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매매단지. 연합뉴스
중고차매매단지. 연합뉴스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라. 만약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제외된다면 전국중고차 매매업종에 종사하는 30만명은 시민단체와 연대, 대기업이 중고차시장에서 철수할 때까지 무기한 투쟁에 들어갈 것을 천명한다.”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가 22일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규탄하며 중소벤처기업부에 ‘중고차 판매업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요청했다. 또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완성차업체가 ‘진출’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힘에 따라 대기업의 기망적 행태도 비판했다. 

대기업 ‘진출’ 표명…중기부 지정 심의 중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2일 동반성장위원회 의견을 토대로 ‘중고차 판매업’ 생계형적합업종심의위원회를 개최했고 오는 10월까지 결론을 짓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중고차 판매업 진입을 5년간 더 막을지, 아니면 허용할지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앞서 중기부는 2일 중고차 매매업 관련 업체들과 첫 간담회를 개최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중고차, 완성차, 수입차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날 완성차업체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중고차시장 ‘진출 의향’을 공식적으로 밝힘에 따라, 매매업계는 ‘생존권 위협’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전국매매연합회에 따르면 2019년 2월 소상공인단체로서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했으나 1년 5개월의 시간이 지난 현재에도 중기부 심의단계에서 표류 중이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부터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신규 진출과 확장 등이 제한돼왔고 기존에 SK엔카를 운영하던 SK그룹은 사업을 매각하고 떠났다.

문제는 완성차 제조업체의 태도 변화였다. 지난해 중기부와 동반성장위원회의 심의 과정 중 완성차제조업체는 “중고차시장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이번 간담회에서 완성차업체는 중고차 시장을 진출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매매업계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인해 비대면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매매업은 거래대수 감소로 경영적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면서 “이 상황에서 대기업이 진출한다면 영세한 매매업체는 도산은 물론 생존권을 위협받게 된다”고 강력 반발했다.

중고차업계 ‘불신’ 여전히 많아

중기부는 기존 매매업체들의 ‘생존권 위협’ 반발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 보호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중고차 관련 불만 상담은 2018년부터 이달 10일까지 2만 783건이다. 침수차를 일반차로 둔갑해 파는 등의 사기부터 소비자를 감금, 협박하는 사례까지 종종 나오곤 한다.

지난 9일 중고차 딜러 44명이 인터넷에 허위매물을 올려 고객을 유인한 뒤 다른 차량을 시세보다 비싸게 팔아 35명에게서 총 6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인천서부경찰서에 입건됐다. 올해 4월엔 당초 인터넷에 올린 가격의 6배를 요구하며 폭언하고 차에 감금까지 한 20대 딜러가 구속됐다.

중고차업계 관계자는 “중고차 관련 소비자 상담은 성능조작 등 불법매매업체의 사기와 관련된 것이 많다”며 “업계 차원에서 허위·미끼매물 없애기 등 자정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오랫동안 만연해온 중고차업계에 대한 불신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고차매매단지. 연합뉴스
중고차매매단지. 연합뉴스

“영세업체 생존권 위협” vs “중고차시장 정화”

지난해 중고차 거래는 224만대로 신차보다 1.3배가 많다. 1대당 가격을 1000만원으로 하면 22조원이 넘는 거대 시장이다. 그러나 중고차시장은 규모는 크지만 판매자와 소비자간 정보 비대칭성으로 질 낮은 물건이 많이 유통되는 ‘레몬마켓’의 대표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현재 중고차매매업 관련 업체 수는 6000여 개에 달한다.

중고차시장 자체 정화는 더디고 그동안 국회에서도 시장 정화를 위해 나섰지만 업계 반발 등으로 성과는 크지 않았다. 중고차 매매 시 발급되는 성능·상태점검기록부와 실제 상태가 다르면 소비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는 ‘중고차 성능·상태점검 책임보험’ 의무가입 제도가 작년에 도입됐지만 제도 안착은 아직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영세업체 위주로 운영되는 중고차 시장에 완성차업체 등 대기업이 진출하면 시장이 정화될까?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면 중고차 시장 구조가 바뀌며 소비자 불만을 해소하고 신뢰를 높일 계기가 될까? 아니면 영세업체들만 사라지고 대량 실업사태만 일어날 것인가?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중고차시장은 22조원대 시장으로 작은 시장이 아니어서 생계형적합업종 지정이 어렵다는 동반위의 의견을 근간으로 완성차업계도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적합업종 지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완성차업체가 중고차시장에 진출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완성차업체가 가지고 있는 고도의 프로세스와 네트워크를 중고차시장과 접목한다면 시장 정화는 물론 정비, 진단, AS까지 전 과정의 첨단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매매연합회 관계자는 “사실 중고차업계에 만연한 허위·미끼매물이나 협박 및 사기는 정식으로 등록된 업체가 아니라 일부 불법매매업체의 사례다. 일부 불법사례로 전 업계가 불신의 멍에를 지는 것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면서 “현재 연합회에 소속된 6000여 업체와 30만명의 매매업자는 정당한 매매행위를 하는 것은 물론 자정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완성차업체의 중고차시장 진출은 제조업을 하는 업체가 정비업에서부터 매매업, 폐차업 등 자동차 연관산업을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대기업의 진출은 우월한 지위와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양질의 중고차를 매입하고 직접 관리·통제함으로써 불공정거래와 독과점 시장이 형성돼 자동차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가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소비자경제신문 노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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