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과 당론이 충돌할 때 국회의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헌법은 46조 2항에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은 1999년 10월 21일 당론을 따르지 않았던 국회의원을 쫓아냈다. 통합민주당 출신이었던 이수인, 이미경 의원은 한나라당 당론과 다르게 동티모르 파병에 찬성했었다. 이재오, 권오을 의원이 소신파 제명에 반대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한나라당 이부영 원내총무는 “당론을 위반한 국회의원 제명은 합리적인 당기강 확립책이다”고 강조했다. 헌법 위에 당론이 있었다.

소신파는 징계를 영광의 훈장으로 생각했다. 정치학자로서 전교조 합법화에도 힘썼던 고(故) 이수인 의원은 “당원 자격보다 국회의원 자격이 앞서고 당과 국회의원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이 앞선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는 2002년 3월 소신에 따라 투표할 권리를 법률로 보장했다. 국회법 114조의2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규정했다.

헌법과 국회법이 국회의원 양심을 보호하지만 정당과 정치세력은 당론을 앞세우기 마련이다.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김영우 의원은 2016년 9월 29일 국정감사를 거부하기로 한 당론을 어겼다. “국방엔 여야가 없다”던 김영우 국방위원장은 소신대로 국정감사 개의를 선언했다. 새누리당 조원진 최고위원은 “합당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며 분통을 터트렸고 친박계 핵심 김태흠 의원은 “소신도 중요하지만 자기 소신을 좇으려면 탈당해서 무소속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눈에 비친 새누리당과 친박계는 의회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는 정치세력에 불과했다. 김영우 의원을 두둔했던 금태섭 대변인은 4년 뒤 김영우 신세가 되었다.

검찰개혁에 앞장섰던 금태섭에게 검찰개혁은 독이 되었다. 금 의원은 2016년부터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설치하기보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제한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론이었던 공수처 설치안에 찬성하지 않았다. 소신과 당론 사이에서 고민했던 그는 지난해 12월 공수처 법안 표결에서 기권했다. 표결에 앞서 이인영 원내대표에게 “법안이 부결될 위험이 있으면 찬성하고 통과가 확실시되면 기권하겠다”는 뜻을 밝혔었다. 그러나 민주당 윤리심판원은 지난달 25일 당론을 어겼다는 이유로 금태섭 의원을 징계했다. 서슬이 퍼렇던 새누리당 친박계조차 포기했던 국회의원의 소신에 대한 징계였다.

총선에서 이긴 민주당은 오만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기보다 감정에 따라 행동한 뒤 합리화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소신 있는 국회의원 금태섭은 지난해 9월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조국 후보자에게 “젊은 세대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조국 지지자에게서 비난 문자와 욕설 전화에 시달렸다. 만약 소신을 접고 조국 후보에게 쓴소리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비난에 시달리지 않을 테고 무난히 공천을 받아서 재선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소신을 지키려면 무소속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손가락질을 받지도 않았겠지. 김영우를 두둔하던 금태섭은 김영우 신세가 되었다.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생각하지 못한다. 민주화 세력을 자처한 민주당 기득권 세력도 마찬가지다. 이해찬 대표는 2일 기자간담회에서 “강제당론은 반드시 관철해야 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의 양심과 소신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김해영 최고위원과 조응천 의원이 쓴소리하자 이해찬 대표는 4일 비공개 최고위원회회의에서 함구령까지 내렸다고 알려졌다. 통합당은 모처럼 민주당을 비웃었다. 통합당 김병민 비대위원은 김영우 의원 사건을 언급하며 “그때 민주당이 새누리당 행동을 보고 어떻게 논평했는지 돌아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심을 징계한 민주당의 아전인수는 통합당에서 놀림거리였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최고위원이 5일 최고위원회에서 금태섭 전 의원 징계와 관련하여 "헌법과 국회법을 침해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고 말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최고위원이 5일 최고위원회에서 금태섭 전 의원 징계와 관련하여 "헌법과 국회법을 침해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고 말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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