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점 이벤트 메인 화면 [사진=소녀전선 게임화면 캡쳐]
고정점 이벤트 메인 화면 [사진=소녀전선 게임화면 캡쳐]

2015년 등장한 소녀전선은 국내 모바일 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선 ‘일본식 사물 모에화 캐릭터는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깼고, ‘주요 캐릭터 뽑기는 웬만하면 유료’라는 공식도 깨면서 ‘수집형 RPG’라는 장르의 시장을 국내에 열었다. 

그 이후로 5년이 흐르면서 소녀전선의 스토리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소녀전선의 스토리는 제 3차대전을 겪은 이후의 냉전기를 다루는 대체역사물이자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표방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2062년 그리폰&크루거라는 작은 용병업체의 지휘관으로서 시작해 로봇의 일종인 전술인형들을 지휘해 수많은 적과 싸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전술인형들이 품은 사연, 곳곳에 숨겨진 다양한 비밀과도 마주했다. 

이번 대형 이벤트 ‘고정점’은 그동안 플레이어가 지켜봐왔던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모두 집합하게 되는 최종장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야기의 편린을 조금 들여다보았다.

한때 서로 대립하거나 따로 떨어져서 활동했던 주역들이 이제는 하나의 소속으로서 유대감을 지니게 됐다. [사진=소녀전선 게임화면 캡쳐]
한때 서로 대립하거나 따로 떨어져서 활동했던 주역들이 이제는 하나의 소속으로서 유대감을 지니게 됐다. [사진=소녀전선 게임화면 캡쳐]

한자리에 모인 주연들, 유대와 함께 더욱 인간처럼

 이번 고정점에서는 그동안 여러 스토리의 주축이었던 AR소대, 404소대, 철혈공조, 리벨리온 소대, 슈타지 소속 전술인형들이 등장해 함께 아이네아이스 소대로서 연합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목표는 리벨리온의 소대장인 안젤리나의 구출이며, 목적지는 5번째 대형 이벤트인 난류 연속부터 지금까지 아군을 괴롭히던 테러 단체인 패러데우스의 본거지다.

패러데우스의 본거지는 붕괴액으로 오염되어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데드존 중앙이다. 작전구역에서 통신이 두절되면서 지원을 받지 못하고 고립된 연합은 고민 끝에 목표완수를 위해 지휘관에게로의 메시지를 남겨둔 채 흩어져서 돌입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움직임은 사전에 포착되고 있었고 소대원들의 희생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과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철혈공조 소속의 게이저와 아키텍트는 당초 적의 화망을 5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다른 이들의 예상과 달리 둘이서 30분을 버티며 시간을 벌어주었고, 똑같이 화망을 견디던 404소대의 UMP45는 동생인 UMP9의 희생으로 생존했다. 그리고 이렇게 벌어준 시간으로 AR소대의 M16A1이 안젤리아의 위치를 파악하고 M4SOPMOD가 스스로 미끼가 되면서 RO635가 안젤리아와 접촉할 수 있었다. 

물론 진정한 의미의 임무 완수는 아니다. 안젤리아는 아직 할 일이 있다면서 메시지를 맡기는 것으로 대신했고, 연합소대원 대부분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면서 사실상 구출이라는 임무는 실패했다. 그러나 초기 스토리와 달리 소속이 각기 다른 인형 사이에 유대감이 형성된 모습을 보여주고 선택과 절제, 분노, 자발적인 희생 등 더욱 로봇이 아닌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레이를 비롯한 고위 니토들도 희생되기 시작하면서 조직과 창조주를 맹신하던 그들의 마음에도 균열이 생겼다. [사진=소녀전선 게임화면 캡쳐]
그레이를 비롯한 고위 니토들도 희생되기 시작하면서 조직과 창조주를 맹신하던 그들의 마음에도 균열이 생겼다. [사진=소녀전선 게임화면 캡쳐]

미치광이 창조주의 손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한 아이들

 패러데우스의 본거지가 등장하면서 대사로만 등장하던 윌리엄 역시 실루엣으로나마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됐다. 그는 독일의 장관인 루돌프 폰 오버슈타인의 아들이자, 작중 핵심 인물인 리코와 페르시카가 소속되어 있던 90Wish 연구팀의 과학자다. 그는 죽어버린 누나를 되살리고 붕괴액에 면역인 개체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고아들을 납치하여 인체와 기계를 결합시키는 금기를 저지르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태어난 개체들이 패러데우스의 간부 ‘니토’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온통 죽어버린 자신의 누나 ‘루니샤’에게 쏠려있다. 윌리엄은 이번 이벤트에서 저녁 식사 중 ‘네메아란’이라고 불리는 고위 니토를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홀로그램으로 투사한 루니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넸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복수와 목적을 끊임없이 읊어대는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 때문에 윌리엄은 ‘루니샤’가 아닌 니토들은 단순한 도구로 취급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 스토리에서 가장 역겨운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장면을 꼽을 것이다. 최소 수천명의 살아있는 사람을 실험대로 사용한 자가 제 누나와 가족을 그리워할 자격이 되는가? [사진=소녀전선 게임화면 캡쳐]
이번 스토리에서 가장 역겨운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장면을 꼽을 것이다. 최소 수천명의 살아있는 사람을 실험대로 사용한 자가 제 누나와 가족을 그리워할 자격이 되는가? [사진=소녀전선 게임화면 캡쳐]

