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 세대교체 본격화 속, 수조원 규모 상속세 관심 집중
“부의 대물림 고리 끊자” vs “기업의 영속성 보장하자” 팽팽한 주장
꼼꼼한 제도 마련과 다양한 의견 고려한 큰 틀의 사회적 합의 필요

재계 세대교체가 본격화하면서 상속세 관련 이슈가 꾸준히 제기된다. 사진은 지난 5월 28일 열린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상속세제 개선 토론회'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재계 세대교체가 본격화하면서 상속세 관련 이슈가 꾸준히 제기된다. 사진은 지난 5월 28일 열린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상속세제 개선 토론회'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경제신문 이한 기자] 주요 기업들의 세대교체가 본격화하면서 3~4세 경영인의 상속세 규모와 납부 방법 등에 관심이 모인다.

상속세에 대한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세법개정안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세대교체’다. LG와 한진, 두산 등 주요 기업들을 중심으로 최근 1년여 사이에 세대교체가 본격화하면서, 재계는 본격적인 3~4세 체제를 맞이했다. 

대기업에서 최고경영자 세대교체가 이뤄지면 언론의 관심은 크게 두가지 지점으로 모인다. 새로운 경영자가 선대 회장만큼의 경영 능력을 보여주는지, 승계가 이뤄지면 수천억원 규모의 상속세가 발생하는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다.

실제로 세대교체가 이뤄진 기업 관련 기사에는 ‘경영 자질 검증’ ‘경영권 승계’ ‘상속세’ 같은 키워드가 꾸준히 따라다닌다. 최근 주요 기업들이 비슷한 시기에 세대교체를 맞이하면서 이들의 상속세 규모와 납부방법 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19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LG그룹과 두산그룹, 그리고 한진그룹의 동일인을 변경했다. 동일인은 쉽게 말하면 서류상 인정된 그룹 총수다. LG 두산 한진의 세대교체가 공식적으로 이뤄졌다는 의미다.

이들 그룹의 상속세 규모 등에 특별히 관심이 가는 이유가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기업을 상속 받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건 아니다. 선대 회장이 아직 생존해 있어서다. 반면 앞서 언급한 세 그룹은 선대 회장 별세 등의 이유로 총수에 오른 만큼, 지분 승계 및 상속세 납부 등이 곧바로 이뤄져야 한다.

상속액이 30억 원을 넘어가면 세율은 50%다. 최대주주가 경영권 달린 주식을 물려줄 경우 여기에 할증도 붙는다. 국내 주요기업 총수가 물려 받는 지분 규모를 감안하면 상속세 규모는 수천억원을 넘길 수 있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조단위를 넘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상속세, ‘부의 대물림 방지’인가? 아니면 ‘경영 연속성 보장’인가?

거액의 상속세가 세간의 관심을 끌 수록 상속세를 둘러싼 여러 논의도 활발해진다. ‘상속세 규모가 너무 과하다’는 입장과,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서는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양측은 각각 ‘다른 나라 사례와 기업의 투자심리’ 그리고 ‘소득재분배나 경제정의’등을 이유로 내세운다.

홍성일 전경련 경제정책팀장은 <소비자경제>와의 통화에서 “국내 상속세가 외국에 비해서는 세율도 높고 할증도 많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율 자체만 놓고 보면 일본 바로 다음으로 높은데, 일본에는 없는 할증과세가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 팀장은 “상속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른 시각차가 있는 것 같다”고 전제하면서 “개인간의 상속으로서 단순한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지, 아니면 기업의 연속성을 추구하는 시선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상속세에 대한 견해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홍 팀장은 “고용 주체인 기업의 안정성을 상대적으로 조금 더 보장해주자는 것이 전경련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시민단체 등에서는 상속세 과세 강화를 촉구한다. 참여연대는 언론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상속공제가 과다해 실효세율은 28.6%로 명목세율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했으며 ”공제 수준을 축소해 부의 재분배를 강화해야 한다"고 반박한 바 있다. 공제는 비상장기업이나 중소기업등에 국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부는 지난 7월 25일 열린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2019년 세법개정안'을 확정·발표했다. 이 개정안에 대기업 상속세에 관한 부분이 담겼다. 최대 30%였던 할증률을 20%로 단일화한 부분이다. 소득재분배보다는 경제활력 등 경기부양에 중점을 둔 방안이다. 당시 시민단체 등에서는 ‘부자감세’라며 비판에 나선 바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국내 기업 최대주주들은 상속 및 증여세 부담을 일부 덜게 된다. 자산규모 5000억 원을 넘지 않는 중소기업은 상속세 할증세가 사라진다. 대기업은 최대주주 지분율에 관계없이 할증률이 20%로 단일화된다. 상속, 증여세 실질 최고세율이 낮아지는 건 1993년 최대주주 할증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이를 두고도 반응은 엇갈린다 재계에서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50%이상인 기업이 거의 없으니 근본적으로 상속세율을 손봐야한다는 입장이다. 시민단체 등은 추가 혜택을 더 주는 것은 옳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향후 논의 과정에서 의견이 팽팽히 맞설 것으로 보인다.

