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건설 기부금 수십만달러 횡령
과거 ‘트럼프의 오른팔’ …호화요트서 체포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 관련 인물이 사기 혐의로 체포돼 미 정국에 커다란 파장이 예상된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중 대표공약인 ‘미-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위한 모금과정에서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브 배넌이 거액을 빼돌렸다는 혐의가 제기됐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체포됐다.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는 뉴욕 남부지방검찰청이 배넌과 다른 남성 3명을 온라인 모금 사기 혐의 등으로 붙잡아 기소했다고 밝혔다.
배넌 등은 지난 2018년 12월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에 ‘우리는 장벽을 세운다’(We Build The Wall)라는 이름의 페이지를 생성해 온라인 크라우드펀딩 모금 활동을 벌인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들은 미-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지지하는 기부자들로부터 총 2천500만달러(약 297억원)를 모금했다. “기부한 돈은 100% 장벽 건설에 사용될 것”이라는 약속과 달리, 이 중 수십만 달러를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배넌과 함께 체포된 공범은 이라크전에서 두 다리와 한 팔을 잃은 공군 예비역 브라이언 콜파지(38), 벤처캐피탈리스트인 앤드루 바돌라토(56), 티모시 셰이(49) 등 3명이다.
이번 사건의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배넌으로 기부금을 빼돌린다는 ‘작전 설계’를 맡았다. 모금페이지 개설은 콜파지가 담당했다. 콜파지는 “단돈 1센트도 챙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자택 리노베이션, 보트, 고급 SUV, 골프카트, 보석 구입 등 사적인 용도로 기부금 중 35만달러 이상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부금 횡령과정에는 배넌이 만든 비영리단체가 동원됐다. 이 단체를 통해 배넌은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을 챙겼다. 검찰은 배넌이 이중 일부를 수십만달러의 개인지출을 충당하는 데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부금 불법유출 은폐를 위해 배넌의 비영리단체는 물론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송장 등을 위조했다. 오드리 스트로스 뉴욕 남부지검장 대행은 “배넌 일당이 국경장벽 건설에 대한 기부자들의 관심을 이용했다”며 횡령한 돈으로 ‘호화로운 사생활’을 누렸다고 말했다.
사법당국은 배넌이 체포되던 날 오전 코네티컷주 해안의 3천500만달러(약 416억원)짜리 호화 요트에 있었다고 NYT에 밝혔다. 이 요트는 미국으로 도피한 중국의 부동산 재벌 궈원구이(郭文貴) 소유로, 지난 2018년 배넌은 궈원구이의 컨설턴트로 고용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출정을 며칠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배넌의 체포 소식은 미 대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관련 모금행사에서 연설을 했다. 또한 콜파지가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전 캔자스주 국무장관 크리스 코박을 모금단체 이사로 등재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배넌과의 관계에 대해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와 상대하지 않았다”며 거리를 두는 뉘앙스를 남겼다.
배넌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선거를 승리로 이끈 트럼프 정권의 ‘설계자’였다. 미 극우성향 매체 <브레이트바트>의 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거침없는 발언과 공격적인 언행으로 국수주의적 성향을 여과없이 드러내왔다.
정권 출범 후 배넌은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맡아 무슬림 등 일부 국가 출신들의 미 입국금지, 파리 기후협약 탈퇴 등 공약 이행을 주도했다. 그러나 다른 참모들과의 잦은 충돌과 돌발발언 등 트럼프 대통령의 눈 밖에 난 그는 2017년 8월 백악관에서 퇴출됐다. 당시 배넌은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해법은 없다”고 발언해 문제가 됐었다. 이후 배넌은 세계 곳곳을 순회하면서 극우 포퓰리즘 운동을 지원했다. 또한 라디오 방송에서 트럼프 대통령 탄핵 방어에 나선 바 있다.
소비자경제신문 김세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