윌리엄과 루니샤는 일종의 사이비 종교의 교주이자 신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태어난 니토들은 창조주인 윌리엄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갈구하고, 고위 개체들을 언니라고 부르면서 친근하게 따르고 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그 안에 있는 것은 피도 눈물도 없는 가혹한 폐쇄적 조직문화와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죽음과 고통이 상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작에서 일부 니토들은 자신들이 애써 외면해왔던 진실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 작중 이름을 가진 니토는 특별한 고위 개체로서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점을 본인의 입 등으로 강조해왔는데, 본 이벤트에서는 이들마저도 스스로가 일회성 버림패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특히 이전 이벤트들부터 주역들과 대립각을 세웠던 니토 ‘몰리도’는 이전의 ‘아버님의 사랑’ 운운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살아남기 위해 루니샤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도박수를 윌리엄에게 던져 살아남았으며 후반부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그레이’를 살려달라고 아버지께 간언해달라는 ‘틸’의 울부짖음을 “나도 그레이도 너도 아버지에겐 일회용품일 뿐이야”는 자조적인 말을 남기면서 맹신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남겼다.

이러한 가운데 안젤리아가 패러데우스에게 붙잡히게 된 원인을 제공했던 RPK-16은 배신이 아닌 이중 간첩으로서 면모가 강조되면서 앞으로의 행적이 기대된다. 특히 패러데우스가 그녀의 기억인 마인드맵을 열어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윌리엄이 선뜻 니토로 개조를 해주고 네메아란이 “판도라 혹은 그녀의 배후는 이미 충분한 성의를 보냈다”고 언급한 점에서 그녀의 배경이 무엇인지 앞으로의 스토리를 기다려본다.

RPK-16(왼쪽)은 이번 스토리에서 대놓고 배신이 아닌 이중 간첩으로서의 암시와 행동이 소개됐다. 그런 그녀의 배후와 앞으로의 행적이 무엇일지는 개발팀만이 알 것이다. [사진=소녀전선 게임화면 캡쳐]
RPK-16(왼쪽)은 이번 스토리에서 대놓고 배신이 아닌 이중 간첩으로서의 암시와 행동이 소개됐다. 그런 그녀의 배후와 앞으로의 행적이 무엇일지는 개발팀만이 알 것이다. [사진=소녀전선 게임화면 캡쳐]

정치셈법 속 길을 개척하기 시작한 지휘관, 그러나 불안한 암시

플레이어, 즉 지휘관은 이번 작전을 통해 직속 상사인 크루거 외 또다른 상사인 훈작사 그리폰과의 본격적인 대립을 시작했다. 그리폰의 “안젤리아 구출을 그만두면 크루거가 석방되도록 하겠다”는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현재’를 위해 싸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후 크루거가 석방되어 포도주를 마시는 장면으로 이벤트 스토리가 마무리되지만, 마지막 구절에서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사실 소녀전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결말이 희망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소녀전선은 개발사인 ‘선본 네트워크 테크놀러지(구 미카팀)’ 만든 세계관 연대기의 작품으로, 이후의 시간을 다루게 되는 ‘소녀전선2: 추방’(2074년)과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2092년)을 통해 등장 인물들의 이후 근황이 소개된 바 있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신 소비에트연방을 중심으로 범유럽을 포함하는 ‘루크사트주의 합중국 연맹(루련)’이 창설되면서 그리폰&크루거는 공식적으로 해체되고, 훈작사 그리폰이 고위직에 앉게되면서 지휘관은 결국 떠돌이 용병단장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또 윌리엄도 건재하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스토리를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플레이어가 작중에서 말했듯 중요한 시기는 바로 현재다. 어떤 일이 스토리에서 일어나든, 플레이어가 겪게 되는 결말은 이전에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으로 인한 것이였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은 다시 돌아볼 수 없고 앞으로의 일에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고 다가올 결말을 기다려보자.

소비자경제신문 권찬욱 기자

지휘관은 이번 스토리에서 또 다른 상사인 훈작사 그리폰과의 본격적인 대립을 시작했다. 그러나 해당 작품 이후 시기와 행적 등이 신작들을 통해 대략적으로 알려진 만큼, 그가 이처럼 평온한 시간을 얻기는 앞으로 매우 힘들 것이다.  사진은 지휘관의 상사이자 협력자인 페르시카(왼쪽), 크루거(중앙), 헬리안투스(오른쪽). [사진=소녀전선 게임화면 캡쳐]
지휘관은 이번 스토리에서 또 다른 상사인 훈작사 그리폰과의 본격적인 대립을 시작했다. 그러나 해당 작품 이후 시기와 행적 등이 신작들을 통해 대략적으로 알려진 만큼, 그가 이처럼 평온한 시간을 얻기는 앞으로 매우 힘들 것이다.  사진은 지휘관의 상사이자 협력자인 페르시카(왼쪽), 크루거(중앙), 헬리안투스(오른쪽). [사진=소녀전선 게임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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