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블리자드)가 사실상 존폐 위기에 빠졌다. 액티비전-블리자드 그룹(액티비전)은 지난 3일 사내 성차별 및 성희롱 논란에 대한 책임과 사태 방조를 이유로 블리자드의 J.알렌 브렉 대표를 경질했다. 전임 대표였던 마이크 모하임의 뒤를 이은 지 3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다. 다른 임원진도 전원 혐의여부 조사로 직무 수행을 할 수 없게 되면서 회사 내부는 패닉에 빠진 상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지난달 22일 액티비전을 성차별, 회사 내부 사정을 제보하는 직원들에 대한 보복, 차별과 폭행 등을 방조한 죄, 임금차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이 중 20여 년간 자행된 임원진의 여성 직원을 향한 부도덕한 행위들은 전세계 게임계와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져줬다. 인격 비하 , 성희롱 발언, 부적절한 신체 접촉은 물론 계급상 위치를 이용한 강간으로 보이는 사례도 등장했다. 심지어 남성 직원에 대한 성희롱과 추행 사례도 여성 직원 못지 않게 많았다.
문제는 블리자드가 그동안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기업의 아이덴티티와 가치로 표방해왔다는 데 있다. 블리자드는 LGBT(동성애자 등 성적 약자를 표방하는 단어)등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나 오버워치 등 자사의 게임의 캐릭터 성격으로 삽입해 약자를 존중한다는 자세를 취해왔는데 이번 사건으로 무너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등 현재에도 게임업계에서 칭송받고 있는 블리자드의 원년 개발자들이 성차별을 자행하고 은폐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일부 게임 이용자들은 블리자드의 이미지가 이미 바닥이었다고 비난했다. 블리자드는 지난 2019년부터 홍콩 시위를 공개 지지한 하스스톤 프로게이머 블리츠청의 징계와 이로 인한 보이콧, 미국 연방의회의 경고, 일방적인 히어로즈 오브 스톰 프로 리그(HGC) 폐지 논란,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리마스터)의 완성도 및 퀄리티 논란 등 수많은 사건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경영 문제가 아닌 인권 문제로 그 심각성이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현재 액티비전은 회사의 이미지 실추와 책임을 놓고 전면 파업에 나선 직원 2600여명과 노조파괴 전문 로펌인 윌머헤일(WilmerHale)을 고용한 임원진 간의 장기전이 예고되고 있다. 회사 조직 내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모두 회사의 주인이며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다. 아무리 잘 만든 게임으로 칭송을 받은 블리자드라도 20여 년간 성차별을 방조해온 대가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경제신문 권찬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