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물형 인간 아닌 멀티플레이어 각광

이색 경력을 지닌 CEO들이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기존 CEO들이 조직관리와 이윤창출에 몰두하는 것과 달리 전직에서 쌓은 노하우를 경영에 활용하면서 전혀 새로운 경영 툴을 선보이고 있는 것.
대표적인 CEO가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전(前) 사장이다. 인체 대신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사로 변신한 안 전 사장은 ‘기업의 목적=이윤 추구’라는 공식을 보기 좋게 깨뜨리고 안철수연구소를 국내 굴지의 IT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사명감 때문에 의대 교수라는 직책을 버렸다”고 말하는 안 전 사장은 술수와 작전이 난무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원칙과 기본으로 승부해 성공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세계적인 보안 회사 맥아피사 회장이 1000만 달러이라는 거액으로 그의 회사를 인수하려 했을 때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으로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이색경력으로 조직에 활력
양윤선 메디포스트 사장도 의사 출신이다. 양 사장은 서울의대 임상병리학 전공의와 삼성서울병원 교수로 6년간 활동하다 제대혈을 환자치료에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에 뜻 맞는 동료 의사 5명과 함께 2000년 메디포스트를 창업했다.
그렇게 시작한 CEO 생활은 그에게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지난해 7월 코스닥에 상장돼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렸고 이로써 코스닥 갑부 대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양 사장은 “사업을 하는 것이 특별한 선택은 아니었다. 의학공부를 하면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병원에서 활용하느냐 기업에서 써먹느냐의 문제였다. 세계적으로 많은 기업들이 바이오 신약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에서 신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속도나 효율성 면에서 가장 효율적이었다”며 CEO로의 변신 이유를 간략히 설명했다.
김영선 이지함화장품 사장은 약사 출신이다. 약사 면허를 취득하고도 제약회사와 화장품 회사 영업사원의 길을 택해 2000년 이지함화장품 대표로 취임했다. 김 사장은 약대 시절 경험을 살려 신제품 개발 아이디어부터 마케팅까지 일인다역을 도맡아 했다.
“약사들은 절름발이 사회인”이라고 꼬집는 김 사장은 “바이오 산업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 약사들에게 비즈니스 마인드가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기업 혁신 진두지휘 도맡아
의대 교수 출신 CEO들이 대부분 관련 업계로 진출하는 것과 달리 전혀 다른 분야 CEO로 직업을 바꾼 이들도 있다. 이들에겐 타분야의 경험을 살려 기업 변화를 진두지휘하라는 특명이 내려지기도 한다.
서울대학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출신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선친(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뜻을 받들어 1996년 교보생명 부회장으로 전직했고 지난 2000년 3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가 CEO가 된 후 가장 먼저 ‘메스’를 댄 부분은 조직의 변화와 혁신이었다. 신 회장은 “위암에 걸린 환자를 살리기 위해 위를 모두 잘라낸다면 환자를 결국 살릴 수 없다. 변화와 혁신도 마찬가지다. 문제 있는 조직을 모두 바꿔버리기 보다 부문간 시너지를 창출해내는 게 관건”이라며 변화혁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신 회장은 또 CEO의 덕목 중 건강을 최우선을 꼽는다. 몸이 안 좋으면 자연스럽게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회의용 의자는 푹신하지도 않고 회전도 안되며 바퀴도 달리지 않았다. 허리가 불편해 화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윤재승 대웅제약 사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온 검사 출신이다. 부친(윤영환 대웅그룹 회장)의 권유로 제약사 CEO로 업(業)을 바꾼 윤 사장은 취임 당시 “제약업에만 머물 생각이 없다”며 사업 다각화를 선언, 부단히 사업확장에 힘써왔다.
제약업계로선 보기 드물게 지주회사 체제를 설립하고 계열사수를 13개로 늘렸다. 바이오사업 외에 부동산 임대업, 통신장비 제조업까지 손을 댔다.
최근에는 미국 연수를 마치고 경영일선에 복귀하면서 ‘글로벌 제약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소송외적 분쟁해결 인증(회사간 제휴·분쟁을 법률적 소송을 거치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 코스를 이수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동안 어떻게 하면 대웅제약의 세계화를 이룰지 고민했으며, 이제는 확실히 정리가 된 것 같다”며 글로벌 경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前職경험이 성공 밑거름”
뚝심 있는 CEO로 정평이 나 있는 윤호원 영조주택 회장은 검찰 수사관 출신으로 법무사 사무실까지 운영한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수사관 재직 시절 검찰 내 주택조합위원장을 맡아 부지확보부터 입주까지의 조합비리 수사를 총괄했고 법무사 시절에는 부동산 등기업무를 전문으로 다뤘다.
이러한 경력 덕분에 윤 회장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내 신호·명지지구의 공동주택용지 매각입찰에 참여, 대형 주택업체들을 제치고 아파트 1만여가구를 지을 수 있는 부지를 따냈다.
주택시장의 공정거래를 진두지휘해오던 이력이 남아서일까. 윤 회장은 “주택업체 CEO라면 공급한 주택 입주자에 대한 투철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품질 좋은 아파트 공급뿐만 아니라 입주민을 위한 사후관리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국내 여성 헤드헌터 1호인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이사는 스튜어디스 출신이다. 평범한 주부를 꿈꾸던 그가 열정적인 CEO로 인생역전을 시도한 것은 우연히 미국 월스트리스의 커리어우먼을 접하면서다.
그 후 네 번의 전직을 통해 헤드헌터로 입지를 굳혔다. 스튜디어 시절 몸에 익힌 매너와 열정을 접목시킨 유 대표는 정교한 커뮤니케이션과 인맥 쌓기로 새로운 여성 CEO 상(像)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황선아 기자
hsa@ceo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