드리워지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게임 이용자 목소리가 표출된 것”이라며 “이번 헌법소원이 인용되는 경우 비로소 게임에 관해 여타 콘텐츠와 동일한 심의 기준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