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우리銀 “라임 투자자에 가입액 50%이상 선지급”
당국의 키코 배상권고안은 ‘NO'…배임 처벌 우려 때문

금융투자사들의 자발적 보상에 이어 은행권의 선보상 움직임도 본격 가시화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키코 분쟁조정안은 불수용 결정이 이어지면서 피해 기업들의 손실 복구는 여전히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은행들은 지난 5일 이사회를 열고 라임 사태에 대해 선보상을 결정했다. 하지만 키코 사태와 관련해선 배상 권고안을 불수용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성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지난해 말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불완전판매 배상 결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키코 상품 분쟁조정위원회는 판매 은행들이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연합뉴스​
​정성웅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지난해 말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불완전판매 배상 결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키코 상품 분쟁조정위원회는 판매 은행들이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연합뉴스​

배임 이슈 해소 …라임피해자 절반 선지급

신한은행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라임자산운용의 크레디트 인슈어드 1호 펀드 보상안을 논의한 끝에 투자자들에게 가입금액의 반을 선지급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이에 대해 은행은 “라임자산운용의 부실 자산 편입으로 발생한 투자상품 손실에 대해 판매사가 자산회수 전에 먼저 투자금의 일부를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 대내외에서 많은 이견이 있었지만 선제적인 고객보호를 위해 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이 적극적으로 뜻을 모아 결정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도 이날 이사회를 열고 현재 환매가 중단된 라임자산운용의 플루토 FI D-1호‧테티스 2호 펀드 투자자에 대해 원금의 약 51%를 선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보상이 결정된 두 펀드에 묶인 투자금 규모는 약 2600억 원이다. 다만 현재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분쟁조정이 진행 중인 플루토 TF-1호(이하 ‘무역금융펀드’)는 선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앞서 지난 5월에는 우리, 신한, 하나, 부산 등 7개 은행이 은행권 공동선보상안을 마련했었다. 하지만 같은 달 말 열리기로 했던 각 은행의 이사회가 줄줄이 연기되면서 보상안 확정이 미뤄졌었다. 당시 은행권에선 선보상 결정을 내릴 경우 자본시장법상 배임행위가 될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은행에 “배임 행위로 처벌하지 않겠다”는 비조치의견서를 전달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금감원 윤석원 원장은 “은행들이 배임 이슈를 고민하고 있지만 사적 화해의 경우에는 선보상을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은행권에서 라임펀드 판매액이 가장 높은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선지급을 결정내리면서 타 시중은행들 역시 연달아 보상안을 내놓을 것으로 판단된다. 신한은행 등 라임펀드 판매사 20곳은 현재 라임운용의 부실자산을 처리하는 배드뱅크 운용사를 설립해 자산을 회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

키코 조정난항…은행 줄줄이 배상 ‘NO'

반면 외환파생상품 키코 배상권고안에 대해선 은행권이 불수용 결정을 내렸다.

앞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사태 관련 판매사인 신한‧우리‧산업‧하나‧대구‧씨티은행 등 6개 은행에 피해 기업 4곳에 대한 배상을 할 것을 권고했었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같은 날 이사회에서 이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신한은행은 “4개 기업(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원글로벌미디어‧재영솔루텍)에 대한 배상권고는 수락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법원 판결을 받지 않은 나머지 기업 중 금감원이 자율조정 합의를 권고한 추가 기업에 대해서는 은행협의체 참가를 통해 적정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뒤늦게 배상해도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신한은행은 “복수 법무법인의 의견을 참고했다”며 배상권고를 거부했다.

같은 날 하나은행과 대구은행 역시 이사회를 통해 금감원 조정안 불수용을 결정했다.

다만 우리은행은 지난 2월 일성하이스코(32억원), 재영솔루텍(10억원) 등 피해기업 2곳에 대한 배상금 지급을 마쳤다.

이와 같은 결정이 나온 데에는 배임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게 다수 의견이다. 지난 2007년부터 이듬해 상반기까지 판매된 키코는 계약 체결일로부터 10년이 넘어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시효가 지났기 때문. 이에 따라 은행이 배상에 나설 경우 이를 결정한 이사회 이사들이 배임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키코는 은행이 손실회피를 목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 전에 국내 수출 중소기업들과 체결한 통화옵션이다. 기업들은 환율이 미리 계약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달러를 약정환율에 팔아 수익을 발생시키지만 계약범위를 벗어나 움직이면 계약금의 두 배 이상의 달러를 약정환율에 팔아야 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대폭 상승했던 당시 키코 가입 기업들은 상당한 손실을 입었고 도산한 업체도 있었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723개 회사가 환차손으로 약 3조3000억 원의 피해를 입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신한은행의 키코 배상권고안 거부 소식을 접한 키코 피해기업들의 모임인 키코 공대위는 “더 이상 은행으로서 존재 가치를 잃어버렸다”며 “신한은행의 부당한 행위에 침묵하지 않고 더 길고 지루한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비자경제신문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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