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위 “21일 분류작업 거부 돌입…대책 마련하면 언제든 철회”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전국 동시 택배차량 추모행사. 사진 연합뉴스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전국 동시 택배차량 추모행사. 사진 연합뉴스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택배 기사들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과중한 업무 부담을 호소하며 택배 분류작업을 거부하기로 했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17일 서울 정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국 4,000여 택배 기사들이 오는 21일부터 택배 분류작업 거부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자들이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배송을 해야만 하는 장시간 노동의 핵심 이유”라며 “하루 13∼16시간 노동의 절반을 분류작업에 매달리면서도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앞서 대책위는 지난 14∼16일 택배기사들을 대상으로 분류작업 전면 거부를 위한 총투표를 진행했다. 투표에는 민주노총 택배연대노조 조합원을 포함한 4,358명이 참가해 4,160명(95.5%)이 찬성했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일 택배 물량이 급증하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분류작업에 필요한 인력을 한시적으로 충원할 것을 택배업계에 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14일 택배 기사들의 과로 문제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당부했다.

대책위는 “택배사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국민 모두가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우려하며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요구하고 있는데 택배사들은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면서 “택배사가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한다면 언제든지 분류작업 전면 거부 방침을 철회하고 대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CJ대한통운은 소비자경제와의 통화에서 “현재 물류센터 등에서 이뤄지는 택배분류 작업은 자동화설비를 갖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적으로 노동자에게 모든 택배분류 작업이 전가되고 있지는 않다”면서 “택배분류 자동화시스템에 의한 작업량에 비해 택배노동자의 작업이 많은 지는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택배분류 업무에 인력을 충원할 계획은 없다. 하지만 만약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해 추석 물류 배송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7월 호남발 파업 전국으로 확산

택배업계의 ‘분류 인력 충원’과 관련한 파업 조짐은 지난 7월부터 시작됐다. 전북 익산의 전국택배노조 소속 기사들이 택배 분류 인력을 충원해 달라며 시작한 파업이 광주와 영남 등 전국으로 퍼졌기 때문이다.

7월 전국택배노동조합 호남지부 익산지회는 택배기사가 물건 상하차에 분류작업까지 도맡아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가 크다며 파업에 들어갔다. 익산에서 시작된 파업은 군산, 정읍 등 인근 지역으로 확산됐고 이달 7일에는 광주의 택배기사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민주노총 강원지부는 14일 성명을 통해 “올해만 택배 노동자 7명이 과로로 숨졌다”며 “과중 노동의 실태가 드러났음에도 택배사들은 추석 특송기간에 인력 추가 없이 노동자들을 현장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추석 물량이 본격적으로 몰리는 이날까지도 권고안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권고안은 최소한의 노동자 보호조치며 사업장은 분류 작업에 추가 인원을 즉각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호남지부 북광주·남광주지회도 “회사가 해야할 분류 업무를 택배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면서 ”택배 노동자들이 배송과 집화만 한다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진 장시간 노동을 그나마 단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간 71.3시간에 월 234만원 벌어

최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공개한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택배노동자 821명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으로 나타났다. 택배 노동자들은 월평균 458만 7000원을 벌지만 대리점에 내는 각종 수수료와 차량 보험료, 차량 월 할부 비용 등을 지출해야 한다. 이 비용을 다 빼고 남는 돈은 234만 6000원이었다. 아울러 택배노동자들은 업무 중 43%를 물량 분류작업에 할애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진경호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에 따른 물량증가 비율이 이미 30% 수준에 육박했으며 추석특수엔 50% 이상을 내다보고 있다”며 “분류 인원을 즉각 투입하는 것만이 유일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6월 국회에 발의된 ‘생활물류발전법’이 현재 계류 중에 있다. 이 법은 택배노동자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발의된 것으로 산재보험 가입 의무화, 노동시간 합리화, 휴일 규정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소비자경제신문 노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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