◇ 구광모 상속세 7160억, 3~4세들 상속세 납부 위해 지분 매각 등 나서

현재 상속 문제로 관심을 받는 대표적인 인물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이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국내 재계 최초 4세 총수여서다. 구 회장은 선대 고 구본무 회장에게 지분 8.8%를 물려 받았다. 최근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구 회장이 내야 할 상속세는 약 7160억원 규모다. 규모가 큰 상속세는 5년간 나눠낼 수 있는데, 지난해 그룹 자회사 지분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해 1차분 1536억원을 냈다.

두산그룹도 박정원 회장 체제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지난 3월 별세한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두산은 박용곤 명예회장이 보유하던 주식을 자녀들에게 나눠 상속했는데 박정원 회장은 보통주 14만 4583주와 종류주 6272주가 상속됐다. 박정원 회장 등 오너 일가는 기존에 보유했던 ㈜두산 지분을 매각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했다.

상속세 등과 관련해 언론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곳은 한진그룹이다. 지난 4월초 고 조양호 회장이 갑작스레 별세하면서 새 총수에 오른 조원태 회장을 비롯한 3남매가 KCGI(강성부 펀드) 등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등 숨가쁜 행보를 이어오고 있어서다.

KCGI가 한진칼 지분을 꾸준히 늘린 상태여서 오너 일가가 주식을 섣불리 매각할 경우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평가다. 조 회장 등 삼남매는 개인 소유 부동산 처분 등 다양한 방안을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대교체가 먼저 이뤄진 주요 대기업들도 상속세는 숙제다. 삼성과 현대차 등 주요 기업은 상속세 규모만 조단위를 넘어갈 것으로 알려져 고민이 크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상속세 규모가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뜨거운 감자' 상속세, 세법개정안 입법 과정에서 다양한 합의와 논의 필요

상속세가 굳이 재벌가에서만 이슈가 되는 키워드는 아니다. 최근 상속에 관한 또 다른 이슈가 하나 있었다.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정우 의원이 2013년 이후 5년간의 미성년자 배당소득 규모 등을 조사해 발표했다. 조사결과 미성년자의 배당소득이 매년 증가하는 등, 일반 금융소비자의 시선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결과가 도출됐다.

김정우 의원은 이에 대해 “조기 상속 및 증여의 영향으로 보이는 바, 미성년자에 대한 상속과 증여에 대한 세금 집행이 제대로 공정하기 이뤄지고 있는지 꼼꼼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내용이 보도되면서 기사에는 ‘불로소득’이나 ‘금수저’등을 비판하는 날 선 댓글이 많이 달렸다.

상속만이 아니라 증여 등을 포함한 내용이고, 굴지의 대기업이 아닌 중산층 전체를 상대로 한 이슈였지만 ‘선대로부터 물려받는 재산’에 대한 제3자의 시선이 어떤지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상속세 관련 내용을 취재하기 위해 여러 관계자들과 접촉했는데, 복수의 인물들이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내면 역풍을 맞고 여론을 자극할 수 있어 자제한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 중에서도 “상속세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다. 특별히 의견을 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취재에 응한 전경련 관계자도 “외국에 비해 다소 과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보도자료를 내는 등 공식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속세가 그만큼 ‘뜨거운 감자’라는 얘기다.

실제로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한 소비자는 “일반인 입장에서 상속세는 남의나라 얘기인데, 거액의 상속세를 두고 세율이나 할인율을 논하는 것 자체가 솔직히 보기 불편하다”고 말했다. 상속세 관련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일 수 있다.

‘상속=부의 대물림’이라는 시선이 분명히 존재하고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서 그 시선이 일부 타당한 부분도 있다는 방증이다. 결국 이 시선과 상속세를 보는 또 다른 관점에서의 시선, 즉 기업의 연속성 또는 경영부담 완화를 통한 투자 증대 등의 가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이냐가 문제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발표된 세법개정안의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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