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급성심근경색 입원한 뒤 6년 5개월 투병
27년간 삼성 300배 키워…근복적 변화와 혁신 강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사진=연합뉴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재계를 대표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고인은 2014년 5월 10일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6년 5개월 동안 치료를 받아왔다. 이건희 회장이 사망함에 따라서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 총수로 나서게 됐다.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은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공부했다. 기업 경영과 거리가 멀었던 이건희 회장은 1970년대 중반 그룹 후계자로 선택된 뒤 부친이 세상을 떠난 1987년 11월부터 삼성그룹 회장으로 일했다. 고인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으로 변화와 혁신을 주도했다.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1987년 9,000억원대였으나 2014년 318조 7,000억원대로 348배 늘었다.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은 한국 산업계에서 변화와 혁신을 상징하는 사례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 경영진을 모아 놓고 “불량은 암입니다. 양 위주의 경영을 버리고 질 위주로 갑니다.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꿔야 살아남습니다”고 강조했다.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로 우뚝 선 삼성그룹은 고인이 경영하는 동안 매출은 40배 이상 늘었고 시가총액은 348배 급증했다.  

성공 뒤에는 실패도 있었다. 전자와 반도체 분야에서 크게 성공했지만 자동차와 콘텐츠 분야에선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삼성그룹은 혁신과 기술을 앞세워 세계 일류 그룹으로 거듭나는 동안 경영권 편법 승계와 불법 비자금 조성으로 비판도 받았다. 경영권 상속을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발행해 아들의 경영권 승계 발판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2000년 알려지면서 도덕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김용철 변호사 폭로로 시작한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금품 로비 의혹도 마찬가지다. 특별검사 조사 끝에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고인은 특별사면된 뒤 2010년 경영에 복귀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른다. 삼성전자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를 간소하게 치른다고 밝혔다. 유족은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큰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작은 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한편 고인이 별세하면서 그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중이 쏠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 부회장은 고인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부터 대외 노출 횟수를 늘리며 경영의 폭을 조금씩 넓혀왔다.

소비자경제신문 오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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