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카드 이용하는 신종사기수법 등장
[소비자경제=윤동 기자] 대출 해주겠다고 접근해 사기를 치는 새로운 수법이 등장해서 궁박한 소비자들을 울게 만드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수법은 개인정보를 빼가는 것은 기본이고 사기꾼이 구매한 휴대폰 대금도 피해자가 물어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 대출해 준다더니, 체크카드 만들게 해
경기 의정부에 사는 직장인 김 모(남, 45세)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휴대폰으로 문자 한통을 받았다. ‘제일금융, 자체적 500만원 승인되셨습니다.’라는 문자였다.

<김 모 씨가 받은 대출 스팸문자>
김 씨는 연말에 쓸 돈을 급하게 구하던 차였으나 평소 신용사정이 좋지 않아 제2, 제3 금융권에서도 대출이 거절된 상태였다. 궁박한 처지라 김 씨는 바로 휴대폰 문자가 온 ‘제일금융’이란 곳으로 전화를 했다.
제일금융의 담당자는 대출승인 확인에 필요하다며 신분증 및 거래 은행 통장 사본을 팩스로 보낼 것을 요구해 별 의심 없이 신분증과 통장 사본을 팩스로 보냈다. 얼마 뒤에 지금 거래하고 있는 은행으로는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연락해 왔다. 자신들의 주거래은행인 국민은행에 새로운 통장을 만들어야 거기에 대출금을 넣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사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통장과 함께 체크카드도 만들어서 그 정보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김 씨는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것저것 따지다가 어렵게 나타난 대출해준다는 금융사가 마음을 바꿀 것 같아서 제대로 설명을 요구하지도 못했다.
대출담당자도 “어차피 새로 만드는 통장이라 아무런 잔고가 없는 데 체크카드로 돈을 인출할 수도 없고 긁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잘못 되겠나?”고 말하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체크카드를 만들고 카드 번호와 비밀번호까지 알려줬다. 대출담당자는 “그렇게 걱정되면 내일 비밀번호를 바로 바꾸라”고 말하는 친절함도 보였다
다음 날 역시 이상한 느낌이 든 김 씨는 서둘러 체크카드를 분실신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대출 담당자가 사기꾼으로 돌변한 것이다.
하루 사이 사기꾼은 김 씨가 만든 체크카드를 이용해 KT 폰스토어의 ‘신용카드 본인인증’으로 김 씨의 명의로 고가의 휴대폰을 구매해버린 것이다. 체크카드로는 휴대폰 대금이 결제가 되지 않지만 사기꾼은 휴대폰 대금도 김 씨가 팩스로 보내준 거래은행 계좌로 청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자신의 체크카드로 본인인증 됐고 대금 청구도 자신의 통장으로 청구됐으니, 김 씨는 꼼짝없이 한 번도 써보지도 못한 고가의 휴대폰의 기기값을 물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김 씨는 “하루만에도 (사기꾼들이) 이렇게 했는데 만약 며칠 놔뒀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니 앞이 깜깜하다”며 “이쪽으로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모두 급한 처지라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 그렇지 않아도 형편이 어려워 대출을 받으려 했다가 도리어 고가의 휴대폰 기기값마저 물어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한탄했다.
◆ 이런 사기, 소비자의 대처방안은?
대출해주겠다는 전화나 문자를 받은 즉시 접촉하지 말고 미리 인터넷이나 다른 정보망으로 금융사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요즘은 대출 사기 전화나 문자가 대부분 대형 금융사의 이름을 내걸고 있으므로 이도 완벽하지는 않다.
이럴 땐 그쪽 금융사로 방문해서 대출에 대한 상담을 받겠다고 하면 대부분의 대출 사기꾼들은 꽁무니를 빼게 된다. 바쁘더라도 대출 받을 때는 직접 대면해서 진행하는 것이 대출해줄 금융사가 사기꾼이던 아니던 간에 좋다.
전화나 문자로 금융사가 일방적으로 개인정보를 알려달라는 것도 경계해봐야 한다. 특히 이번처럼 금융사측에서 통장을 만들거나 카드를 만들어 번호를 알려달라거나 하면 십중팔구는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보통의 휴대폰 명의도용 피해를 입었을 경우 해당금융사에 피해신고를 하면 조사를 통해 피해자의 잘못이 없을 경우 피해금액을 청구당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체크카드 사기는 피해자가 사기꾼에게 카드번호나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등 대리인의 성격을 띨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서 제외된다.
대한법률공단 관계자는 “이렇게 본인이 카드 번호나 비밀 번호를 알려줘 체크카드로 본인인증 된 경우가 있다. 이때엔 물건을 구매·결제한 사람이 사기꾼이라고 할지라도 명의자 본인의 대리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판단할 소지가 많아 재판에 가더라도 질 확률이 매우 높다”며 “개인정보, 특히 체크카드 등 카드 정보는 절대 남에게 알려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체크카드 본인인증 사기 피해, 소비자 개인의 조심성에만 맡겨야 하나?
이런 체크카드의 특성을 이용한 휴대폰 사기 피해가 증가하고 있지만 소비자 개인이 조심하는 것 외에 대책이 없어서 통신사가 소비자 피해를 구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T 폰스토어 등 인터넷으로 휴대폰을 구매할 때 본인인증 방법은 크게 공인인증서 인증, 휴대폰 인증, 신용카드 인증의 세 가지다. 이 중에 공인인증서는 보안카드나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면 인증할 수 없고 휴대폰 인증도 본인 명의의 휴대폰에 온 문자를 다시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사기꾼들이 접근하기 힘들다.
신용카드 인증 역시 남에게 함부로 신용카드 번호나 비밀번호를 노출시키지 않기 때문에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신용카드보다 보안 중요도가 낮게 평가되는 체크카드는 경우가 다르다.
통장에 잔고가 없으면 인출도 되지 않고 긇을 수도 없는 체크카드의 특성을 이용해서 ‘알려줘도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대출을 받으려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궁박한 처지에 있기 마련이라 대출신청을 취소할까봐 따지거나 설명을 요구하지 못하는 심리적인 요인도 이용한 수법이다.
유사한 사건을 많이 알고 있는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궁박한 처지의 소비자들이 사기꾼에게 쉽게 속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KT 등 통신사들은 본인인증 단계에서 체크카드는 인증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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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제10호 주간 소비자경제 종헙 면에 실린 기사 내용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