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 예비판결 후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메디톡스는 ‘부활’의 지렛대를 마련한 반면 대웅제약은 미국시장에서의 ‘퇴출’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이번 판결의 최대 수혜자는 메디톡스가 아니라 미국 내 보톡스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엘러간’이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2위를 노리던 대웅제약이 퇴출 위기에 몰리자 엘러간의 독점이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대웅제약 “미국 산업보호주의 판결”
대웅제약은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예비판결은 ‘미국의 자국산업보호를 목적으로 한 정책적 판단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메디톡스와 엘러간이 2019년 대웅제약과 에볼루스를 미국 ITC에 제소해 시작된 이 사건은 이번에 ITC 행정판사가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라며 10년의 수입 금지명령을 권고했다.
대웅제약은 우선, ‘ITC’ 기관의 위상과 역할의 한계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자국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ITC의 절차는 연방지방법원 소송에 비해 평균적으로 두 배가 빨리 진행된다. 이러한 빠른 진행을 위해 일반 형사나 민사의 까다로운 절차법, 증거법이 ITC에서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행정판사가 이해하는 사실관계 만으로는 배상책임이나 형사적 형벌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ITC는 국익과 미국 내 산업 피해를 따져 수입금지 여부만을 판단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대웅제약은 ITC로부터 공식적인 결정문을 받는 대로 이를 검토한 후 이의 절차를 진행해 나갈 방침이다. 대웅제약 측은 “미국 보톡스 시장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허가를 획득한 국내 업체는 우리밖에 없다”면서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미국 내 현지파트너사인 에볼루스사와 협력해 미국 시장을 선점하는 데 더욱 주력할 것이다”고 밝혔다.
메디톡스 2022년 미국시장 진출 ‘목표’
메디톡스는 이번 ITC의 예비판결을 통해 ‘재도약’의 시동을 걸고 있다. 메디톡스는 지난달 25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메디톡신’ 국내 품목허가 취소를 당한 상황에서 미국시장으로의 진출도 막히면 국내외 입지 모두 치명타를 입게 된다.
메디톡스는 이번 판결로 미국 시장 진출이 가속화되고 국내에서 진행되는 메디톡스-대웅제약 간 ‘영업비밀 침해금지 청구소송’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메디톡스 측은 “ITC는 전체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을 포함한 전문가 검증과 광범위한 증거 개시 절차 통해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비밀 도용했다’고 결론을 내렸다”면서 “수년간 대웅제약이 거짓 주장을 해왔음이 입증된 것이다”고 말했다. 메디톡스는 “ITC에 제출된 증거자료와 판결 토대로 국내 민·형사도 신속히 진행할 것이다”고 자신감을 드러냈고 “대웅제약은 일관적으로 ‘ITC’ 기관의 역할에 대해 축소하는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데 이 또한 명백한 거짓으로 드러날 것이다”고 강조했다.
메디톡스는 미국 보톡스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엘러간은 보툴리눔 톡신을 처음 제품화한 기업으로 미국 시장의 70% 이상 차지하고 있다. 메디톡스가 엘러간과 파트너십을 맺은 것은 지난 2013년 액상형 보톡스를 기술 수출하면서다. 이 제품은 아직 임상시험 중인데 미 FDA 허가가 아직 안났다. 메디톡스는 또 다른 보톡스 제제 ‘이노톡스’의 임상 3상을 미국에서 엘러간과 진행하고 있다. 오는 2022년 미국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상처만 남은 소송’…협력의 길 찾아야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균주 도용’ 관련 ITC의 최종결정은 11월에 결정난다. 미국 ITC의 예비판결은 번복된 전례가 없기 때문에 메디톡스는 승소를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메디톡스는 미국으로부터 품목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어 현재 수출길은 막혀있다. 그나마 미국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것은 대웅제약인데 만약 최종 판결에서도 패할 경우 미국시장 내 10년 동안 판매가 금지되기 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동안 국내외 소송을 치르면서 부담한 경제적·심리적 피해를 감안하면, 이번 판결은 결국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모두에게 ‘상처만 남은 소송’이라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일부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끼리 싸워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에 치중해서는 해외시장 진출이나 브랜드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면서 “공명하고 정당한 경쟁을 통한 협력이야말로 K-바이오의 글로벌 성공을 위한 대안이 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제약업체가 서류 조작, 기밀 유출, 법정공방 등을 일삼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면서 “식약처는 허가·관리에 철저를 기하고 법원은 반성을 모르는 기업을 엄벌해 국민의 건강과 안전할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고 밝혔다.
소비자경제신문 노정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