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김민진 기자] 지난 30일 티몬·위메프 사태, 이른바 ‘티메프’ 사태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구영배 큐텐 대표가 국회 정무위의 긴급 현안 질의에 등장했다. 그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라도 피해자와 파트너사들에게 보상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얼마 후 티메프가 기업 회생을 신청한 사실이 드러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기업 회생은 채무 상환을 일정 기간 유예받고 법원의 지휘를 받아 기업을 살리는 절차로 이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티메프의 자금이 법원의 지휘를 받게 되기에 피해자들이 거래 대금을 온전히 돌려받기가 상당히 힘들어진다. 피해자들은 “앞으로는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달콤한 말로 시간을 끌면서 기업 회생을 신청한 것은 피해 복구 의사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며 티메프와 구영배 대표에 대해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티메프 사태에서 신뢰와 책임을 이야기한 착한 기업들
티메프와 구영배 대표가 이처럼 뭇매를 맞으며 비난에 시달리는 이유는 이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티메프가 진정으로 기업 이해관계자들의 사정을 생각했다면 기업 회생이 아닌 피해자들의 피해 보상을 먼저 고민했어야 한다는 게 피해자들의 의견이다.
평가가 나날이 떨어지는 티메프와 달리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피해 기업임에도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기업도 있다. 티메프 사태로 인한 피해 보상을 약속한 일부 기업들이다. 일부 여행사와 중견기업은 티메프로 자사의 여행이나 상품을 구매한 고객들에게 100% 환불, 일정 변동 없는 여행 출발, 포인트 환급 등을 약속하고 나섰다. 모두 티메프에 입점한 개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소비자들의 피해를 보상해주는 조치다.
피해자들은 티메프 사태와 상관없이 금액을 돌려받거나 상품을 온전히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기업들에게는 이 모든 비용이 손해로 잡힐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자체적인 보상을 진행하는 기업들은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10억 원이 넘는 비용까지도 지불하게 되었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책임’ 경영과 소비자와의 ‘신뢰’를 위해 이같은 결정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이 조치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착한 기업’으로 각인되며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고 있다. 이윤을 목표로 하는 기업들이 손해를 감수하며 이런 행위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위기 상황에서 쌓은 소비자들의 신뢰와 기업의 선한 이미지가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이윤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곧 ESG 경영으로 귀결된다.
ESG란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ESG 경영이란 기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ESG를 추구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ESG라는 개념이 막 태동했을 당시만 해도 ESG 경영은 인류애적인 측면에서, 혹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한 선택의 일환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ESG 경영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의견도 많았으나 오늘날에는 ESG 경영의 효과와 그 영향의 중요성을 의심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ESG 경영이 중요한 이유
ESG가 중요한 이유는 소비자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아무런 인식 없이 단순히 ‘내게 좋은 제품, 내가 편한 서비스’만을 고집하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내가 구매하고 경험할 제품과 서비스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고려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고 해도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재료가 포함되어 있으면 사용하지 않고 유니크한 제품이어도 제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구매를 망설인다. 이런 경향은 지속가능한 발전과 미래를 중요시하는 MZ세대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ESG 경영의 효과와 리스크를 입증하는 사례는 굉장히 많다. 1990년대 최고의 스포츠 의류 브랜드로 유명했던 나이키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아동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수많은 비난을 받았다. ESG, 혹은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나이키는 초기에 이 문제를 외주 업체의 책임으로 돌리며 회피하려 했다. 하지만 이 태도로 대중의 비난은 더욱 심해졌고 나이키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며 사회적 책임 기업의 대표주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ESG 경영의 효과를 본 기업이 많다. 뷰티 브랜드인 아모레퍼시픽은 2030년까지 국내외 모든 사업장의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국내 물류 차량의 100%를 친환경차로 대체할 계획을 밝혔으며 2020년에는 국내 최초로 리필스테이션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하림은 폐목재를 재활용한 바이오매스 보일러, 고기능 복합 필터 등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친환경 활동으로 ESG 통합평가가 3단계 수직 상승한 바 있다. 더불어 포장재 재활용, 친환경 아이스팩 사용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에 매진하고 있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장학금 지원, 불우이웃 제품 지원 등 지속적인 ESG 경영으로 단단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반대로 ESG 경영을 간과해 위기를 맞은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남양유업이다. 유가공품 제조 분야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자랑하는 남양유업이지만 2011년부터 수많은 논란거리에 휘말리며 이미지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대리점 제품 강매, 본사 영업사원의 폭언, 시대에 뒤떨어진 사내 문화 등으로 끊임없이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린 남양유업은 갑질 회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남양유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불매운동으로 번졌고 결국 2021년 남양유업은 수많은 논란을 낳았던 오너 경영을 끝내고 한앤컴퍼니에 매각되고 말았다.
SPC그룹은 2022년 연달아 이어진 공장에서의 안전사고로 인해 ESG 리스크가 터졌다. 불법 인력 파견, 불합리한 노동자 처우와 노동 환경, 가맹점에 대한 갑질 등 여러 요소가 결합해 SPC의 ESG 경영에 대한 진심이 의심받게 되었고 이는 곧 SPC 그룹의 위기로 이어졌다.
ESG 경영을 정말 쉽고 간단하게 이야기한다면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기업의 이미지, 평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 평판은 의외로 위기 속에서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 티메프 사태라는 위기상황에서도 소비자와의 신뢰와 책임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한 기업들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