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한 시장대응, 능력 과신은 실패 불러

일본 전자 기업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소니의 CEO에는 전자 부문의 엔지니어링 경험이 전혀 없는 기자 출신의 영국인이 취임해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또 포춘지가 선정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 부문에서 늘 톱 랭커를 유지하던 칼리 피오리나도 이사회에 의해 퇴출당했고. 세계적인 보험회사 AIG의 회장 그린버그도 스캔들에 휘말려 사임하는 등 세계적인 스타 CEO들이 줄줄이 낙마하고 있다. CNN머니는 미국의 재취업 전문업체인 챌린저그레이앤의 크리스마스의 보고서를 인용, 지난 2월에만 103개 기업의 CEO가 교체돼 2001년 이후 가장 많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잇단 스타 CEO들의 잇단 몰락에는 일련의 공통점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소니의 경우, 시장의 변화에 늑장 대응해 위기상황을 자초한 데 대해 경영진을 교체함으로써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소니는 브라운관 TV를 대체할 솔루션으로 자리잡은 PDP와 LCD 분야 모두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경쟁 업체들은 PDP와 LCD를 바탕으로 TV 시장 전체의 구도를 바꾸어 나가기 시작해 TV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구축하고 있었던 소니의 입지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전세계 PDP TV 시장에서 소니는 지난해 4분기 4위로 처지고 말았다.
일본 내수 시장을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03년만 해도 소니의 PDP TV 시장 점유율이 21.3%, 경쟁사인 마쯔시타의 시장 점유율은 22.7% 였으나, 2004년 4분기를 보면 마쯔시타의 점유율이 36.9%이고 소니의 점유율은 19.2%에 그치고 있다. LCD TV에서도 Sharp가 일본과 미국에서 현격한 격차를 보이면서 1위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급신장 하고 있는 DVD-Recorder 분야도 마찬가지.
경쟁사인 마쯔시타는 최적화 된 DVD-Recorder를 개발하기 위해 제품 플랫폼에 투자한 결과, 2003년 3월 경쟁사보다 3만엔 이나 싼 6만엔에 DVD-Recorder를 출시했다. 시장은 급속도로 커져 나갔고 마쯔시타는 확고한 Top 1의 지위를 확보했다소니도 NEC 등 다른 업체들의 Chip을 아웃소싱해 상품을 출시하면서 2004년 일본 내수 시장 점유율이 4위에서 2위로 격상되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소니가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장 감각을 상실한 지나친 선견은 심각한 자원 배분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소니의 사례가 입증하고 있다.
‘업적주의’ 경계대상 1호
CEO들이 취임과 함께 빠지기 쉬운 유혹중 하나는 무언가 큰 업적을 남기고자 하는 욕심이다.
세인의 관심을 많이 받는 스타 CEO일수록 이러한 유혹에 더욱 빠지기 쉬운데 전문가들의 설명에 의하면 이들에게는 자신의 명성을 이어가야 한다는 압박이 더 크기 때문.
HP의 전 CEO 칼리 피오리나가 승부수로 던진 컴팩과의 합병은 이러한 압박이 어떻게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칼리 피오리나는 재임하는 동안 83개에 이르던 HP의 사업부문을 단 몇 개로 줄이는 구조조정에 성공했지만 창업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컴팩과의 합병을 강행했다.
그러나, 기대 수익이 클수록 위험도 큰 것은 당연하고 이 과정에서 내부 조직까지 무너지면 승부수가 오히려 독이 된다. HP는 설립 당시부터 경영진과 종업원 간의 격의 없는 대화가 강점이었다. HP의 설립자인 휴렛과 팩커드는 반팔차림에 사내를 어슬렁거리며 직원들과 식사하고 대화하기를 즐겼다. 이러한 조직 문화 속에서 HP는 혁신적 제품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피오리나는 딱딱한 회의와 사업계획 발표를 더 중요시해 직원들이 그녀를 면담하려면 수주 전부터 날짜와 시간을 잡아야 할 정도였다. 직원들의 지지를 잃은 그녀는 컴팩과의 합병 효과를 따지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일부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조직개편이 능사인가
새로운 CEO는 흔히 조직을 개편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이동하고 자기 스타일의 경영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다. 일련의 개혁 작업을 통해 부진에 허덕이던 기업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경우도 많이 있다.
루거스너가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지역별 조직으로 되어 있던 IBM의 조직 구조를 3년 여의 개편작업을 통해 고객별 조직 구조로 재편하는 작업을 진두지휘 했었다. 이를 통해 관료화 된 IBM을 고객 지향적 조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일본 전자 기업 내에서 가장 높은 시가 총액을 자랑하는 캐논의 미타라이 후지오 사장도 취임과 함께 사업부제를 폐지하는 등의 조직 개편을 통해 캐논을 바꾸어 놓았다.
최근, 소니와 달리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마쯔시타의 나까무라 사장도 자회사까지 포괄하는 조직 개편을 통해 사업의 중복을 없애고 조직의 초점을 분명히 하였다.
하지만 소니의 이데이 사장은 너무 많은 조직개편을 단행해 개별 조직들은 자기에게 떨어진 임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데 급급한 처지로 전락해 버렸다.
실제로, 작년 소니의 영업 성과를 살펴보면 전략적 실수 보다는 조직이 기능별로 분화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해서 발생하는 손실이 큰 경우도 발생했다.
고객의 객관적 시각에서
최근 CEO 교체를 통해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일본 기업들이 외국인 CEO를 등용시키거나, 해외 시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을 새로운 CEO로 임명한다는 점이다.
소니는 미국 사업 담당이었던 스트링거를 후임 CEO로 임명했다. 캐논의 미타라이 사장은 입사 5년 만에 미국으로 발령, 그 후 23년간을 미국에서만 근무했다. 도시바도 최근 미국과 유럽 근무경험이 풍부한 니시다 아츠토시 PC 사업 부문장을 새로운 CEO로 선임했다.
이처럼 자국 중심의 경영 풍토의 일본에서 외국인 CEO나 해외 시장 경험이 풍부한 CEO 등용에 대해 전문가들은 닛산을 회생시킨 카를로스 곤 효과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한다. 곤이 펼친 일련의 개혁과정을 통해 과거의 유산과 선을 그으며 문제점이 해결되는 것을 각 기업들이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외국인 CEO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기업들은 ‘외부인’과 ‘고객’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해외통들을 CEO로 임명하고 있다. 미국 경험이 풍부한 미타라이 사장을 임명한 캐논은 사업체질을 수익성 중심으로 개편해 마쯔시타, 소니를 제치고 일본 전자 기업 중 가장 높은 시가 총액을 나타내고 있다. 미타라이 사장은 창업 이념 등 캐논의 전통은 존중하되, 오랜 세월 관행으로 굳어진 악습들을 수익성과 주주관점에서 개혁해 캐논을 새롭게 변모시켰다.
CEO가 계속해서 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고객과 시장, 외부인의 관점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압축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결국, 스타 CEO의 몰락 과정의 분석을 통해, 시장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이에 맞는 전략을 선택하며, 조직 구조를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종진 기자
ljj@ceo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